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당신?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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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직접 묘사하지도 않는다. 다만 연관성 없어 보이는 행동과 몇 컷의 이미지만을 성기게 엮는다. 처음엔 그 짧은 문장들이 생명을 얻지 못하고 대뇌피질의 이해작용 속에서 엉키곤 한다. 하지만 이따금씩 살아서 나의 가슴을 오려내고 들어와 집을 짓기도 하는데, 이 때 그 집의 재료가 되는건 바로 내 안에 자리잡고 있던 수많은 경험과 감정의 파편들이 아닐까 싶다.

 

 소설 속 그들은 두가지가 없다. 이름이 없고 얼굴이 없다. 그들은 그냥 '나'이거나 '그','그녀'로 불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W,H,O,K,I,Q,L...같은 이니셜로 불린다. 게다가 소설을 읽게되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등장인물의 얼굴들 또한, 소설 끝까지 한 끄트러미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일상 속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그','그녀'의 얼굴 혹은 '나'의 얼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청소부같다. 이름과 얼굴이 없는 그들은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새벽,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워담는 청소부처럼, 가족이 남긴 흔적과 책임 그리고 외로움과 이런저런 숙제들을 아무도 몰래 주워담고 소리없이 살아간다. 그들은 그런 자신의 사연을 우주 건너편 오백만광년쯤 떨어진 행성에서나 일어나는 일처럼 따분하고 무심하게 이야기 하며 삶을 견디고, 살아간다.

 

 그런 그들의 삶에도 변화의 기운은 아무런 촉감과 체온없이 몰래 스며들어온다. 그들은 이제 요리책 2권정도의 요리를 할 수 있게되고, 뭐든 먹고 운동하기 시작하고,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에서 내리지 않고, 거기있는 당신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소설의 끝자락엔 모두들 무언가 변해있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소설은 말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일상속에 끼여있고 앞으로도 영영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소설은 그런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따뜻한 밥 한 숟가락 입안 가득히 채우고 꼭꼭 씹어보라고 우리를 다독거린다. 고민하는 일보다 그게 더 먼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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