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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ef (Paperback) - 1997 Newbery
메건 웨일런 터너 지음 / Greenwillow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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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풍의 판타지 소설을 너무 좋아하는 개취때문에 1편 다 읽고 2,3편까지 다 구해서 읽었습니다. 2편이 제일 재미있었고 3편엔 주인공 Thief가 메인이 아니라서 좀 아쉬웠어요. 영화로 나와도 꿀잼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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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춘기 수업 - 사춘기 아이의 정서를 이해하고 학습력을 높여주는
이민서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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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사춘기를 이렇게 리얼하게 파헤쳐 엄마를 위로하는 책은 이제껏 없었다. 모든 이야기들이 다 내 아이와 나의 이야기같다. 사춘기의 갈등 뒤에 가장 큰 요인은 결국 공부다.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은 사춘기라는 이름의 학습부진이다. 이 점을 놓치지 않은 작가의 혜안에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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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인문학 영화관 - 화려한 볼거리, 깊어진 질문들 영화로 생각하고 토론하기
강유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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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씨는 문학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이다. 흡입력있는 글솜씨에 인문학적 깊이가 더해져 영화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타이타닉'이 수퍼컴퓨터를 사용한 렌더링 CG 기술로 영상미의 혁명을 가져왔다는 찬사를 받은지 20 년이 흘렀다. 이제 CG 기술은 인간의 상상력을 시각화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진화를 거듭했고 거의 모든 영화에 크든 작든 참여하고 있다. 작가는 그런 기술이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어야 유의미해지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 왜 3D가 제목에 들어갔을까 했는데, 이런 영화 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반영된 제목이었다. 언급된 영화를 봤든 보지 않았든 누구나 어렵지 않게 작가의 고급진 인문학적 사유를 즐길 수 있다. 3D, 2D, 제로 인문학으로 크게 삼등분되어 있고 글의 양이 3D에서 갈수록 줄어 드는데, 의도적으로 그렇게 배치했는지 모르겠다. 3D에 있는 글들이 개인적으로 더 와닿았다.

 

인문학과 영화를 연관지으려는 시도가 충분히 설득적임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왜 이렇게 남발할까 하는 거부담이 살짝 들었지만 영화도 문학 못지 않는 훌륭한 인문학적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글들이었다.

 

 

[그래비티]의 감동은 기술적 완벽성 그 자체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다. 결국 기술이란 우리 삶이 가진 여러 가지 의문을 풀어가고 그 질문의 깊이를 더해가는 구체적 방법이다. 인간의 삶이 지닌 모순을 직시하고 그것에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 모든 기술의 끝에는 인간이 있다.

사실 성장의 고통은 10대 때만 겪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마음속 어린이는 여러 번 고개를 내민다. 다만, 어른이 되고 나면 고통을 호소하는 게 쉽지 않아질 뿐이다. 어른이란 곧 고통이나 혼란을 티 내지 않고 잘 견뎌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0대의 성장통은 드러낼 때 아름답고 찬란하다는 점에서 축복의 감정이기도 하다. 10대의 고통은 드러내도 아름답다. 하지만 스무살이 넘고, 마흔이 넘어서늬 고통은 드러내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아름답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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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묘보설림 2
루네이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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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살았던 기억때문인지 소설 속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순박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친밀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속이는 그들의 모습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만명이 기아로 죽었던 대약진 운동에서 살아 남은 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세월과 산업화를 통한 부의 집중화로 다시 빈민이 되는 공장 직공들의 삶은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그 치열한 경쟁 속에 '자비'는 모순이지만 또 엄연히 존재했던 가치였다.

 

소설을 끝내고 역자(김택규)의 후기를 읽고 나자 작가(루네이)에 대한 궁금증이 참을 수 없이 커져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바이두에서 찾아 보았다. 풍채 좋은 중년 남자의 모습엔 삶의 궁색함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고 어딘가 예술하는 사람들이 풍기는 그런 기운이 감돈다.

 

소설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것은 충격적인 내용을 너무나 담담하게 써 내려간 문체때문이다. 역자는 이런 스타일을 '낯빛 하나 변하지 않는 참혹함'이라고 명명된다고 했다.

 

루네이도 본명이 아니라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 쓰던 아이디라고 한다. 그는 기술학교를 나오고 대학교육도 받지 않은 전형적인 공원 출신이지만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해 뒤늦게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소설에는 유식한 사람들의 글냄새가 나지 않고 인물들이 가식없이 생생해서 읽기 편하다.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 봐야겠다. 

"나는 가난하고 능력이 없어서 텔레비전은 살 수 있었지만 배는 곯고 있어. 벌써 두 달이나 아침밥을 못 먹었다고. 그래서 보조금을 신청한 건데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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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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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의 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목차를 보는데 꼭 읽어야겠다,는 열망이 차 올랐다. 그동안 신문 칼럼에서만 읽었던 백영옥 작가의 글은, 솔직하고 유쾌하면서 페이소스가 있어 좋아했다.

 

마음에 쏙 쏙 들어오는 문장들이 많아서 필사를 제법 했다. 겉표지를 벗기면 빨간색 하드 커버가 나오는데, 책 크기도 한 손에 쥐고 딱 읽기 좋아 늘 들고 다니면 읽었다.

 

화를 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목에서 나 자신의 건강하지 못한 분노방출을 반성했다. 이런 걸 좀더 빨리 알았다면 그동안 화가 중금속처럼 몸 속 여기저기에 쌓여 크고 작은 혹들이 되도록 하지는 않았을 텐데. 발가락도 부러지지 않았을 텐데. 그러면 앞으로는 화를 내야 할 상대에게 분출을 어떻게 해야 할까? 폭발하지 않으면서 내가 화가 나서 불편한 상태라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낼 수 있는 방법. 역시 문을 박차고 나아갸 할까? 정답도 없고 한번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여러 번의 시도와 실패를 통해 아프게 배울 수 밖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든 우정이든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라는 대목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바라는 바로 그런 관계였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듯 늘 그 자리에 지지하고 믿고 기다려 주는 그런 자유롭지만 든든한 관계. 결혼 생활을 20년 넘게 하면 그런 관계를 만들 줄 알았는데, 세상 일은 내뜻대로 안되는 게 당연지사라, 남편은 젊을 때보다 떨어짐을 더 힘들어하고 모든 곳에 언제나 함께 있어야 마음을 놓는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함께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강한 유대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날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이상했던 것이 아니다. 내가 꿈꾸는 관계, 죽기 전에 가질 수 있을까?

 

직업이란 '내'가 아니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합당한 대가를 받는 일, 이라는 대목은 우리 딸들에게도 읽혀 주고 싶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못하면 패배자라는 사회적 패러다임을 꼬집는 작가의 통쾌한 어법이 가슴을 시원하게 하고 직업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명제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결혼에 대해 작가 자신의 글에서 인용한 긴 문장은 수십 번을 읽었다. 구구절절이 무뤂을 치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결혼 전 이 문장을 읽었더라도 설마 그 고통이 그렇게까지 심하겠어?, 피식 웃고 말았을 것같다. 결코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고통과 상처. 만약 다른 사람으로부터 다른 종류의 상처를 받았다면 좀더 견디기 쉬웠을까? 어떤 부부는 아내보다 남편이 더 많이 참고 견디고, 어떤 부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도 한다. 난 왜 훨씬 더 많이 아프고 그래서 더 힘들게 참아야 하는 쪽일까,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주는 고통을 그 사람으로부터 받기로 내가 결정했으니까. 딸들에게 아무래도 읽어 줘야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해야 하지만 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성실하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을 빠뜨리지 않고 하는 자세이다. '해야 하지만 하지 않을 자유'는 아무래도 번아웃되었을 때, 처방이고 난 아직도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하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에필로그에서 과거를 바꿀 수도 있다고 보는 관점에 공감했다.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일도 모두 다르게 기억하고 추억한다. 그리고 같은 일을 겪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아픔과 상처를 열매와 성숙으로 바꾸는 기적, 그건 지금 이 순간 여기 있는 나만이 할 수 있다.

 

p.56 삶을 야구에 비유하면 나는 이제 홈런을 치겠다는 야망보다는 출루율을 높이기 위해 연습을 거르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 살면서 중요한 건 어쩌면 타율이 아니라 출루율일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좋은 볼을 보고 ‘안타‘를 욕심내기보다, 먼저 출루해 나간 사람을 위해 ‘번트‘를 쳐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안타‘찬스에 ‘번트‘를 칠 수 있는 선수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사람은 종종 다른 사람이 내리지 못하는 판단을 하기도 한다. 야망의 기준이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는 것이다.

누군과와 관계를 시작하는 능력과 그것을 지속시키는 능력은 사실 전혀 별개의 능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든 우정이든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떠날 필요가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어쩌면 그것은 진짜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가장한 욕망, 우정으로 포장된 필요가 아니라 진짜 감정 말이다. 나는 종종 그런 관계를 꿈꾼다. 모든 곳에 있고, 어디에도 없는 관계,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관계를.

한때의 빛나는 재능이 훗날의 아픈 족쇄가 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자신의 꿈을 직업적인 성취로 이루지 못했다고 꿈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실패자란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으면 한다.

결혼이란 건, 말하자면 앞으로 저 사람이 네게 한 번도 상상해볼 적 없는 온갖 고통을 주게 될 텐데, 그 사람이 주는 다양한 고통과 상처를 네가 참아낼 수 있는지, 그런 고통을 참아낼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네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될 거야. 살아가는 동안 상처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누가 주는 상처를 견딜 것인가는 최소한 네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선택해야만 해. 그러니까 이 남자가 주는 고통이라면 견디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해. 그러면 최소한 덜 불행할 거야. 물론 행복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은,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라면 때때로 견디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 될 거란 얘기야!"

누군가의 성공 뒤엔 누군가의 실패가 있고, 누군가의 웃음 뒤엔 다른 사람의 눈물이 있다. 하지만 인생에 실패한 없다. 그것에서 배우기만 한다면 정말 그렇다. 성공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이지만,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인 실패도 있다. 나는 이제 거창한 미래의 목표는 세우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란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작고 소박한 하루하루.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나. 오늘도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조금씩, 한 발짝씩,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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