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의 웃는 마음 - 판화로 사람과 세상을 읽는다
이철수 지음, 박원식 엮음 / 이다미디어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광주에서는 시립미술관 주관으로 4월 5일부터 한 달동안 이철수 선생님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나는 4월 20일(토) 오후 2시에 전시장을 찾았다. 작가와의 만남행사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비가  간간히 내리는 쌀쌀한 씨였는데도 전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화가들, 대학생들, 연인들,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아온 듯 하였다.

 

오후 2시 부터 작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패널은 놀랍게도 '사평역에서'의 시인 곽재구님이었다! 두 분은 친구사이라고 하였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전시장 뜨락에서는 마지막 남은 벚꽃이 비에 촉촉히 젖고 있었고, 화가와  시인은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 작가로서의 고뇌와 깨달음, 구비구비 지나온 일상의 애환이, 시인과 화가의 담백한 우정이 청중들의 가슴에 봄비처럼 스며들었다. 작가와의 만남은 2시간을 넘겼다.

 

나는 그날 이철수 선생님을 처음 뵈었는데 잔잔한 미소가 오래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을 화가라고 소개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삶을 관조하고, 마음 깊은 곳 옹달샘에서 맑은 물을 길어내는 분이다. 이분이 화가가 아니었다면 시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그 마음을 판화로 그리는 화가라고나 할까? 선생님의 모습에서 시인을, 농부를(선생은 충북 제천에서 살면서 농사를 짓고있으니 농부가 맞다) 본다. 선생님의 그림에서는 날마다 마주하시는 흙을, 별을, 바람을, 먼 옛날의 내 고향을 본다.

 

무엇이든 빽빽하게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을 비워보라고 여백을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하는 그림, 달려가야 한다고 높이 높이 날아야 한다고 믿고 질주하는 우리들에게 잠시 멈추라고. 자연을, 이웃을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해주는 그림, 가던 길을 멈추라고 앞만 보지말고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라고 이야기하는 그림... 별도 보고, 귀뚜라미도 보고, 민들레도 보고, 아내의 뒷모습도 바라보라고 이야기하는 그림들... 

 

밭두렁이 있고, 논두렁이 있고, 목욕탕 타일바닥에서 싹트는 콩이 있고,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아내의 벗은 발이 있고, 하늘을 가득 채운 새들의 군무가 있고, 빈집 지키는 진돗개가 있다. 그냥 그림이 아니요, 그냥 판화가 아니다. 그림이 말을 하고, 판화가 말을 걸어온다. 촌철살인의 글귀가 선승들을 쓰러뜨리는 화두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어떤 그림 보다도 더 오래 오래 바라보게 하고 그림 앞에 서있게 하는 것이다. 작품 앞에 설때마다 잔잔히 뿌리는 봄비를 맨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철수 선생님의 작품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평소 생각을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선생님의 생각을 알고나면 작품이 지닌 의미가 더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도 들고 함께 차를 마시는 느낌도 든다. 창밖에 비가 내리는 날......

 

작가와의 만남이 끝나고 나서 나는 '웃는 마음'을 구입해서 선생님의 사인을 받았다. 선생님은 사인만 해주시는게 아니고 붓펜으로 멋진 난 한그루를 그려주신다. 나에게만 그려주는게 아니고 모든 독자들에게 똑같이 그려준다. 사인이 끝나면 독자를 바라보면서 웃는다. 포근한 미소는 덤으로 주시는 것이다. 오는 4월 27일(토)에는 두번째 작가와의 만남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때는 선생님의 30년 작가생활을 기념해서 펴낸 '나무에 새긴 마음'을 구해서 사인을 받아오리라. 나는 지금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 글이 선생님의 책에 누가 되지 않기를 빈다. 책이 좋아서 선생님을 만나고 너무 행복해서 외람되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이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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