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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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 그 참혹한 붕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 고통을 이겨내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가급적 그런 끔찍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없었던 듯이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1995년 스무 살의 나이로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일당 3만 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산만언니의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를 읽으면서, 재난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존재에 대해서 환호하다가, 그 후에는 잊혀진 그분들의 생존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 이승과 저승 사이

재난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순간은 불과 몇 초 사이에 결정되기도 한다. 사고가 나기 직전 작가는, 식품 코너 쪽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걸어갔는데, 그 순간 건물이 붕괴되었다. 몇 초 사이에 저승에서 이승으로 운명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부탁해서 아비규환인 종합병원을 빠져나와 근처의 작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것도 작은 기적이었다. 그러나 극적인 생존 이후의 삶은 결코 녹녹하지 않았다.

'불행에 대한 글은 쓰면 쓸수록 아프다. 세상에 아름다운 흉터는 없다.'

* 겹치는 비극

어렸을 때 큰오빠로 부터 학대를 받았던 상처에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삼품 백화점 붕괴 이후 생존자의 힘든 삶을 살아가는 중에 작은오빠 사업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빚까지 짊어지게 된다. 그리고 갑자스러운 엄마의 수술까지 불행은 이어진다.

'다행히 엄마의 발목 수술은 잘 끝났지만 병원비를 계산할 때 엄마가 그 힘든 수술을 받으면서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무통주사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가난의 본질을 마주했다. 그러니까 가난이라는 것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프고 두렵고 무서운 것까지 참고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이다. 이것이 가난의 진짜 얼굴이었다.'

* 폭탄주 같은 사회적 참사

사회적 참사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전혀 특별한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오늘 아침 등굣길에서 만났던 학생이며, 어제 퇴근길에서 마주쳤던 우리네 이웃이다. 다시 말해, 다음에는 내 차례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 위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수차례의 자살 시도 등으로 힘겹게 생존 이후의 삶을 이어오고 있던 작가는, 작년 여름 지팡이를 짚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등이 구부러진 할머니가 중앙선을 건너자마자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는 위태로운 상황을 목격한다. 그런데 그 순간 오토바이 한 대가 나타나서 할머니를 위협하던 차들을 가로막고,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광경을 목격한다. 오토바이를 탄 청년의 등에는 '신속배달'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 일상에서 만나는 위로

직장에서 퇴사하기 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수녀님께서 밥을 차려주시고는 작가의 하소연을 듣고 하시는 말씀.

"사람들 말 신경 쓰지 마. 누구는 사람 볼 줄 아나. 우리 다 마찬가지야. 자기 자신도 못 보는 게 인간인데... 근데 잘 가고 있는 나 등 떠밀어 넘어트리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런 나 일어나라고 손 잡아주는 것도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

* 저는 삼품 생존자입니다

세월호는 하나의 사고가 아니라 각기 다른 304명의 희생자와 유가족이 겪은 개별적인 고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체 이런 일이 왜 생겼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80년 광주도 지겹지 않고, 제주 4.3도 마찬가지다. 이 땅의 모든 사회적 참사가 지겹지 않다. 끝까지 이 일에 대해 물을 것이며 평생 기억할 것이다. 우리 잊지 말자. 진짜 그러지 말자.

겨울에 찾아간 보육원에서 춥고 어두운 놀이방에 혼자 남겨져 울고 있는 아이이게, 젤리 줄게 놀러가자고 했더니 그 아이가 "젤리 아니야."라고 세차게 울먹이면서 "안아줘"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회적 참사를 겪은 후에 살아남은 생존자와 각종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평생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유가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삼풍독서클럽 #저는삼풍생존자입니다 @pruns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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