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라의 돼지를 읽다가 생각난 건데
나는 좀 두꺼운 책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전공서적이나 경전처럼 두툼한 그런 거 말고
촤르륵 넘겨볼 때, 종이의 질감이 손가락 끝에 촘촘히 느껴지는
밀도 높은 책. 말이다.

 
여름이라고 장르소설들을 한참 읽었더니 순도가 높은 문장들이 그리워 오스카 와일드와 이탈로 칼비노를 주문했다. 

 
하늘이 자주 어둡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흘러가는 구름.
태풍이 지나가더니 불순물들이 빨려들어간 듯이
공기가 보드랍더라. 빗방울이 간간히 떨어졌는데 금방 잊혀졌다.

 

 
나는 널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그 시간들에 네 곁에서 곧잘 웃음을 터뜨리던 나를
그리워하는 거다. 그 웃음의 농도와 어딘가 수줍은 뉘앙스를
너는 아마 깨닫지 못 했을 텐데
그건 내가 부끄럽고 들떠있었기 때문이야.

   

포근포근한 기억은 나에게만 속해 있는지  
너는 아닌지 묻고 싶었던 적이 있긴 했어. 그런데 말야.
나는 네 대답이 별로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이미 충분해서 거기가 끝이어서  네가 대답을 가졌든 아니든 결국 달라질 건 없었던 거지. 

 
 

네가 골목 끝에 서서 나를 찬찬히 바라보던 날을 떠올려.
네 눈은 불안해보이기도 하고 체념한 것처럼도 보였는데
조금 웃어보여주고 싶었지만 내 표정이 어땠을지
나는 영영 알 수가 없겠지.
나는 걸음을 늦추지도 않은 채 너를 지나쳐 가.
꿈 속에서조차 나는 너를 향해 멈추지 않아.
그게 끝.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지.
알고 있어도 멈추는 법이 없어.
끝은 이미 거기 돌이킬 수 없는 네 진심으로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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