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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 2008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주영선 지음 / 문학수첩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았다는 홍보문구를 보고 얼른 구입하게 됐다. 제목은 아웃. 둥근 보름달에 코와 입이 있고, 그 옆에 창문이 하나 나있다. 창문으로 여자 한 명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밑에 연결되어 있는 사다리. 일러스트를 보며 이 그림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생각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책을 읽어가면서, 정말로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이 야속할 정도로 책은 나를 빨아들였다. 한 농촌마을에서 마을 보건진료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요즘 한국소설에서 보기 힘든 소재라 더욱 흥미를 끌었다.
박도옥, 장달자, 김금송, 그리고 보건진료소장인 '나'가 이 책의 핵심인물들이다. 그 이외에 이장, 반장, 그리고 교회 목사 부부들이 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이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인물 묘사가 탁월했다. 시골하면 의례 떠올리는 풍경은 인심 좋고, 이웃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사는 모습들이다. 그렇지만, 시골에 오랫동안 살아본 나로써는 시골도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고, 오히려 폐쇄성으로 인해 더욱 남에게 가혹해질때가 있다는 걸 자주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책속에서, 티비속에서 시골은 항상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그래서 이웃의 얼굴도 모르고 사는 도시와는 정반대로 정이 넘치는 곳으로 묘사되곤 한다. 시골이란 말이, 정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것이, 서로의 숫가락 개수를 아는 것보다 낫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시골도 시골나름대로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도시 못지않게 지겹고 힘들고 암울하고 쾌쾌하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니 만큼.
보건진료소장인 나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특별우대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이 마을에 오래 살았음을 내새워서, 혹은 내가 높으신 분 누구와 잘 아는 사이라는 말을 들어, 혹은 국가유공자라는 말을 들어 나를 더 특별히 대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 사람이 누구든, 아웃! 바로 아웃이다. 그렇지만, 보건진료소장은 끝까지 그들을 특별 대우해주는 것을 거부한다. 그녀에게 그것은 하나의 자존심이다. 삶이 아무리 고단해도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헐뜯으면서도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잘 뭉친다.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제의 적도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힘은, 반드시 자신들이 제거해야하는 대상을 뛰어 넘는다. 보건진료소장은 결국 그녀들의 힘에 굴복 당한다. 그리고 마을을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하고 황량하게 느껴진다. 그녀가 발령난 그 곳은, 이 곳과 다를까? 나는 자꾸 아니라고 고개가 흔들 흔들 거린다. 그럴 리 없다.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면.
소설을 읽으면서 폐쇄적인 농촌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실감나게 그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흥미진진하고 놀라워 책을 다 읽자마자 문학동네 카페에 들어와 서평을 남긴다. 혹 누가 나의 서평을 읽고 이 책을 읽는 다면, 후회는 안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웃! 이웃에서 아웃으로 되어가는 보건진료소장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문득, 외로워진다. 그렇지만, 문득 책이 있어 좋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주영선 작가의 이름을 마음 속 깊이 새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