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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평점 :
1. 제목이 소설가 지망생 지침서 같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하루키가 처음 쓴 자전적 에세이다. 물론, 여행 에세이나 생활 에세이는 많았다. 그럼에도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이토록 오피셜하게 툭, 하고 까놓고 쓴 에세이는 과연 처음이지 않나 싶다.
2. 하루키는 말한다. 소설을 왜 썼는지, 어떻게 썼는지, 그로 인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어떤 태도와 습관을 유지해야 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소설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서도 입을 뗀다. 조심스러우면서도 꽤 적극적으로 항변한다. 마치 억울함을 토로하는 피고인처럼. 뭐 대체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3. 오독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은 바에 의하면, 하루키는 소설의 깊이나 다층적인 구조를 만드는 일에 집착하는 작가다. 하지만 소설 전체의 의미망을 장악하는 (혹은 장악하려는) 작가는 아니다.
4. 책을 다 읽고 난 뒤 : 이런 비유가 어떨까 싶다. 미술사에서 인상파를 지나 피카소의 큐비즘에 다다르기 전 어느 지점, 하루키 소설은 그 지점에서 쓰인다. 그리고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처럼 소설을 쓰고 있는 육체적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5. 그러니까, 하루키 소설은 읽고 난 뒤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읽고 있는 순간 자체'가 중요한 소설이라는 이야기.
6.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도 좋았지만 '소설가로서의 하루키'가 더 흥미로웠던 책이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을 정도로. 하루키 월드에 빠져드는 것만큼 하루키 월드를 이해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그것에는 이만한 책이 없으니까. 또 하나 더. 하루키를 은근히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라도 더 대꾸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정도면 읽어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