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사라진 날 - 진동하는 삶, 엔지니어가 일군 궤적과 명함 너머의 풍요에 대하여
장호현 지음 / 좋은땅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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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명함이 사라진 날, 비로소 나를 마주하다/장호현 『명함이 사라진 날』 서평

진동하는 삶, 엔지니어가 일군 궤적과 명함 너머의 풍요에 대하여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명함을 건넨다.

명함에는 이름과 직장, 직급과 연락처가 적혀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주는 편리한 종이 한 장이다.

그러나 회사를 떠나 더 이상 건넬 명함이 없어졌을 때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직장과 직책이 사라지고 나면 나는 누구이며,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은 내게 무엇으로 남는 것일까.

장호현 저자의 『명함이 사라진 날』은 한국전력공사에서 엔지니어의 길을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의 한국 대표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살아온 한 사람이 은퇴 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자전적 에세이이자 자기계발서다.

흔들림 속에서 전문성을 쌓고 정상에 올랐던 시간뿐 아니라 명함을 내려놓은 뒤 비로소 발견한 삶의 풍요와 여유도 함께 이야기한다.


비전공자에서 진동 전문가로

장호현 저자는 한국전력공사, 현재의 한국수력원자력에서 근무하며 엔지니어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세계적인 산업 기술 기업인 GE의 진동 분석 전문기업 벤틀리 네바다(Bently Nevada)에서 한국 영업총괄과 대표를 맡았고, GE Digital Solutions의 한국 대표도 역임했다.

진동 감시와 진단 분야의 엔지니어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느슨한 삶을 탐구하는 작가이자 색소포니스트로 자신의 새로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저자의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전문적인 지식과 특별한 재능을 갖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서 열역학과 유체역학을 배웠을 뿐 기계 전공자가 아니었고, 진동 분야는 사실상 독학으로 쌓아 올린 영역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전력공사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진동 감시와 진단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부딪치고 공부하며 자신의 지식을 만들어갔다.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했고, 훌륭한 강의를 들으면 그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 다시 현장에 적용했다.

비전공자라는 한계를 핑계로 삼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문성을 쌓아 결국 진동 감시와 진단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와 똑같은 직업을 갖거나 같은 자리에 오르지 않더라도, 전문가가 되기 위해 그가 했던 공부와 훈련, 노력의 태도는 우리도 자신의 분야에서 실천해볼 수 있다.



나만의 기술 영업과 11배 성장의 기록

저자는 한전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를 넘어 치열한 경쟁의 세계로 나아갔다.

자신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기술 영업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고, 현장에서 고객을 직접 만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뢰를 쌓아갔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고객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술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며 관계를 만들어갔다.

책의 목차에 등장하는 「나만의 기술 영업」, 「결별의 시기, 날개를 달다」, 「비전공자가 전문가의 길로」, 「한 몸에서 나온 두 마리의 앵무새」와 같은 제목에는 저자가 전문가이자 조직의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는 자신만의 기술 영업을 통해 11배 성장이라는 성과를 만들었고, 한국 대표로서 조직을 이끌며 세계 시장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누군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저자의 화려한 성공에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에서 대표를 맡고 기록적인 성장을 이룬 경험은 평범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만 바라보면 그 과정에서 저자가 견뎌야 했던 수많은 불안과 선택, 공부와 책임을 놓치게 된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가’보다 그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준비하고 단련했는가이다.


목차를 따라 읽는 한 사람의 인생 궤적

이 책은 프롤로그 「불안이라는 파동기를 통과하는 당신에게」에서 시작해 총 다섯 장으로 이어진다.

제1장 「흔들리는 파동 위에 새겨진 궤적」에서는 저자가 선택한 길과 한전에서의 생활, 새로운 도전과 전문가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선택된 길, 그 서막」, 「흔들림이 남긴 아름다운 파동」, 「한전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결단」, 「나만의 기술 영업」, 「11배 성장의 신화」, 「비전공자가 전문가의 길로」 등의 글을 통해 불안과 도전이 어떻게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는지를 들려준다.

제2장 「마주한 정점」에서는 오랜 기다림 끝에 한 나라의 책임자가 되고, 4차 산업혁명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개척했던 이야기가 펼쳐진다.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면 전략으로 채우고,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외부 고객뿐 아니라 자신과 함께 일하는 직원이라는 ‘내부 고객’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저자가 성공의 비밀을 책상 앞의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흘린 시간 속에서 찾았다는 점도 주목하게 된다.

제3장 「내가 건너온 그늘이 너희의 풍요가 되기를」에는 일과 가족 사이에서 살아온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아들들과 학원에 가는 길, 수많은 출장과 460박의 호텔 생활, 아버지의 고향, 가족과 함께했던 해외 출장, 성장한 아이들의 손을 맞잡았던 순간 등을 돌아본다.

성공을 향해 치열하게 달렸던 시간 뒤에는 함께하지 못했던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도 남아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 책이 단순한 직장 성공담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성취 뒤에 가족의 기다림과 희생이 있었으며, 결국 삶에서 오래 남는 것은 직함보다 사람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4장 「서랍을 비우고 길을 걷다」에서는 마침내 명함이 사라진 뒤의 삶을 이야기한다.

제주 올레길과 혼자 걸었던 산길, 새로운 인연과 아들들과의 작별, 두 번의 미국 여정 등을 통해 저자는 직장인의 정체성을 내려놓고 자신의 속도로 걷는 법을 배운다.

제5장 「느슨함이 주는 풍요」에서는 자신을 위한 시간표를 만들고, 색소폰을 연주하며, 못다 한 일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현재에 머무는 삶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진동하는 삶」과 에필로그 「진동이 멈춘 자리에 피어난 느슨함」에 이르면 책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기계의 진동을 감시하고 분석해온 엔지니어였던 저자는 이제 자신의 삶에서 일어났던 흔들림과 파동을 돌아본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정상 상태에 도달하려 했던 삶이 명함을 내려놓은 뒤 비로소 느슨함과 여유를 만난 것이다.


성공의 잣대는 사람마다 다르다

저자는 자신의 분야에서 분명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비전공자에서 전문가가 되었고,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새로운 시장에 도전했으며, 글로벌 기업의 한국 대표로 조직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인생과 나의 현재를 그대로 비교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높은 직책과 경제적인 성취가 성공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가족과 평온하게 살아가는 일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성공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바라보다 보면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했는지 생각하며 오히려 자신을 작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저자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있다.

누군가의 인생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보여준 태도와 노력 가운데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배워야 한다.

그런 관점으로 읽는다면 이 책은 성공한 기업인의 자랑이 아니라 한 사람이 수많은 흔들림을 지나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온 기록으로 다가온다.




나에게도 명함이 사라졌던 시간이 있었다

나 역시 직장을 퇴직한 뒤 새롭게 행정사 일을 시작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더 이상 이전의 소속과 직책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익숙했던 이름표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놓아야 할지 몰라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살아보니 명함이 있거나 없다고 해서 삶 자체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명함이 없어도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다.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사람을 만나고, 해야 할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직장 명함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능력까지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행정사사무소를 열고 다시 새로운 명함을 만들었을 때의 기분은 조금 괜찮았던 것 같다.

그 명함에는 이전 직장에서 주어진 직책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선택해 시작한 일이 적혀 있었다. 내 이름과 ‘행정사’라는 직업이 새겨진 명함을 바라보며 다시 사회 속에서 나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명함이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명함이 나를 증명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로 한 나의 선택과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이 그 명함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함은 없어질 수 있지만 그 명함을 사용하며 살아온 시간과 경험, 새롭게 도전했던 용기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명함이 사라진 날』이라는 제목이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명함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직장을 잃거나 은퇴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익숙했던 정체성에서 벗어나 직함 없이도 존재하는 나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일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새로운 명함을 만들며 삶의 다음 장을 시작할 수도 있다.


50대인 내가 바라본 앞으로의 10년

나는 50대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돌아보면 저자만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한편으로는 조금 더 일찍 목표를 세우고 노력했더라면 지금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이미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부터 살아갈 시간을 바라보게 되었다.

50대는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나이가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준비할 수 있는 시기다.

지금부터라도 저자가 비전공자의 한계를 넘어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했던 것처럼 나의 일과 관심 분야를 꾸준히 배우고 실천한다면, 10년 뒤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멋진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거창한 성공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내 일에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의 공부와 작은 노력이 당장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10년 동안 쌓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저자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함보다 오래 남는 것

직장에 다닐 때는 회사와 직책이 곧 나 자신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명함을 내려놓는 날이 찾아온다.

그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직함이나 지위가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실력과 경험, 사람들과 나눈 관계, 그리고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정호현 저자는 명함이 사라진 날 비로소 자신을 마주했다고 말한다. 직업도 지위도 타이틀도 내려놓고 나니 자신과 가족, 삶의 의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잃은 것 같았던 그날이 사실은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새로운 출발이었다.

『명함이 사라진 날』은 전문성을 쌓으며 치열하게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노력의 방향을 보여주고, 은퇴나 인생의 전환점을 앞둔 사람에게는 명함 너머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성공담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자기계발서라기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에세이처럼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저자와 나의 삶을 비교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저자의 길을 걸었고,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면 된다.

다만 오늘의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노력만은 포기하지 않고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10년 뒤 나의 모습도 지금보다 더 단단하고 풍요로워져 있을 것이라 믿는다.

명함이 사라진다고 삶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명함이 없는 시간에 진짜 나를 발견하고, 다시 만든 한 장의 명함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확인하기도 한다.

앞으로 언젠가 지금의 행정사 명함을 내려놓게 되더라도, 그동안 쌓은 경험과 사람들과 나눈 마음은 내 삶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명함보다 오래 남을 나만의 실력과 이야기, 그리고 삶의 의미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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