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역사를 위해 짓는 것이요. 역사 외에는 딴 목적을 위해 짓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서. 객관적으로, '사회유동상태'를 잘 따져보고, 발생한 사실을 그대로 적는게

역사고작성자에 목적에 따라서만, 사실을 좌우하거나, 덧붙이거나, 달리 고칠게 아니기 때문이다.

 

화가는 사람에 얼굴을 그릴 때. 이를테면, 연개소문을 그리자면, 모습은 털털한 연개소문을 그려야 하고. 강감찬을 그리려면, 몸집이 마른 강감찬을 그려야 한다. 만일 이도 저도 아닌 억제하고 드날릴 마음으로만 털끝만큼이라도, 서로 바꾸어서만 그린다면. 화가에 본분에는 어긋날 뿐 아니라. 본인에 대한 면목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실대로만, 영국사를 지으면. 영제사가 되고. 러시아를 지으면. 소련사가 되며. 조선사를 지으면. 조선제국사가 되는 것인데. 기왕에 조선에 조선사라 할 조선사가 있었더냐 하면 수긍하기 어렵다.

 

안정복은. <동서강목>이란 국사를 짓다가. 자주, 내란에 잦음과 외적의 출몰로, 겨레(우리나라)에 대한 옛역사를 흔적도 없게 했음을 슬퍼하였다. 나로서 보건대. <조선사>는 내락이나 외적의 전쟁에서 보다. <조선사>를 저술하던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더 없어졌다고 본다. 어찌하여 그랬냐마는. 역사란 머리로 쓴 말로 같이,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발전으로 되어온, 사회 활동 상태에 대한 기록이므로. . . 사람이란 세 가지는 역사를 이루는 큰 세 가지 요소들이므로. 이 요소들을 올바르게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라에선. . . 김이란 세 성과. 신라를 건국하고자 했던. <돌산고허촌>

 

여섯 지방에 사람으로서뿐만 아니라. 또한 경상도 지방. 고구려. 백제와 한 시대인 때로써 된 것이니. 만일 보다 더 거슬러. 현재로부터. 2000년 전인 왕검과 같은 연대이거나 더 내려와선. 2천 년 뒤인 오늘에서 따른 같은 시국이라면. 비록. 박혁거세의 지혜와. 소박한 여섯 지방 사람들의 정직함. 신라라는 계림에 대한 비록 땅을 소유했을지라도. 당시와는 똑같이 될 수 없으며.

 

또 위치가 유럽에 놓였거나. 아프리카에 있었다면. 또한 다른 면목에 나라는 되었을지언정.

 

당시에는 당최. 나라는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건. 지극히도 명백한 이치인데. 기왕에. 조선에 역사가들은 매번 그 짓는 바 역사를 자신에 목적을 희생으로 만들어서. 도깨비도 떠 옮기지도 못한 땅을 떠 옮기는 재주를 부려, 고구려란 졸본을 떠다가, 성천이란 화천 부근에 두질 않나. 우리 북쪽에단. 영변. 안주군에 다가 갖다놓고선. 만주에 있던 안시성을 떠다가, 북쪽에. 용강 혹은 안주에다 또 갖다놓질 않나. 평양에. 아사산을 떠다가. 황해도에 구월산을 만들어놓질 않나. 웅상이던 가슬라를 떠다. 강원도 강릉군을 만들어놨다.

 


근거도 없던 역사를 지멋대로 지어놔서. 더 크지도 말고. 더 작지도 말게 짓자고 했던. 압록강 이내에 이상적인 강역마저 정하려고만 했고. 무극. 일연. 등 불자가 지은 역사책에는 불법이 단 한 글자도 들어 오지 않는 왕검시대에부터. 인도에 범어로 만든 지명이나 인명만 가득하고. 김부식. . 유가학파들이 적어놓은. 문자에는 공자.맹자에 인의를 무시하는 삼국무사에 입에서 경전문구만 관용어처럼 외워지고. 대륙 삼국사. 말로 전한 기전서에는 여러 백년 동안에 조선 전역에 인심을 지배하던, 수도 등지에 있던, 영량.술랑.안상.남석행. 등 네 대성에 대한 논설은 볼 수도 없고. 유학했던 최치원만 세세하게도 서술했으며. <역사서>. <여사제강>에는 원효. 의상. 등 여러 철학인들의 불학에 영향된 고려 일대에 사상은 어떠했는지는 볼 수도 없고. 태조 왕. 통일 이전에 죽은 최응이 통일 이후에. 불교를 헐뜯어 올렸다는. <간불소>란 내용만 적혀 있었다.

 

이와 같은 허다한 때에 구속을 받지도 않고. 지멋대로. 역사를 지어놔서. 자기만에만. 

아첨된 신앙에 주관적 심리에만 부합하고자 했으며. 심한 경우엔. 사람까지 속여놔서. 신라에.

금왕마저. 인도에 크샤트리아였던. 찰제리종이라 하질 않나. 고구려 추모왕마저. 대륙 제곡에 후손이라 하질 않나. 게다가 조선 사상에 근원이 되던. 운수를 점치던. <서운관>. 책들을 공자에 말하고자 한 바도 어긋났다 하여. 모두 불태워버렸다.

 

이두형도 말하기를. "근래에 어느 명문이나. 묘지명을 보든지. 주인공이 반드시 용모는 단엄하거나 덕성은 훌륭하고. 학문은 정주를 모시고. 문장은 한유를 존경해서. 거의 비슷하니. 사람을 속일 뿐만 아니라. 글도 가치가 없다."고 했다. 개인적이기만 한 전기에 대한 실상을 잃은 데에 대한 개탄일 뿐이지만은. 이제 임금을 높이고. 백성을 천대하던. 세월이란 도끼. 아래로. 자라난. 후세 사람들은. 마음이나 습속이로도. 삼국에 대한 풍속만을 이야기하고. 치우치고 말만 자르르한. 글들에 만족한 이조 당대에 사람들은 그러한 주관으로. 상고지리를 그리니. 이에 조선이나. 단군이나. 부여나. 삼국이나. 대륙이나. 고려나. 이조 5천 년 이내에 모든 조선이 거의 한도가니로 부어내서. 땅이 늘고 줄어듦에 따라. 민족 활동이 활발하고 약해진 점이나. 시대에 고금만을 좇아.

 

국민이란 민족사상에만. 갈린 금을 도무지 찾을 수조차 없다.

크롬웰이란 화가는 자신에 상을 그릴 때면. 왼쪽 눈 위에 혹을 빼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했고.

자신을 그리려면. 자신에 직접 본 얼굴로 직접. 그리라고 했으니. 이 말은 화가에 아첨함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곧 자신의 참된 상을 잃을까 함이었다.

기왕에. <조선사>를 지은 이전에 조선에 역사가들은. 매번. 조선에 혹을 베어내고. <조선사>를 지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네들이 쓴 안경은 너무 볼록했으므로. 어디. 조선에. 눈이나. 귀나. 코나. 머리 같은 것을 혹이라 하여. 베어버리고선. 어디서도 볼 수 없던 혹을 가져다가. 정말로. 붙여놨다. 혹 붙인 <조선사>도 기왕에. 읽는 이도 너무 없다가. 세계가 서로 크게 통하면서. 외국인들이 자주. 조선인을 만나서. <조선사>를 묻는데. 어떤 이는 조선인보다. <조선사>를 더 많이 알고 있어서. 너무 부끄러운 끝에. 돌아와. <조선사>를 읽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이 읽는 <조선사>. 외국인이 아는 <조선사>는 모두 혹 붙은 <조선사>. 옳은 <조선사>도 아니었다. 기왕에. 있는 기록이 다 틀린 것이라면. 무엇에 의거해서. 도대체 바른 <조선사>를 짓겠는가. 채로 거를 줄 아는 사람들이. 모래 한 말을. 일면. 좁쌀만한. 금을 하나 얻거나. 혹은. 하나도 얻지 못하기도 하나니. 우리에. 글문들을. 사료로. 구하기도. 이같이. 어려운지라.

 

. 어떤 사람은. <조선사>를 연구하려하면. 우선. 조선과. 만주 등지에. 땅 속을 파서. 많은 발견이 있어야만 하고. 금석학. 고전학. 지리학. 미술학. 계보. 등을. 연구하는 학자만 쏟아져. 나와야 한다고 하는 이가 많은데. 그도. 그러하거니와. 우선 급한대로. 수중에 있는 부족한 현금으로나마.

 

역사적 사실들을 가지고 득실을 평하고, 진위를 비교해서. 그나마라도.

<조선사>에 앞길을 개척하는게. 더 급선무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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