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칼에 베였다
김선규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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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기 좋은 김선규 시집


『면도칼에 베였다』 서평

『면도칼에 베였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날카롭고 아픈 시들이 담겨 있을 것 같았다.

면도칼에 베인 상처는 크지 않아도 순간적으로 따갑고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 시집의 제목도 그렇게 마음 한편을 살짝 베고 지나가는 듯 강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책을 펼쳐 읽어보니 제목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움만 있는 시집은 아니었다. 그리움과 사랑, 기다림과 계절, 지나온 세월을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하고 섬세한 마음이 여러 편의 시에 담겨 있었다.

특히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날 천천히 펼쳐 읽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시집이다.


다섯 개의 마음에 담긴 100편의 시

이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휘날리는 깃발」
2부 「그리움에 대하여」
3부 「면도칼에 베였다」
4부 「내가 너에게」
5부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지」

각 부에 20편씩, 모두 100편의 시가 실려 있다.

한 권의 시집 안에 100편이나 되는 시가 담겨 있지만 한 편 한 편이 길지 않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마음이 머무는 제목을 먼저 골라 읽어도 좋다.

다섯 개의 부를 따라 읽다 보면 삶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세상과 계절을 바라보다가 그리움과 상처를 이야기하고, 다시 사람과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100편의 시를 모두 읽는 동안 시인이 살아오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생각과 질문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목은 날카롭고 그림은 부드럽다

시집 앞뒤를 이어주는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붉은색과 보라색이 번지는 수채화 위에 면도칼과 꽃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 이어져 있다. 『면도칼에 베였다』라는 날카로운 제목과 달리 그림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책을 펼쳐 앞표지와 뒤표지를 함께 보면 하나의 그림처럼 연결된다. 날카로운 면도칼 옆으로 꽃이 피어난 듯한 모습이 상처와 사랑을 함께 이야기하는 이 시집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

삶에는 우리를 베고 지나가는 아픈 순간이 있지만, 그 상처 곁에서도 꽃은 피어날 수 있다는 의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을 풍경과 발라드 음악이 어울리는 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 같은 가을날에는 시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높고 푸른 하늘과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조금씩 색이 달라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읽으면 이 시집의 분위기가 더욱 깊게 다가온다.

창가에 앉아 잔잔한 발라드 음악을 틀어놓고 한 편씩 읽어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음악의 부드러운 선율과 시인의 담담한 문장이 만나면 평범한 가을 풍경도 한 장면의 추억처럼 느껴진다.

시를 읽다가 잠시 책을 덮고 창밖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도 좋다. 시 한 편이 끝난 뒤에도 음악의 여운처럼 문장이 마음속에 오래 머문다.

이 시집에는 바람과 구름, 강과 바다, 꽃과 나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시인은 그 풍경을 통해 사랑과 그리움, 기다림과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어렵게 해석하려 애쓰기보다 가을 풍경 속에서 물이 흐르듯 읽을 수 있다. 100편 모두 저마다의 느낌이 있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을」, 「태풍」, 「길을 묻다」 세 편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첫 번째로 마음에 남은 시, 「가을」

「가을」은 계절이 찾아오는 순간을 아주 익숙한 일상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새벽녘 창문 틈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고, 잠결에 이불을 끌어당기는 순간을 통해 가을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달력의 날짜나 길가의 단풍이 아니라 몸으로 먼저 가을을 알아차리는 장면이 좋았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평범한 순간이 시인의 언어를 만나 한 편의 시가 되었다.

가을은 기다린다고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붙잡는다고 오래 머무는 것도 아니다. 때가 되면 조용히 찾아왔다가 어느 순간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며 계절뿐 아니라 사람과 인연, 삶의 시간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은 오고, 붙잡고 싶어도 떠날 때가 되면 떠나간다.

짧은 시지만 가을 아침의 서늘한 공기와 이불의 포근한 온기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는 마음, 「태풍」

「태풍」에서는 거센 바람에 풀이 쓰러지고, 내린 비를 맞으며 다시 일어서는 장면이 그려진다.

삶을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태풍을 만나기도 한다. 아무리 버티려고 해도 힘이 부족해 쓰러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쓰러지는 것이 곧 끝은 아니다.

풀은 바람에 맞서 부러지기보다 잠시 몸을 눕힌다. 그리고 비가 내리면 다시 일어난다. 그런 풀의 모습이 힘든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항상 강하게 버틸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 때는 잠시 주저앉아 쉬어도 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때 천천히 일어나면 된다.

“빛은 기다리지 않아도 벌써 와 있다”라는 마지막 부분도 마음에 남았다.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빛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을지 모른다. 필요한 것은 무조건 견디는 힘이 아니라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일 것이다.


길을 묻지 않고 흘러가는 삶, 「길을 묻다」

「길을 묻다」는 강과 구름, 바다를 통해 삶의 길을 이야기한다.

구름이 강이 되고 강이 바다를 향해 흐르는 모습에는 정해진 길을 찾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고민이 겹쳐 보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묻는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언제쯤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한다.

하지만 삶의 모든 길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목적지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걷고 흐르다 보면 그 과정 자체가 길이 되기도 한다.

“더 이상 길을 묻지 말자”라는 말이 그래서 더욱 깊게 다가왔다.

나 역시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할 때가 많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며 길을 찾기 위해 제자리에 서 있기보다 천천히라도 계속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은 구름대로, 강은 강대로 자신의 모습으로 흐른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길과 비교하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의 마음을 따라 걷는 시간

시를 읽는다는 것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같은 시를 읽어도 살아온 시간과 현재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은 그냥 지나친 한 문장이 어느 날에는 오래 마음에 남기도 한다.

『면도칼에 베였다』에는 시인의 그리움과 사랑, 상처와 기다림, 세월을 바라보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익숙한 자연과 일상의 언어로 쓰여 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생각하게 만드는 시들이 많다.

한 번에 100편을 모두 읽기보다 하루에 몇 편씩 천천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날이나 마음 한편이 허전한 날, 문득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날에 펼쳐보면 더욱 잘 어울린다.

잔잔한 발라드 한 곡을 들으며 읽다 보면 시인의 문장이 음악의 가사처럼 마음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지도 모른다.

면도칼처럼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 자리에 아픔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상처를 바라보게 하고, 그리움을 떠올리게 하며, 다시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이 시집은 마음을 베는 책이면서 동시에 그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져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이런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 가을날 천천히 읽을 시집을 찾는 분

  • 잔잔한 발라드 음악과 함께 시를 읽고 싶은 분

  • 사랑과 그리움에 관한 시를 좋아하는 분

  • 어렵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원하는 분

  • 힘든 시간을 지나며 다시 일어설 힘이 필요한 분

  • 하루에 한 편씩 시 읽는 습관을 만들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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