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아래에서 문화.


만약에 제국주의가 지적 작업, 예술, 출판에도 도움을 준다면 그 작품들은 제국주의만을 위한 이익, 

목적, '허무'를 반영해야만 한다. 제국주의에서 탐욕스러운 행위나 세계에 대한 현실을 반영하려고만 애쓰는 소설, 제국주의에서 예속화·삶·생각·국가와 민족에 대한 현실에 개입하는 데 반대하는 투쟁을 담으려는 시나 표현으로부터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형식이나 내용, 진보적이고 혁명적이고 끊임없는 압력을 포착하려는 투쟁적인 예술, 이는 예지와 양심, 명료성이나 미적으로도 아름답고 충만해서, 교사들은 대중을 더 나은 운명, 삶이나 진정한 정의에 대한 높은 봉우리(최고봉)으로 안내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제국주의에 대한 신랄한 검열을 받는다.


그러한 시도들은 장벽에 부딪치거나 비난이나 반공주의(메카시즘) 같은 마녀사냥에도 직면한다. 언론은 그들과 매우 밀접하다. 그들에 이름들은 신문에 칼럽에도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악의적이고 신랄한 침묵에 대한 선동(캠페인)을 행하기 때문이다. 이건 제국주의에 또 다른 모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작가나 시인, 화가나 조각가, 다른 분야에서 작가나 과학자들은 진정으로 민중에 대한 언어 속에서, 전 세계 민중에 가슴 속에서도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는 모든 걸 뒷걸음치게 하고, 기형으로 만들고, 이윤을 위한 자체적인 경로(채널)로 전환하게 한다. 즉 미국에 대한 달러로만 번식하게 한다. 주장이나 그림, 심지어는 힘겹게 꺼낸 말까지도 매수하고 혁명가, 진보주의자, 민중이나 민중에 대한 요구를 위해서도 투쟁하는 자들에 내용에 대한 표현을 침묵으로 바꾼다. 


우리는 이러한 슬픈 그림에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권리를 박탈 당해서 무시되거나 미래도 없는 어린이들을 잊을 수도 없다. 아메리카는 출산율뿐만 아니라 사망률도 높다. 11개국에서 1세 이하 영아 사망자는 1000명당 125명도 넘고, 다른 17개국에서는 50명 선이다.

다른 한편으론 세계 102개국에서도 그 비율은 51명이다. 


그렇다면 남아메리카에서는 출생 이후 일 년 내에 1000명 당으로 74명은 비참하게 무시된 채로 죽는다는 얘기다. 일부 남아메리카 국가에서는 그 비율도 1000명 당 300명에 이른다. 


아메리카에서 7세 미만 어린이 수십만 명은 믿을 수 없는 질병, 이를테면, 페렴, 영양실조, 기아 등으로도 사망한다. 환자 수십만 명은 치료는 커녕 약도 먹지 못한다. 수십만 명은 오염, 물을 비롯한 생필품 부족으로 인한 말라리아, 트라코마(급성결막염) 등에 질병으로 희생되기도 한다. 수 십만에 어린이들은 고통 속에 있거나 버려지거나, 힘들고 불안한 환경에 놓인 빈곤층인 중산층(프티부르주아)에 아이들, 대부분인 남아메리카 국가에서는 이런 질병도 흔한다. 


여기서 중복될지도 모르는 통계들은 소름마저 끼칠 정도다. 

국제기구에 대한 공식 출간물만 나눠보거나, 일별해봐도 그러한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P.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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