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저랑 유럽여행 가실래요? - 49년생 할머니와 94년생 손자, 서로를 향해 여행을 떠나다
이흥규 지음 / 참새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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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여행서가 나와 있지만, 이렇게 유니크한 여행서가 또 있을까? 어디를 가느냐, 무엇을 보느냐라는 명제는 중요하지 않음을 이 책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고, 출판사의 소개와 저자의 머리말을 읽기만 해도 벌써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94년생 흥규 청년은 여행을 좋아하는 취준생이었고 취업이 되고나서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갑작스러운 여유를 어떻게 보내야할까 고민을 하다 전북 남원 시골마을에 혼자 살고 계신 외할머니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했고,

가끔 다음 날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생각할 때가 있어. 자식들은 다 서울 올라가서 각자 자기 새끼들이랑 함께 있지,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지. 이렇게 저녁에 혼자 있다 보면 너무 외로워서 TV를 켜두고 자는 거여.

자식들과 손주들을 원할 때 보지 못하지만 씩씩하게 할아버지와 사시던 시골집에서 바삐 짓고 계신 농사를 잠시 제쳐두고 첫째 딸의 살가운 손자와 함께 가기로 하는데...

그는 6년 전 군을 제대하고 공허한 마음으로 위로받으려 갔던 외가집에서, 마주한 '엄마의 엄마' 그의 할머니의 외로운 모습을 기억한다.

할머니의 세계는 한평생 남원 버스터미널에서 한 시간 반이나 더 들어가야 하는 지리산 노치마을이었고, 블루베리 농사와 김장철이면 자식들에게 택배로 보낼 엄청난 양의 김치를 담그시는 시골 할머니의 삶이었지만, 어린시절 부모님의 맞벌이로 방학마다 할머니의 세계에 들어갔던 손주는 이제 장성해서 할머니가 '더 넓은 세상을 보셨으면' 매일 저녁 8시 이후 TV와의 외로운 시간이 아니라 여행의 추억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까운 나라도 아닌 저 멀고 먼 유럽을 '할머니와 함께' 가기로 한다.

한국사람들에게 멀기도하고 볼 것도 많은 유럽여행을 49년생 노쇠한 몸으로 가능할 것인가? 평생 농사일로 앙상한 다리와 심장이 안좋으셔서 매일 한웅큼의 알약들을 드시고 허리 통증으로 병원도 다니시는데,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과 광장에서 광장 수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관광지 투어가 할머니에 무리라는 것은 손자가 충분히 예상했던 방해요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첫날부터 여행 내내 시차, 숙소와 이동수단과의 거리 등 할머니의 체력조건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변수들에 부딪혔다.


경비를 아끼려 터키 경유 비행기를 준비했던 저자는 비행시간 내내 잠도 못주무시고 불편한 자세로 견디는 할머니를 안쓰러워 어쩔 줄 모르기도 했고. 첫여행지인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항에 내려 호텔로 가는 길에, 멀어힘들다 달팽이처럼 걸으며 불평하는 할머니를 향해 큰 소리로 따라오시라고 했으며 베네치아 본섬으로 가는 배의 출항시간을 맞추려 할머니를 재촉하며 짜증을 내었다. 긴 하루가 이틀같아 힘들었던 중 할머니의 메모장을 우연히 본 손자는, 울컥~ 독자들도 다같이 울컥했으리라. 할머니는 이 여행을 위해 저자보다 더 단단한 결심을 하셨던 것이다.

손자랑 가는 여행이 많이 설레고, 고맙다.

무릎이 아파서 많이 못 걸을까 봐 걱정이다.

손자한테 폐 안끼치게 노력해야겠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베로나, 그리고 밀라노로 가는 여정 동안 할머니는 '손자가 같이 오자고 한 것' 자체에 대한 고마움을 관광지에서 만난 같은 한국인들에게 자랑했고 때때로 손자는 감동이었지만, 역시 아름다운 풍경과 유명 관광지에서의 부지런하고 꼼꼼한 계획을 실현하지 못할 정도로 일말의 실망감을 느꼈다. 시차에 적응하지 못하신 할머니는 오후에 낮잠을 주무시고 늦게 숙소에서 나와야 했으며 그나마 뜨거운 오후에 하지 못했던 일정을 아침일찍이나 새벽에 가려면 베로나의 유명한 줄리엣 하우스 등은 아직 오픈시간이 안되어 굳게 닫힌 문만 확인하고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손자인 저자라면 어땠을까? 내가 할머니라면 어땠을까? 라고 각각의 입장이 되어보면 어떤 사람이 되더라도 서로 미안하고 고마울 듯하다. 이탈리아가 뭐고, 유럽이 뭔데 사람보다, 함께 한 이보다 중요할까?




습하고 더운 열기를 내뿜는 밀라노의 숙소에서는 여행 전 할머니의 캐리어 가득 누룽지와 단무지와 김이 쓸모없어 보였지만, 이제 누룽지와 김치의 든든한 한끼를 불평없이 먹고 있는 손자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나도 누룽지 한 끼가 먹고 싶어서 집에서 끓여먹었다는^^

친한 친구나 스스럼없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해도, 낯선 곳에서의 예기치 않는 사건사고들은 서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으로 싸움으로 번지게 마련이다. 저자와 저자의 할머니도 세대 간의 생각차이, 체력차이까지 가지고 간 여정이었으니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기대고 의지하는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여행이었다.

이렇게 글 쓰니 참 좋네. 다시 여행 간 기분. 여기저기 새록새록 떠올라 행복해지는 이 마음.

나를 이렇게 좋은 기억 속에 살게 한 내 손자 고맙다.

내 손자 흥규야. 고맙고, 안쓰럽고, 대견스럽고, 할머니가 많이 사랑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럽기도 하고, 할머니의 솔직 담백한 일기가 마지막 이야기로 담겨서 더더욱 이 책이 사랑스러웠다.




이 리뷰는 들녘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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