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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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의 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목차를 보는데 꼭 읽어야겠다,는 열망이 차 올랐다. 그동안 신문 칼럼에서만 읽었던 백영옥 작가의 글은, 솔직하고 유쾌하면서 페이소스가 있어 좋아했다.

 

마음에 쏙 쏙 들어오는 문장들이 많아서 필사를 제법 했다. 겉표지를 벗기면 빨간색 하드 커버가 나오는데, 책 크기도 한 손에 쥐고 딱 읽기 좋아 늘 들고 다니면 읽었다.

 

화를 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목에서 나 자신의 건강하지 못한 분노방출을 반성했다. 이런 걸 좀더 빨리 알았다면 그동안 화가 중금속처럼 몸 속 여기저기에 쌓여 크고 작은 혹들이 되도록 하지는 않았을 텐데. 발가락도 부러지지 않았을 텐데. 그러면 앞으로는 화를 내야 할 상대에게 분출을 어떻게 해야 할까? 폭발하지 않으면서 내가 화가 나서 불편한 상태라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낼 수 있는 방법. 역시 문을 박차고 나아갸 할까? 정답도 없고 한번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여러 번의 시도와 실패를 통해 아프게 배울 수 밖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든 우정이든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라는 대목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바라는 바로 그런 관계였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듯 늘 그 자리에 지지하고 믿고 기다려 주는 그런 자유롭지만 든든한 관계. 결혼 생활을 20년 넘게 하면 그런 관계를 만들 줄 알았는데, 세상 일은 내뜻대로 안되는 게 당연지사라, 남편은 젊을 때보다 떨어짐을 더 힘들어하고 모든 곳에 언제나 함께 있어야 마음을 놓는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함께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강한 유대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날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이상했던 것이 아니다. 내가 꿈꾸는 관계, 죽기 전에 가질 수 있을까?

 

직업이란 '내'가 아니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합당한 대가를 받는 일, 이라는 대목은 우리 딸들에게도 읽혀 주고 싶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못하면 패배자라는 사회적 패러다임을 꼬집는 작가의 통쾌한 어법이 가슴을 시원하게 하고 직업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명제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결혼에 대해 작가 자신의 글에서 인용한 긴 문장은 수십 번을 읽었다. 구구절절이 무뤂을 치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결혼 전 이 문장을 읽었더라도 설마 그 고통이 그렇게까지 심하겠어?, 피식 웃고 말았을 것같다. 결코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고통과 상처. 만약 다른 사람으로부터 다른 종류의 상처를 받았다면 좀더 견디기 쉬웠을까? 어떤 부부는 아내보다 남편이 더 많이 참고 견디고, 어떤 부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도 한다. 난 왜 훨씬 더 많이 아프고 그래서 더 힘들게 참아야 하는 쪽일까,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주는 고통을 그 사람으로부터 받기로 내가 결정했으니까. 딸들에게 아무래도 읽어 줘야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해야 하지만 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성실하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을 빠뜨리지 않고 하는 자세이다. '해야 하지만 하지 않을 자유'는 아무래도 번아웃되었을 때, 처방이고 난 아직도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하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에필로그에서 과거를 바꿀 수도 있다고 보는 관점에 공감했다.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일도 모두 다르게 기억하고 추억한다. 그리고 같은 일을 겪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아픔과 상처를 열매와 성숙으로 바꾸는 기적, 그건 지금 이 순간 여기 있는 나만이 할 수 있다.

 

p.56 삶을 야구에 비유하면 나는 이제 홈런을 치겠다는 야망보다는 출루율을 높이기 위해 연습을 거르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 살면서 중요한 건 어쩌면 타율이 아니라 출루율일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좋은 볼을 보고 ‘안타‘를 욕심내기보다, 먼저 출루해 나간 사람을 위해 ‘번트‘를 쳐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안타‘찬스에 ‘번트‘를 칠 수 있는 선수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사람은 종종 다른 사람이 내리지 못하는 판단을 하기도 한다. 야망의 기준이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는 것이다.

누군과와 관계를 시작하는 능력과 그것을 지속시키는 능력은 사실 전혀 별개의 능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든 우정이든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떠날 필요가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어쩌면 그것은 진짜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가장한 욕망, 우정으로 포장된 필요가 아니라 진짜 감정 말이다. 나는 종종 그런 관계를 꿈꾼다. 모든 곳에 있고, 어디에도 없는 관계,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관계를.

한때의 빛나는 재능이 훗날의 아픈 족쇄가 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자신의 꿈을 직업적인 성취로 이루지 못했다고 꿈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실패자란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으면 한다.

결혼이란 건, 말하자면 앞으로 저 사람이 네게 한 번도 상상해볼 적 없는 온갖 고통을 주게 될 텐데, 그 사람이 주는 다양한 고통과 상처를 네가 참아낼 수 있는지, 그런 고통을 참아낼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네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될 거야. 살아가는 동안 상처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누가 주는 상처를 견딜 것인가는 최소한 네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선택해야만 해. 그러니까 이 남자가 주는 고통이라면 견디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해. 그러면 최소한 덜 불행할 거야. 물론 행복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은,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라면 때때로 견디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 될 거란 얘기야!"

누군가의 성공 뒤엔 누군가의 실패가 있고, 누군가의 웃음 뒤엔 다른 사람의 눈물이 있다. 하지만 인생에 실패한 없다. 그것에서 배우기만 한다면 정말 그렇다. 성공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이지만,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인 실패도 있다. 나는 이제 거창한 미래의 목표는 세우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란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작고 소박한 하루하루.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나. 오늘도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조금씩, 한 발짝씩,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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