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김연수 작가님의 책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버스 안에서, 혹은 친구를 기다리는 까페 안에서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읽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떤 책이든, 그것이 짧은 단편이라 할지라도, 넉넉한 시간과, 주위의 소음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독서. 집중하지 않으면 어느새 흐름이 끊겨 앞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거나, 독서를 포기해 버려야 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꾿빠이 이상'이란 책을 한 번 경험해본 나는 다행히 만만의 준비를 통해 실수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밤은 노래한다. 무엇을? 책을 읽기 전부터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무엇을 노래하는지에 대한. 책을 읽고 나서도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노래가 구슬프다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했을 뿐이다. 주인공 김해경은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식민조선에서 태어났다. 어떤 시기에 태어날 수 있을지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는 당연히 그 시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역사의 한 가운데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는 삶이란, 결국은 바람의 방향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무엇일까? 고작해야 좋아하는 여인 정도? 그렇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왜냐?  만약에 얼굴만 봐도 엔돌핀이 마구 솟구치고 함께라면 나라야 있든 없든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여인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여인이 알고 보니 조국을 위해 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유관순 같은 여인이라면, 그래서 뭔가를 지키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쩌겠는가, 그녀와 헤어지든 그녀의 뜻을 같이 하든 해야지. 이래서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사람은 연애도 마음대로 못 한다. 
 

김해경이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 그녀의 죽음 뒤의 얽힌 이념들. 김해경의 사랑이 안타깝고 정희의 죽음이 슬프지만, 그녀를 죽게 만들었던 시대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사람들조차도 악하기 느껴지기 보다는 안쓰럽게 느껴진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던 4명은 어떡하다 서로를 미워하게 됐을까? 이념. 옳은 이념을 위해서는 목숨도 버릴 수 있을까? 나의 목숨이든 남의 목숨이든. 하긴 언제나 나의 이념만이 유토피아를 건설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만이 추진력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왜냐? 나만의 이념만이 옳기 때문에.

톨스토이와 마르크스. 톨이토이를 꿈꿨지만 마르크스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더 안쓰러웠던 건 사랑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김해경의 모습이다. 그의 죄는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여자를 사랑한 죄밖에는 없다.

밤은 노래한다. 사랑을!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