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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는 가운데.



2006.



3주 전만 해도 지중해항구이자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는 상업활동들로 시끌벅적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지금까지도 베이루트주요 수출품들은 시온주의 살인자들의 공습들을 피해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북미인들과 유럽인들로 된 피난민들에 행렬이다. 이스라엘 수상이던 에후드 올메르트는 이스라엘 국방군들이 "세계에서 도덕심이 가장 투철하다" <예루살렘포스트>, 6월 1일>라고 엄숙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군들은 레바논을 20 후퇴시킬 용의마저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건 15 내전으로도 피폐해진 레바논에 과거염두해 둔 발언이었다. 레바논은 내전으로도 신음하고 있던 1982 6 이스라엘 국방장관이던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군들 베이루트로 진군하게 했다. '갈릴리 평화작전' 이란 이름으로 침략 행위 레바논, 이스라엘에 국경지대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소속 카투샤 로켓 부대를 레바논 쪽으로 밀어내고자 제한군사개입이라고 애초선전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목적은 종교적이지는 아니한 민족주의 단체이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들을 제압하고 레바논 이스라엘 보호령으로 두려는 이었다. 침공으로 인해 이스라엘 군은 최소한 1 7천여 명을 살해했으나 팔레스타인해방기구제거하지는 못했다. 



이스라엘 군대의 잔인점령저항해서 나라 이슬람 소수파이던 시아에 깊이 뿌리내린 무장정치조직 '레바논이슬람교저항군' 헤즈볼라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스라엘 군 2000까지도 남부 레바논 일부점령하고 있다가 결국 헤즈볼라 게릴라들에 장기소모전굴복해서는 쫓겨났다. 이로써 헤즈볼라는 시온주의자 확실하게 패배하게 한 유일한 아랍 무장조직이라는 명예를 얻게 됐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인종주의, 종족주의 지배계급패배에 대한 치욕을 맘에 품고 복수기회를 다짐으로 애타게 기다려왔다. 지금의 레바논 사태는 지난 1 팔레스타인 수니 무장정치조직이던 하마스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비롯되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약화하고자 1970년대 부터 팔레스타인 수니비밀리지원해왔다. 부패대중적 불신들에 허덕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정부는 폭넓 혐오대상이 되면서부터는 근래자치의회 선거에서도 하마스에게 패배했다. 가자지구라는 좁은 빈민가에서 살고 있던 100 에 팔레스타인 인민들에게는 삶 그저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승리한 하마스 정부구상하려 들자 미국의 지원을 받 이스라엘 극심경제제제를 가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14 명의 직원의 절반에게 줄 봉급이던 점령지역 관세수익으로는 5천만 달러몰수해버렸다. 2005 2 하마스는 이스라엘로부터 휴전을 선언했고 휴전으로부터는 16개월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러나 이스라엘 없는 다수의 방관자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저항투사들을 '선택해서 살해'하는 목적들마저도 결코 포기하지도 않았다. 이슬람 국가의 적십자사적신월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은 2006 올해만, 4월과 5에만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저항투사 73살해했다. 이스라엘 군들의 포격으로 가자지구 해변에서는 그저 휴가를 즐기던 팔레스타인 일가족 7명이 살해되는 불미스러운 사건마저 일어나자 하마스는 6 10 자신들이 선언했던 휴전마저 철회했다. 이스라엘 사건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면서도 중립단체들에 대한 사건조사마저 허용하지도 않았다. 



이로부터 몇 주일 후인 6 24에는 이스라엘 가자지구에 진입해서는 어느 의사와 그에 형제까지도 납치했다. 대부분에 서방언론들도 사건무시했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팔레스타인 저항투사 케렘샬롬 이스라엘 초소공격해서는 이스라엘 상병 길라드 샬리트를 생포해서 보복하자 사건은 그제서야 세계 언론들로부터 1기사만 되었다. 사건 직후에도 이스라엘 가자지구에 연료공급하는 송유관 전부 차단하고 팔레스타인 인민 이스라엘로 진입하는 통로검문소를 전부 폐쇄한 뒤에야 공습과 포격을 개시했다. 6 28에는 이스라엘 공군기가 가자지구에 유일한 발전시설들을 파괴했다. 유엔 긴급구호 본부 책임자이던 얀 에겔렌트는 6 30에 "가자지구상황 특히 전기급수의 부족, 이것이 하수시설들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구호활동을 할 수 없는 사태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이 겨냥이러한 '집단징벌'에는 제네바 협정에는 금지됐었다. 그러나 미국 시온주의자 국제법 위반행위를 그저 자유롭게 허용해왔다.



헤즈볼라 이스라엘 : 다윗와 골리앗 대결 2.



이스라엘 가자지구봉쇄한 지는 18 째 되던 7 12에는, 헤즈볼라 투사들은 이스라엘 북쪽국경에서 순찰 이던 이스라엘 급습해서는 군인들 3명을 죽이고 2명을 생포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추격하는 이스라엘 탱크탱크 안에 있던 4명의 군인들을 섬멸했다. 헤즈볼라 지도자이던 하산 나스랄라는 포로교환을 제안했으나 이스라엘 제안을 거부하고 베이루트와 남부 레바논에 공습을 시작했다. 또 레바논 남쪽 3분의 1 나머지 지역과 분리하기 위해서 베이루트 공항, 교량, 주요 고속도로 사회기반시설 찍어서 폭격했다. 2005 5-6에 레바논 총선에서는 헤즈볼라 후보 선거연합을 맺은 아말파 후보 함께 레바논 의회 128 가운데 29석을 차지했다. '테러조직'들에 불과하다는 제국주의 언론들의 웃음는 달리 헤즈볼라는 레바논과의 궁핍한 시아 대중 속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베이루트의 외각지역은 아랍어로 교외라 불리는 다히야라고 한다. 이 말은 때때로 위험한 미로가 있는 빈민 밀집지역을 의미해왔다. 이 지역은 또한 헤즈볼라의 아성이다. 이곳의 지저분한 뒷골목에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둘러쳐진 빈민가옥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 지역에서는 헤즈볼라는 행정당국을 종종 능가하는 조직이 되었다. 학교, 할인약국, 식품점, 고아원은 물론 주요 병원도 하나 운영한다. 쓰레기 수거와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파괴된 가옥들을 다시 세우는 일도 한다. 또한 이스라엘에 저항하다 사망한 젊은 투사들의 가족들도 부양한다. 결국 헤즈볼라는 레바논 국민 25만 명들에게 혜택을 베풀고 있으며 이 나라에서는 두 번째 규모로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7월 16일.



이스라엘 군들은 남부 레바논의 시아파 거주지역을 공습하면서부터 민간인들에게 피난을 떠나거나 폭탄에 맞아 죽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경고했다. 제국주의 언론들은 이 경고를 이스라엘의 인도주의 조치라고 선전하면서부터는 시온주의 학살자들의 '인종청소'를 은폐하고 있따. 이스라엘 정부는 궁핍한 시아파 피난민들이 이슬람교의 드루즈파와 수니파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대대적으로도 유입되기 시작하면 헤즈볼라에 대한 적대의식은 격화될 걸로 예상한 듯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에 분노의 대부분은 이스라엘 군들에게 퍼부어졌다. 전쟁이 끝나면 시아파 투사들을 억압할 비용들을 부담할 반괴뢰정권들이 베이루트들에 수립될 것이라는 이스라엘 지배계급들의 소망에는 물거품마저 되었다. 이 바람은 그들에 오랜 소망이었다. 



1955년 이스라엘의 국부 다비드 벤구리온은 '기독교도 장교'를 독재자로 레바논에 앉히자고 제안했다. 모레 샤레트는 이 생각들이 레바논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서 나온 소산이라는 걸 보여주며 그의 제안마저 거부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27년이 지나서야 아리엘 샤론은 똑같은 생각을 실현하고자 했다. 바샤르 제마옐은 레바논의 대통령으로도 앉혀졌으나 곧 암살되었다. 그의 형제였던 아민은 대통령직을 승계한 후로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나 곧바로 권력에서는 밀려났다. 그런데도 바로 이 인물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침공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우리 아브네리, <진정한 목적>, 7월 17일.  



이스라엘 학자 탄야 라인하트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영토 확장을 시도해온 시온주의 역사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옛 기억이 있을 만큼 나이가 든 모든 이슬라엘인처럼 레바논인들도 알고 있다. 벤구리온의 시온주의 비전에 따른다면 이스라엘 국경은 자연경계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 즉 동쪽으로는 요르단 강, 북쪽으로는 레바논의 리타니 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67년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면서 요르단 강을 장악했다. 그러나 리타니 강을 국경으로 삼으려는 모든 시도는 지금까지도 실패했다. 2000년 이스라엘 군의 남부 레바논 철수 당시 나는 이곳을 다시 침공할 계획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비전에 따르면 일단 남부 레바논에서 주민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이것은 1967년에 시리아 영토였던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이 점령했을 때와 같은 수법이었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중동>, <카운터펀치>, 7월 26일.



1967년 단 엿새 동안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군대들을 물리치고 시리아의 골란 고원과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빼앗았다. 동시에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도 차지했다. 그러나 남부 레바논을 18년이나 점령하면서도 헤즈볼라를 박멸하지 못한 채로 2000년 이스라엘 군들은 쫓겨났다. 그러자 이스라엘에는 '월남전증후군'의 유사현상도 발생했다. 레바논의 늪에 빠져 또 다시 허우적거릴 경우 여론과 군대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군들은 대체로 방어수단이 없는 가자지구들의 민간인들에 대해서는 장기소모전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레바논만큼은 완전하게 박살내기를 원했다. 지금까지도 헤즈볼라 투사들은 침략군에 심각한 타격들을 입히면서도 자신들에 비해 인원수와 장비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이스라엘 군들도 무적도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지금까지도 헤즈볼라의 원시적 단거리 로켓 수백 발들이 북부 이스라엘에도 떨어졌고 일부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기도 했었다. 헤즈볼라 게릴라 수천 명들이 끈질기게 저항하자 시아파는 물론이고 수니파, 무종파 아랍인들까지도 포함해서 아랍세계 전체마저 흥분했었다. 시온주의 억압자들에 대항해서 혁명가들은 헤즈볼라, 하마스에게 군사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이 반동종교정치운동들로부터도 더욱 권위를 인정받는 건 사회주의자, 여성, 동성연애자, 무신자들은 물론이고 봉건반동들인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도 통치되기를 원하지는 않는 모든 이들에게는 그저 불길한 징조들일 뿐이다.



1983년 레바논: 제국주의자들, 쫓겨나다.



신이 자신들을 선택했다는 선민사상에 젖은 이스라엘의 지배계급들은 이스라엘 군의 사상자 수가 심각하게 증대한다는 것을 아주 꺼리고 있다. 이 대문에 이스라엘 군들의 공세는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미국과 기타 제국주의 동맹국들도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들을 돕기 위해서 외국 군대들로 구성된 '평화유지군'을 레바논에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자기 나라 군대를 제공할 용의는 없다.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엔 시기상조라고 공언한 프랑스와 미국은 1982년 다국적군 구성에 참여했던 악몽에서는 아직 벗어나지도 모사고 있었다. 당시 이들은 이스라엘 침공 후 레바논 내전들에 평화유지군으로도 개입했다가 헤즈볼라와 치명적으로 뒤엉켰다. 1983년 10월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막사에 헤즈볼라가 자살폭탄 공격을 가했고, 미군 등은 서둘러 철수했다. 자살폭탄 공격들은 241명의 미군과 58명의 프랑스 공수부대원들을 죽였다. -<뉴욕타임즈>, 7월 25일.



제국주의자들을 레바논에서 몰아낸 1983년의 공격들은 이슬람교 반동들에 의해서 비록 수행되기는 했지만 제국주의를 진정으로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에게도 환영받았다. 이 패배로부터에 영향들은 지금까지도 제국주의 지배집단 내부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럼스펠드 독트린>이란 글에서 제이콥 헤일브룬은 이렇게도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2003년 이라크를 선제공격하면서 이른바 파월 독트린은 완전하게 폐기되었다. 이것은 학자들처럼 쓸데없이도 사소한 것들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공화당 내부가 근본적으로도 분열하는 문제였다. 파월들의 노선들은 그의 스승 와인버거들의 노선을 그대로 계승했다. 해병대 막사에 대한 자살폭탄 공격 직후에도 레바논 줄행랑을 정당홯하기 위해서 1984년 당시 미국방장관 와인버거는 이 노선들을 천명했었다. 이것은 전략적 굴욕 노선들이었다. 공화당들의 강경파 다수는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미국이 지금까지도 겪고 있는 곤경들이 이 굴욕 노선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믿고 있다. -<뉴욕타임스북리뷰>, 4월30일.



아들 부시는 임기 중 허세를 부리기도 했으나 국내외에는 역사상 유레 없는 재앙들을 연속해서 겪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점령으로도 군사적 우위를 자랑하던 미군들은 현재 지구상 대부분들에 지역으로도 분산되어서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일찌감치 선언된 전쟁승리는 너무 낙관적이었던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미국과 그 동맹하수이던 군대들의 군사적 지위로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악화되어왔었다. 한편으로는 부시의 '반대자' 민주당에서는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근거로만으로도 시온주의자들의 범죄행위를 적어도 공화당만큼은 더욱 지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 11월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부시의 이스라엘 침공지지는 그를 괴롭힐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시온주의자들의 전쟁범죄를 지지하면 국내는 아니더라도 국외에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세계는 이스라엘 침공의 본질을 직시하고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미국방부에서는 레바논 시아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들에 대해서도 이라크의 시아파가 미국·영국 점령군들에 대한 공격들을 재개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으나 만신창이가 된 제국주의 '연합군'들은 이라크 소수파이던 수니파의 저항투사들에도 맞서느라 기진맥진한 상태다. 그런데도 다수파이던 시아파가 점령군들에 대항해서 다시 들고 일어선다면 제국주의자들은 통제불능의 상황으로까지도 빠져들 것이다. 



시리아와 이란에서 손을 떼라!



백악관들의 거짓 선전꾼들은 헤즈볼라가 이란 그리고 이란의 정략적 동맹국인 시리아의 하수인들에 그저 불과하다고 암시한다. 그러나 헤즈볼라와 두 나라 사이의 관계에는 이스라엘과 미국 간의 관계와 성격이 아주 비슷하다. 아프쉰 몰라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들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을 재정적·군사적으로도 지원한다. 그리고 지역의 문제들에 대해서 두 나라는 긴밀하게 협의한다. 이들은 가끔 밀실에서 서로 다툰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정치지도자들은 약소국들을 공개적으로도 비난하기를 꺼린다. 


-<www.salon.com>, 7월20일.



헤즈볼라에서는 이란으로부터 매년 약 일억 달러 상당의 자금마저도 쉽게 지원받는다. 그러나 이 조직들의 자금에 대부분에는 외국에 거주하고 있던 레바논인들의 성금에서 나온다. 지금의 레바논 사태를 핑계 삼아서 미국에서는 시리아와 이란을 공격할 수도 있겠다. 두 나라는 이미 몇 년 동안이나 미국에도 협박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최근 몇 개월 동안이나 부시 행정부에서는 이란이 어떤 종류든 핵능력들을 보유할 '위험성'들에 대해서는 반미치광이 같이도 선전공세를 퍼부었다. 혁명가들은 시리아의 바트당 세습독재체제나 이란의 종교지배체제를 정치적으로도 지지하지는 않지만 제국주의의 도발과 압박에 대해서는 두 나라를 군사적으로도 방어한다. 이 군사적 방어에는 두 나라가 핵무기를 비롯해서도 효과적인 자기방어수단들을 보유할 권리를 옹호하는 것도 포함된다. 



중동사회주의연방으로 전진하자! 



시온주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자본주의체제에서는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을 강탈해왔다. 그러나 지난 세기 이후에는 지금까지도 중동역사를 점철해온 종교적·민족적·인종적인 유혈사태는 고통과 불행밖에 가져다줄 것도 없다. 연속혁명 강령에 입각한 국제주의적 레닌주의 정당들의 지도하에서 일련들의 노동계급 혁명을 성공시키는 것들을 통해서만 중동들의 다양한 민족들 간의 갈등은 정당하고 공평하게 해결될 수도 있었다. 중동사회주의연방만이 거대한 유전들을 포함한 이 지역들의 자원들이 제국주의 석유메이저들과 이들의 하수인인 이스라엘과 아랍지배집단의 초과이윤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중동에서 노동자와 피억압 대중들의 통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병영국가를 내부에서 붕괴시켜야 한다. 시온주의라는 인종주의에 오염되기는 했으나 유대인 노동자들도 아랍노동자들 그리고 기타 이 지역들의 피억압 인민들과 공통의 계급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 이 점들을 인식하면서부터 동시에 억압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방어하는 혁명운동만이 이 임무를 성취할 수 있다. 중동의 처절한 민족적·인종적·종교적 갈등들을 진보적 방식으로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게급의식들이 필요하다. 세계노동운동들은 이 의식의 발전들을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의 제국주의 점령들을 적극적으로도 반대하고, 제국주의 공격에 대해서는 이란/시리아를 방어해야 한다. 가자지구/레바논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스라엘 군들의 살인마적 공격들에 대해서 혁명가들은 하마스/헤즈볼라에서의 저항투쟁에도 군사적인 지지를 보내지만, 이들을 미화하거나 이들의 종교지배체제를 정치적으로도 지지하지는 않는다. 계급의식에 투철한 중동외부의 투사들은 이스라엘 군이 가자지구/레바논에서 살인과 파괴를 자행하는 동안 자신이 속한 항만/철도/운수 노동조합 등이 이스라엘로 향하는 전쟁물자를 처리하지도 못하게 투쟁해서는 위력적인 모범들을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투쟁들은 제국주의자들과 그 동맹세력들의 야수적 행동들에 분노하는 이 지역들의 피억압 대중들에게 이슬람교들의 몽매주의 강령이라는 막다른 골목보다 질적으로도 우수한 정치 강령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시온주의자들의 테러가 가져온 음울한 혼란과 야만상태 속에서도 페르시아인, 쿠르드인, 아랍인, 기독교인, 이슬람교도인, 유대인 그리고 기타 이 지역들의 인종적·종교적 집단들이 함께 평화를 누리면서도 살 수 있는 길들을 찾을 수 있다는 며쳧 희망들의 불빛들이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즈>들의 보도에 따르면 7월 16일 아랍인들과 유대인 이천여명들이 텔아비브에서 함께 시위를 하면서 이스라엘들의 레바논 침공들에 항의했다. 이스라엘들의 피비린내 나는 영토 확대정책 한가운데에서도 잔인한 시온주의 전쟁기구에도 반대하는 용기 있는 개인들이 있다는 것을 이 시위가 입증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역사적인 시기에는 많은 수들의 개인들, 심지어는 마르크스주의자들도 혁명의 가능성에도 이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인류에게는 다른 해결책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조직적 대중학살들이 이미 '따분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되었던 1916년에 독일의 위대한 공산주의자 로자룩셈부르크는 이렇게도 지적했다. "세계자본주의체제를 전복하는 것을 통해서만 착취, 억압, 전쟁을 끝장내는 것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사회주의자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대 노동계급들은 자신들의 역사적인 임무를 의식하는 각 단계마다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이 계급들이 해방으로 가는 골고다의 길에는 무시무시한 희생들로 점칠되어왔다. 1848년 6월 혁명의 투사, 파리코뮌들의 희생자, 1905년 러시아 혁명들의 순교자 등 유혈의 그림자에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파리코뮌들의 영웅들에 대해서도 마르크스가 서술했듯이 이들은 명예의 전장에서도 쓰러졌으며 "노동계급들의 거대한 심장 속에서도 영원하게 모셔질 것이다." 현재 모든 나라들의 수백만 노동자들이 치욕, 형제노동자들에 대한 살해, 자기파괴 속에서도 노에의 노래를 부르며 쓰러져가고 있다. 물론 이것들을 우리는 피할 수도 없다. 우리들의 운명은 그저 모세가 사막을 지나며 인도했던 유대인들의 운명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는 패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법을 잊어버리지도 않았다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유니우스 팸플릿>,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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