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여름을 지나가다 - 오늘의 작가 총서 33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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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조해진 (지음) / 민음사 (펴냄)



침침하다. 그래서 밝음보다는 어둠이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격동적이지 않은 잔잔함이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 난 그런 색을 본다. 어둡지만 온전히 캄캄하지 않은 저기 멀리 아주 작고 선명하지 않는 점박이 빛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커지는 그래서 밝음을, 선명해짐을 느끼게 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난 그런 빛을 본다. 그 빛은 결국 나를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빙의시키고, 작가의 하고자 했던 말속에서 살며, 작가가 의도한 깨달음을 통찰한 후 현실로 돌아 나와 마주한다. 그렇게 그의 생각을 읽어낸 것으로 그의 작품을 판단하고, 나를 돌아보는 것. 이 과정이 책을 읽는 나만의 보람이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1권이 조해진 작가의 작품이었다. 비슷한 느낌. 비슷한 정서를 느낀다. 어둠으로 시작하는 느낌. 하지만 내내 아주 작고 희미한 빛의 한 점이 이야기가 끝날 무렵 밝게 비치는 .... 이 작품 '어름을 지나다가'를 보면서 또 한 번 그녀의 색을 경험하게 된다.

격하지 않으며 가볍지 않은.. 이 느낌. 다른 젊은 작가와는 다른 자품의 냄새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한 덩어리의 모순으로 빚어진 가면


아홉 번. 30분짜리 생애.

공인중개사 직원으로서 알게 된 누군가가 내놓은 집의 비밀번호로 주인이 없는 시간에 그 집에 들어가 30분을 보낸다. 집 주인의 옷을 입어보기도, 그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해보기도 한다. 가구점에 들러 가구 장인이 만들었을 장을 만져보기도, 침대에 누워보기도 한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본다. 그렇게 민은 9개의 집을 들락이며 그들의 삶을 30분간 살아낸다. 그들의 사는 집은 거실에 와인 바까지 갖춰진 고급 빌라부터 습하고 컴컴한 반지하 원룸까지 다양했지만, 인에게는 목적 없이 태어나 아픔 없이 죽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같았다. 30분짜리 생애를 수집할 수 있는 이 혜택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렇게 회계사였던 민은 공인중개사 직원으로 1년을 버텨냈다.



박선우. 수호가 불리는 이름.

입대를 앞둔 젊은 청춘 수호.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온 가족이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우연히 주은 지갑의 신분증으로 타인의 이름으로 타인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름도 어색했지만, 타인의 이름으로 얻은 아르바이트에서 피에로 얼굴과 복장으로 자신을 완벽해 감추고 나니 수호가 아닌 선우로 선우가 아닌 피에로로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스스로 느낀다. 하지만 연주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그녀의 카드로 돈을 인출하고, 그 돈으론 여행작가가 꿈이었던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여행을 떠날 수 없다는 걸 바로 깨닫게 된다.




두려운 건 오직 하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오늘뿐이었다.


뜨거운 여름, 그 또한 지나간다.

민으로 인해 등장하는 인물들, 자신의 행동으로 누군가가 죽고 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괴로운 민.

자신의 잘못이 아닐 테지만 신용불량자가 되고 남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선우가 느꼈을 무게.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를 보면서 공감이란 것을 해본다.

남의 지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정당하다 할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선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이 선우를 보살피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작은 이야기로 출발하여 결국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게 되고 난 생각한다.

이들이 겪는 지금의 무게는 곧 지나갈 것이다.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오히려 스스로를 위로했던 그들은, 특히 민은 실제 하는 인물에 대한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아닐까.

계절의 변화를 누구도 막을 수 없듯이 지신이 보내고 있는 계절의 지남을 잘 극복해가는 느낌이 서서히 보인다. 그것은 마치 아주 작은 빛이 커지는 느낌처럼 독자의 가슴을 부풀게 한다.


흥미를 위한 읽고 싶은 책이 아니다.

생각이 오래 머무는 정서 깊은 책. 그런 책으로써 <여름을 지나가다>를 대하게 된다. 누구에게라도 그럴 향기 짙은 이야기였다.

조해진 작가에 대한 애정이 생겨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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