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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잠에서 깨다 -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
정병호 지음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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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잠에서 깨다는 한 권의 저서를 넘어, 한 세기를 가로질러 묻혀 있던 시간을 깨우는 행위에 가깝다. 2024년 작고한 인류학자 정병호의 구술 기록을 바탕으로 엮인 이 책은, 그 탄생 자체가 이미 공동체적 염원과 연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일본의 승려 도노히라 요시히코와 함께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고, 70여 년간 방치되었던 유골을 발굴·봉환하는 과정을 기록한 이 작업은 학문과 운동, 기억과 실천이 교차하는 현장이었다.

정병호는 인류학자가 해야 할 일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발굴 기획’을 꼽는다. 이는 단순한 학술 프로젝트가 아니다. 인류학이란 타자의 삶을 기록하고 이해하는 학문이라면, 그는 죽은 자의 침묵을 듣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았다. 특히 이름과 신원이 지워진 101구의 유골, 그리고 끝내 115구가 귀환하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한 발굴이 아니라, 지워진 존재를 다시 역사 속에 위치시키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가해와 피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한일 관계의 갈등 구조 속에서 강제노동 문제는 종종 국가 대 국가의 책임 공방으로 축소된다. 그러나 저자는 그 틀을 넘어, 홋카이도 주민들, 학생 자치위원회, 지역 공동체, 종교인 등 다양한 주체들이 만들어 낸 연대의 과정을 조명한다.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기억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관계망은 단순한 사과나 배상의 문제를 넘어 평화와 공동체적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적’과 ‘피해자’라는 도식 대신, 함께 기억하고 함께 애도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이 책에는 등장한다.

망각 속에 가라앉은 기억을 끌어올리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다. 유골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은 사회의 양심을 흔든다. 저자가 “천 개의 다이너마이트”에 비유한 70년 만의 귀향은, 과거를 폭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굳게 닫힌 무관심과 무지를 깨뜨리는 상징적 폭발이다. 오랫동안 기념되지 못하고,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이름과 지위, 기억을 돌려주는 일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역사 정의의 회복에 가깝다.

책의 말미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더욱 근본적이다.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강제노동박물관을 세우는 일은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기억의 방식을 제도화하는 일이다. 기억은 사적 감정에 머무를 때 쉽게 사라지지만, 공동체의 구조 속에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지속성을 획득한다. 정병호는 박물관 건립을 통해 기억·진실·평화라는 세 축을 공적 공간 속에 각인하고자 했다.

이 책은 미완의 숙제를 남긴다. 유골이 모두 돌아온 것은 아니며, 진실이 완전히 규명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은 유골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 그리고 기억을 둘러싼 윤리 또한 흔들리고 있다. 이 작업은 과거를 파헤치는 동시에 현재를 성찰하게 한다. 죽은 자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결국 산 자의 품격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긴 잠에서 깨다』는 기록이자 증언이며, 동시에 행동의 촉구다. 국가 간 대립의 언어가 아닌 인간의 존엄이라는 언어로, 침묵을 깨우는 인류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억은 과거를 붙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향한 미래를 열기 위한 조건임을 이 책은 강렬하게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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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잠에서 깨다 -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
정병호 지음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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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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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국 영화사 최초의 아동 영화이자, 제1회 조선총독부 주최 글짓기 경연대회에서 학무국장상을 수상한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수업료』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아이들의 글짓기 작품을 소개하기에 앞서, 해당 시기의 사회·문화·역사적 배경을 함께 제시하는데, 특히 1930년대 이후 일본의 상황과 병치하여 조선의 현실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불어 아이들이 쓴 글 가운데에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가 갖는 일반적인 선입견과 상충되는 내용도 적지 않아 흥미를 자아낸다.

‘수업료’라는 제목의 글이 학무국장상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당시 일본 식민 통치 기구가 내세울 수 있는 대표적 성과로서, 내선일체 이념에 입각해 조선인들이 일본의 교육 제도 안으로 편입되기를 바랐던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일본 식민지 교육 정책의 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식민 통치 기구가 전면에 내세운 글에는 필연적으로 당대의 담론과 의도가 투영되기 마련이기에, 아이들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글 속에서 드러나는 시대상을 읽어내는 과정은 신선하고도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를 학습할 때 흔히 일본은 가해자, 조선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접근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틀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례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아키타 우자쿠가 1921년에 발표한 「예술 표현으로서의 동화」에서 “어린이는 어느 국가, 어느 사회, 어느 인물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는 인간이기에 태어난 것입니다. 어린이가 인간이기 위해서는 어린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유롭게 발달시켜야 합니다.”라고 언급한 어린이에 대한 인식과 새로운 교육관 역시 일본 근대 교육사상의 일부였음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 가치는 양국의 충돌과 변용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복합적인 양상을 띠며, 이러한 시대의 입체성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어린이들의 일상 속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1940년 이후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조선인 가정부를 고용하면서 이름 대신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사실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조선의 어머니들은 일본인들에게 ‘오모니’가 되었고, 천황을 부모로 설정한 ‘하나의 가족’이라는 이념이 호칭을 통해서도 구현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조선의 여성은 피식민지인이자 사회적 약자였지만, 일본인 가정 안에서는 어머니적 존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책 87쪽에 수록된 경성사범학교 부속 제1소학교 3학년 시마이 레이코의 글 「너무 좋은 오모니」에서 “오모니는 마음씨가 곱고 친절합니다.”라는 문장이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밖에도 건강한 노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발된 글, 근대 도시 문화를 향유하는 어린이의 글, 전쟁과 관련된 글들은 서사의 층위를 확장하며 당대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 어린이의 글은 의식적인 선전 도구라기보다,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담론과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게 해주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특정 독자를 상정하지 않거나 섬세한 자기 검열이 없는 글이기에, 그 시대에 오갔던 언어와 세태가 보다 생생하게 반영되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오히려 글의 신뢰성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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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남북국사 페이퍼로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이문영 지음 / 페이퍼로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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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남북국사』는 통일신라와 발해, 후삼국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간결하면서도 입체적으로 그려낸 교양서다. 이 책의 특징은 단순히 연표식으로 사건을 나열하지 않고, 당대에 전승된 설화와 구전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끌어와 역사의 흐름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설총의 「화왕계」를 통해 유교적 정치 이념과 군주의 덕목을 드러내고, 수로부인 설화와 수로왕 설화의 유사성을 통해 고대 사회가 공유한 여성상과 권력 구조를 비춘다. 또한 고구려 유민이었던 이정기 일가의 흥망을 다루며, 분열과 통합의 변곡점에서 개인의 생애가 국가사와 긴밀히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홍라녀 전설, 효녀 지은과 효종랑의 이야기도 단순한 전기담을 넘어 사회적 가치관과 윤리적 규범을 반영하는 역사적 텍스트로 읽히게 한다.

저자는 이러한 설화를 단순한 민간 전승이 아닌 역사와 문화를 해석하는 열쇠로 제시한다. 신화와 설화는 한 사회가 스스로를 이해하고 타자와 구분하는 방식이자, 오늘날에도 친근한 역사 접근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청소년이나 일반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흡인력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을 유추하는 방법을 활용한 것은 탁월하다. 이는 학문적 전문성을 조금 낮추더라도 독자의 공감을 얻고, 역사와 일상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효과를 낸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풍부한 지도와 도표의 수록이다. 남북국 시대는 교역과 외교, 전쟁이 빈번히 얽히던 시기였는데, 저자는 이를 시각자료로 재현하여 독자들이 공간적 맥락 속에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활발한 교역로와 군사 충돌의 현장을 지도로 확인하는 과정은, 텍스트만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역사의 다층성을 드러낸다.

종합하자면, 『하룻밤에 읽는 남북국사』는 전문 연구서의 깊이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대중 역사서로서 분명한 의의를 지닌다. 설화와 구전 이야기라는 문학적 매체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고, 시각 자료를 병행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 방식은 오늘날 역사 교육과도 맞닿아 있다. 역사가 단순한 과거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이 남긴 이야기와 흔적을 통해 오늘을 비추는 과정임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남북국사의 서막을 열어가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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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읽는 시간 - 노벨 문학상 수상
전국국어교사모임 외 지음 / 해냄에듀(단행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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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품마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입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저술해서 그런지 학생들이랑 이야기해볼 지점을 제시해줘서 수업 연구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한강 작품은 시대를 조망하고 적합한 언어로 아픔, 고통, 역사의식 등을 조명해서 항상 울림이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정리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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