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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는 가운데.



우리는 10월 혁명들로부터 성공했다. 그러나 이 혁명에는 출판에 영역에서도 좀처럼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10월 혁명에 격동을 포괄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이 혁명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치적·조직적인 측면들을 다루고, 올바르게 부각한 저작들은 아직까지도 단 한 권도, 단 한 줄도 출판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불행한 사실도 또 있다. 혁명 준비 작업 및 혁명 그 자체에 대한 세부정보들을 담고 있는 1차 자료들이나 그 중에는 가장 중요한 공식 문서들로부터는 아직까지도 출판되지도 못하고 있다. 10월 혁명 이전까지에 혁명사 및 당사와 관계된 허다한 문서들이나 자료들은 벌써 출판됐다. 10월 혁명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었다. 그러나 정작 10월 혁명들은 제대로 관심이나 흥미마저도 끌지 못하고 있다. 혁명으로부터 승리했으므로 그걸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내린 듯이 보인다. 10월 혁명들에 대한 연구는 미룰 수 없는 사회주의 건설 과업에서도 직저적이고 즉각적으로도 도움마저 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0월 혁명들에 대한 직접적인 준비와 관계된 실제조건들, 혁명에 대한 실제적인 완수 및 과정, 혁명 이후에도 혁명 성과를 공고하게 한 첫 몇 주일 등들에 대한 연구는 아무런 이득마저 되지도 않는다고 이미 결론내린 듯이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들에는 무의식적으로도 설령 잠재해 있다고 하더라도 굉장하게 잘못됐다. 특히나 편협하게 치우치고 일국적인 사고들에 단면들을 잘 보여줄 뿐이다. 10월 혁명들에 대한 경험들을 다시금 반복할 필요마저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러한 경험들로부터는 무엇도 배울거도 없다는 결론에는 결코 내릴 수는 없었다. 러시아는 인터내셔널에 일부이고 다른 나라 노동자들도 자신들에 '10월혁명'을 성취해야 할 과제마저도 안고 있었다. 우리는 이로부터 말해준 실례들을 작년에도 많이도 접했었다. 서방에서는 매우 선진적인 공산당들조차도 10월 혁명들에 대한 교훈들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혁명들에 대한 실제 사실들을 대체로 알고 있지도 못했다. 내 주장들을 반대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거다. 10월 혁명을 그저 연구했거나 그와 관계된 문서들을 출판한다는 건 과거에 대한 이견들을 다시금 부추기는 꼴만 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를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는 건 아주 치졸할 뿐이다. 1917년에도 있었던 이견들로는 아주 중요한 의미마저도 담고 있었고 그저 단순하게, 우연하게 발생한거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사실들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는, 당시에도 오류를 범했던 인사들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그때의 이견들을 들추는 더럽고 치사한 행위는 없을거다. 그러나 사소한 개인적인 고려들 때문에 10월 혁명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건 더욱 인정할 수도 없겠다. 왜냐하면 10월 혁명들로부터 제기한 문제들에는 국제적인 의의마저도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불가리아에서는 혁명마저도 처참하게 패배를 당했다. 무엇보다도 불가리아 공산당에서는 숙명론이나 교조로부터 젖어 있다가도 둘도 없는 혁명에 대한 기회마저도 놓쳐버렸다. 6월 차코프 쿠데타에 이은 농민봉기로는 혁명들을 성공할 수 있었던 둘도 없는 기회였지만. 그리고선 오류를 만회하려고 서두른 나머지 정치적·조직적인 준비들도 없이도 9월 봉기를 일으켰었다. 불가리아혁명에는 독일혁명에 대한 전주곡으로 됐어야만 한다. 불행하게도 불가리아에서는 엉터리 전주곡들은 독일에서 더 지독한 엉터리 혁명들을 불러일으켰다. 작년 하반기, 독일에서는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하고 절대적으로도 유리한 혁명에 대한 기회를 찾아왔다. 그러나 공산당 지도부에서는 정작 이걸 말아먹는 방식으로 아주 모범적으로도 보여주었다. 그보다 더욱 불행한 일들도 더 있었다. 작년 불가리아와 독일에서도 실패한 혁명으로는 그러한 중요성에 비추어서도 올바르게, 또는 충분하게 평가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나는 독일에서 상황들을 개괄적으로도 묘사한 글을 쓴 바 있었다. 그리고 내 묘사는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올바르다는 건 사태에 대한 전개로도 하나하나 입증됐었다. 그런데도 문제는 어느 누구도 이와 다른 설명마저도 하려는 시도조차 보이지도, 정작 하지도 않았다. 우리에게는 개괄적인 묘사 이상으로도 필요하다. 작년 독일에 대한 상황에서는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실에서도 입각해서 설명해야만 한다. 이 매우 참혹한 역사적 패배에 대한 원인들을 구체적으로도 해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10월혁명을 정치적·전술적으로도 자세하게 분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불가리아와 독일에 사건들을 분석한다는 건 사실상 할 수 없다. 10월혁명에 성사방법이나 성과는 단 한 번도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않았다. 10월혁명에 승리에 그저 열광에서는 유럽에서도 자동적으로 혁명으로 터져서 이 혁명에 대한 교훈들을 이론적으로도 되새길 시간마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 같다.

그러니 현재까지에도 사태들로는 노동계급혁명들을 지도하는 정당들 없이는 혁명 그 자체로는 할 수 없다는 걸 입증했다. 노동자들은 자생적인 봉기들로부터 국가권력들을 장악할 수 없다. 고도로 공업화되었으며 고도에 문화적인 수준마저도 누렸던 독일에서조차는 1918년 11월 노동자들에 자생적인 봉기로는 권력들을 자본가계급들에게 넘겨줬을 뿐이다. 한 유산계급들은 다른 유산게급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을 수 있다. 자신들에 부와 문화적 수준 그리고 국가기구 내에서는 수 많은 연줄들로부터 정치적 행동으로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계급들은 자신들에 혁명정당들 없이는 절대권력을 장악할 수는 없겠다. 1921년 중반이 되어서야 '대중들을 획득하라', '공동전선들을 수립하라' 등들에 구호를 외치면서 각국에 공산당들을 조직할 수는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10월혁명들로부터 제기했던 문제들은 뒷전으로 그저 밀려났고 동시에 10월혁명들에 대한 연구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작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노동계급들에 혁명에 대한 문제에도 봉착했다. 모든 관계된 문서들을 수집하고 모든 할 수 있는 자료들을 출판하고 연구에 몰두해야 할 필요는 이제 더욱 절실해졌다! 



모든 나라, 모든 계급, 심지어는 모든 당들도 가혹한 경험이란 매질들로부터만 뭔가를 배운다. 이를 우리는 당연하게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 다른 계급, 다른 당들에 대한 경험들은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는 뜻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1905년 혁명에 대한 경험들을 거치기는 했지만 프랑스 대혁명, 1848년에 혁명들, 파리코뮌 등을 연구하지도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10월혁명들을 쉽게 성취할 수는 없었을거다. 과거 혁명들에서 제시했던 교훈들을 연역하고 이로부터도 혁명에 대한 역사적인 발전들에 대한 논리를 확대하고 적용해보면서 우리는 러시아 혁명들에 '일국적' 경험들을 거쳤다. 10월 혁명 이후에는 닥친 반혁명 시기 전체를 보더라도 우리는 1905년에 교훈이나 의의를 연구하면서 견뎌나갔다. 그러나 승리한 10월혁명들에 대한 연구는 아직 진행되지는 않았다. 아니, 그동안 연구들에 들인 노력에 10분에 1도 10월혁명들에 연구에 바쳐지지는 않았다. 물론 우리는 현재에도 반동에 시기를 경과하고 있거나 망명객들에 처지를 놓여 있지는 않다. 현재에도 우리는 동원할 수 있는 역령이나 자원들은 과거에도 어려운 시기에도 비하면 한없이 증대했다. 다만 현재에는 우리들에게도 무엇보다 필요한 건 당이나 인터내셔널로부터 된 차워에서도 명확하게 그리고 누구에게도 쉽게 이해하도록 10월혁명들에 연구들에 대한 필요성들을 제기했던거다. 왜냐하면 10월혁명들은 과거에 존재했던 정치노선들에 대한 최상에 시험대로 되었으며 미래로 넓은 문들을 활짝 열어서 젖혔기 때문이다. 작년에 독일혁명들에서는 10월혁명들에 혁명연구들로부터 중요성들을 심각하게 제기했을 뿐만 아니라 절박하게도 경고했다. 

그러나 10월혁명에 대한 과정들에서도 가장 철저한 지식마저도 독일 공산당들에 혁명승리를 결코 보장할 수는 없었을거라는 반론들로부터 물론 제기될거다. 그러나 이런 유로부터 된 극히 속물적인 논리에는 우리에게는 하등에 도움마저도 되지는 못한다. 물론 10월혁명을 연구만 한다고 해서 다른 나라 혁명들로부터 승리들은 확실하게는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혁명에 대한 조건들로부터 무르익었으나 혁명에 대한 법칙이나 방식들을 이해하고 있는 선지적이거나 결연한 당 지도부로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경우로는 얼마든지 있겠다. 작년에 독일에도 정확하게는 이런 경우였다. 이와 비슷한 상황들로부터 다른 나라에서도 반복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노동자혁명들에 대한 법칙이나 방법들을 이해하는데에 있어서는 10월혁명에 대한 경험들로부터도 더 중요하고 깊이 있는 연구대상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유럽 공산당 지도자들을 비판적이고 아주 세세한 연구들로부터는 10월혁명들에 역사를 소화하는 일들을 아직까지는 제대로 수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1차 제국주의 세계전쟁들로부터 보여준 전략적·전술적·기술적 경험들을 연구하지는 못한 채로 현재까지도 새로운 전쟁들을 준비하는 총사령관과도 같다. 총사령관들은 필시로 군대들을 패배로도 이끈다. 당에서는 노동자 혁명들에 필수적인 도구들이다. 1917년 2월부터 1918년 2월까지는 단 일년에 경험으로부터만 그리고 핀란드, 헝가리, 이탈리아, 불가리아, 독일에 보충적인 경험들로부터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혁명 준비 작업에서는 즉각적인 권력쟁취 투쟁들로부터도 노선들을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당들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겪을 수밖에는 없겠다. 일반적으로 말해서는 당내 위기는 전환에 대한 시초 또는 전환에 대한 결과로는 심각한 국면으로 조성될 때마다 일어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당 발전들에 모든 시기들로부터 그 나름대로에 특징들을 지니고 있고 특수한 활동 방식들이나 습관들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전술로에 대한 전환들에는 이 습관들이나 방식들로부터 어느 정도 단절된다는 걸 뜻한다. 바로 이 때문에 당내에 모든 갈등들이나 위기들에는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시 발생한다. 1917년 7월 레닌도 이렇게 말했다. "급격한 전환에 대한 시기로 봉착하게 되면 진보적 정당들도 당분간은 새로운 상황에도 적응하지는 못한다. 이 결과로 과거에는 옳았으나 이제는 모든 의미를 상실한 구호들을 외치는 경우는 너무 자주 있었다. 과거에 대한 구호들은 이 경우에도 역사에 대한 급격한 전환들로부터 '갑자기' 닥친만큼이나 빨리 그러한 뜻들을 '갑자기' 상실했다." <슬로건들에 대해서>. 따라서 이러한 전환들이 너무나 갑자기 일어날 경우에는 그리고 지난 시기에 관성들이나 보수적인 활동방식들로부터도 축적되어서 당 주요 기구들을 지배할 경우에는,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이나 준비해왔던 결정적인 혁명들에 순간들에 당들은 자신들에 지도력들을 발휘할 수는 없게 된다. 그리고 당들은 위기들로부터 파괴되어지고 혁명운동들은 당들을 내러벼두고 멀리 앞으로 나아가서 패배로도 줄달음치게 된다. 혁명정당들은 다른 정치세력들로부터도 압력을 받는다. 발전들에 매 단계마다 당들은 이 압력들에 대해서 반격하고 저항하는 방식들을 개발한다. 그런데도 전술전환들에 시기로는 당내에는 분파들로부터 모였다가 흩어지고 갈등들도 생겨난다. 그리고 이러한 압력들에도 대처하는 당들에 위력들로부터 약화된다. 이로부터는 당내분파들은 전술전환들에 필요성들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원래대로에 논란수준들을 넘어서서 다양한 계급들을 지지하는 버팀대로도 발전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늘 항상 제기된다. 이걸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이렇다. 자신들에 계급들에 역사적인 과업에도 부응하지 못하는 당들에는 다른 계급들에 간접적인 지배도구로도 전락할 위험들도 있겠다. 현재까지도 말한 바로 모든 심각한 전술전환들에 경우에 적용된다면 전략적 대전환들에 시기에는 더욱 더 그렇다. 군사학에 대한 비유를 빌려서 말해보면 정치에서 전술이란 개별적인 작전들을 수행하는 기술들을 뜻한다. 전략들은 정치권력 장악들에 대한 기술들이다. 일차세계대전 세계전쟁으로부터 일어나기 전에는 전술이나 전략도 차이는 없었다. 두번째 인터내셔널 시기에는 우리에게는 사회민주주의적인 전술개념들에도 갇혀 있었다. 그런데도 그건 우연한 일도 아니었다. 사회민주주의당들은 의회전술, 노동조합전술, 시의회전술, 협동조합전술 등을 이용했다. 그러나 모든 역량들이나 자원들을 결합해서는 적들로부터 승리하는 문제로는 권력장악들을 위한 투쟁들을 실제로도 조직하는 임무와도 관계되어 있다. 따라서 두번째 인터내셔널 시기로는 이 문제들은 결코 제기되지도 않았다. 이로부터 오랜 시간들이 흐른 후에는 노동계급들에 권력장악이라는 기본적인 문제들, 즉 전략적인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사건들은 바로 1905년 혁명들이었다. 따라서 1905년 혁명들에 경험들은 이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곧 볼셰비키들에게 엄청난 강점마저 되었다. 혁명전략들에 대한 거대한 시기로는 1917년 러시아에서 먼저, 그리고 이어서 유럽전역에서 시작됐다. 물론 전략들은 전술들을 폐기하지도 않는다. 노동조합운동, 의회활동 등에 문제들은 소멸되는 거도 아니라 권력장악들을 위한 결집된 투쟁들에서도 종속되는 하위수단으로도 새로운 뜻으로 부여받는다. 전술들은 전략에도 종속된다. 전술전환들로부터 보통에 경우에도 당내갈등들을 유발한다면 전략전환으로는 얼마나 깊고 치열한 갈등들을 낳을건가! 그리고 노동계급 정당들이 선전, 조직, 선동 등 혁명준비작업들로부터 즉각적인 권력장악 작업으로 들어갈 때 매우 급격한 전환들로 이뤄진다. 단호하지도 못하며 냉소적이고, 타협적이고, 투항적이기만 한 당내에 모든 멘셰비키 분자들은 봉기에 반대하면서 공개적으로도 자신들에 모습들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합리화할 이론적 근거들을 먼저 찾는다. 그리고는 과거에 기회주의 조류들로부터 이미 완성된 무기를 찾아낸다. 우리는 이 현상들을 미래에서도 최소한 한 번 이상으로도 보게 될거다. 



결정적인 투쟁들에 앞서 모든 역량들을 검토학고 선택하는 당들에 대한 마지막 작업들은 1917년부터 2월부터 10월 사이에도 이뤄졌다. 작업들은 대중들에 대한 가장 넓은 선동들이나 조직작업들로부터 기초로 진행됐었다. 10월이나 그 이후로는 우리들에 역량으로는 거대한 역샂거인 행위라는 용광로 속에서도 시험들을 거쳤다. 10월혁명마저도 끝난지 7년이나 지난 현재들에 혁명에 대한 일반적인 특히 러시아 혁명들에 대해서도 제출된 상이한 견해들을 평가하면서도 유독 1917년들에 경험들을 회피한다는 건 메마른 현학들에 빠져드는 거와도 같다. 이건 마르크스주의에도 입각한 정치분석들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걸로 수영해야할 사람들은 수영방법들을 시험해볼 강물들에 대한 시선들을 두기를 끈질기게 거부하면서도 여러 수영방법들에 대해서는 말싸움을 하는 거와 같다. 수영방법들을 효력들을 매우 잘 확인하는 방법들에는 직접 물에 뛰어드는 거다. 마찬가지로 실제로 혁명들로부터 전개될 당시에는 드러난 온갖 견해들은 실제로도 어떻게 현실들에 시험을 거쳐왔는지를 확인하는 거보다도 혁명이론들을 검증하는 더 좋은 방법들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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