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문득 메모를 남기고 사라지곤 했는데, 처음엔 그런 상황이 너무나 난감하고 고통스러워 너에게 화를 내거나 도대체 무슨 일인지 있는 힘껏 따져 물었다. 너는 어깨를 으쓱할 뿐, 그 일을 조금씩 잊어갈 만 하다 싶을 때 쯤, 다시 의미를 알 수 없는 메모와 함께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한 번 화가 나고 한 번 체념이 되고 또 한 번은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동요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결국은 스스로 만들어낸 별의별 방어수단들에 치여 허덕댈 즈음, 너는 슬그머니 나타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나를 들여다 보았다.

 

잘못을 한 게 아니지 않느냐는 듯한 표정, 나의 고통이나 근심들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한 너의 초연함은 내게 무척 낯선 것이어서,  그런 식으로 나를 다루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떤 방법을 써서 너로부터 나를 방어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더욱 두려웠던 것은, 그 언젠가 내가 너를 아니면 네가 나를 지겨워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는데. 어떨까, 너를 잃는 일은. 너를 넌더리내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게 될까.

 

생각하는 일을 그만두고 너를 만나러 가는 어느 날. 문득 나는 네 메모와 부재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온몸의 신경들을 파닥파닥거리며 너를 향해 있던 것은 그 감각의 충만함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너를 떠나오게 되고 그것은 별 수 없는 일이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게 될 것이다. 그립고 아쉬운 것보다 더 깊고 농밀한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어 모든 게 변했다고 생각하겠지. 떠나오고야 만 쪽은 네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 한 채 네가 아닌 모든 것들을 욕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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