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에 대하여 - 고대부터 현재까지 천재와 천재성에 관한 모든 것
대린 M. 맥마흔 지음, 추선영 옮김 / 시공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한줄평]
'천재라는 사고에 담긴 역사'. 고대에서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 '천재의 역사'라는 위대한 서사를 탐험하는 여정.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천재'의 의미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있는 분들께
2.'천재'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궁금증을 갖고있는 분들께
3.근대 이전의 천재와, 근대 이후의 천재는 어떻게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알고싶은 분들께
4.'천재'라는 단어가 우리 시대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싶은 분들께


[서평]
미국의 어느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학부시절 수업에 지각을 하게 되었는데, 칠판에 문제들이 적혀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학생은 이 문제들을 과제로 착각하고 그 중 일부를 끙끙대며 풀어서 제출하게 되는데, 이것이 사실은 과제가 아니라 수학의 난제를 소개하며 적어둔 것이라고 한다. 천재에게는 난제를 과제로 바꾸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비롯하여 리처드 파인만의 일화도 유명하다. 기차 사이에서 왕복운동을 하는 파리에 관한 계산문제였는데, 무한등비급수를 사용하여 풀면 오래 걸리지만 약간의 센스를 발휘하면 뚝딱 풀어낼 수 있는 문제다. 파인만에게 이 문제를 제시했더니 바로 풀어내길래 질문자가 '역시 무한등비급수를 쓰지 않았군요?'라고 물었더니 파인만이 '무한등비급수로 푼건데요?'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것이 재미있다. 묘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그 재미와 즐거움은 도대체 뭘까? 이 짤막한 일화가 갖는 재미의 포인트는 어디지? 나와 일면식도 없는 다른 사람의 탁월함이 내게 기쁨을 줄 이유는 도대체 뭘까? 어쩌면, 나의 내면에 '천재'라는 '우상'을 향한 갈망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 탁월함이 나의 내재된 기쁨을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 

18 천재는 영재 안에 숨어 지내면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신성한 힘이 아니다. 오히려 천재의 '신성함'은 우상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고질적인 인간 필요의 산물이자 '고귀한 존재, 지고의 존재, 절대자 안애 내재된 기쁨'의 산물로 여겨진다. 천재의 탄생 과정은 '신의 탄생'과정과 유사한 '신격화' 과정을 거친다. 

천재에 관한 책은 많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접근법이 조금 다르다. 요즘 나오는 천재에 관한 책들은 '어떻게 천재가 될 것인가'에 집중한다. 경제적 부와 사회적 성취를 이룬 인물들을 다루고, 그들처럼 되기위한 비법을 나열한다. 영재가 되기위한 교육법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성공을 이룸으로써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광고한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천재성'은 천재의 본질에 가깝다. 시대와 밀접하게 관련된 천재라는 개념, 그리고 그것의 변천 과정이다. 책에서는 이를 천재라는 사고의 역사, 또는 더 나아가 '소고 속의 역사'라고 표현한다.

15 천재라는 사고에 생명을 불어넣은 매력적인 여러 인물을 살펴보게 될 것인데, 보통은 철학자, 시인 예술가, 작곡가, 군사 전략가, 산업가, 과학자, 신학자, 통치자, 독재자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천재성을 지닌 인물에 주목한다 하더라도, 이 책은 천재라는 사고의 역사, 또는 더 나아가 '사고 속에 담긴 역사'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이 책은 광범위한 시간대와 다양한 맥락 속에 자리 잡은 개념을 검토하는 장기 지성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은 총 6개의 챕터로 나눠진다. 고대-기독교-근대-낭만주의 시대의 천재를 따라가며 시대에 따라 달라져간 천재의 개념과 탁월했던 천재들, 그들이 지닌 천재성을 짚어본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공감할 대표적인 천재 아인슈타인을 살펴보며 그 대척점에 서있었던 히틀러와 비교한다. '잘 나가다가 왠 히틀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히틀러가 윤리와 별개로 특정 부문에서 천재적인 역량을 갖고 있었는지는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히틀러가 '활용'한 천재성이다. 그가 권력을 잡고 대중의 숭배를 이끌어내는데는 천재라는 꼬리표가 결정적인 약할을 했다는(19) 사실이다. 

436 나중에 히틀러의 공보장관에 오르는 괴벨스는 히틀러를 처음 만난 직후 히틀러를 '천재'라고 표현했다. 히틀러는 "신성한 운명을 위해 존재하는 자연적이고 창조적인 도구"였다. 초기에는 히틀러와 불화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히틀러가 천재라는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정치의 천재'로서 '더 위대한 존재'로 파악하고 머리를 숙였다. 히틀러 자신이 1920년대 중반 행한 연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로 이루어진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위대한 존재인 천재'가 자리잡는다는 표현만큼 히틀러의 견해를 더 효과적으로 떠받치는 표현은 없었다.

많은 독일인들이 과거사를 부끄럽게 여기며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특정국가의 태도와 비교되며 그들의 시민의식을 돋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시대의 독일국민들은 왜 그렇게 열성적으로 히틀러를 지지했을까? 합법적 과정을 통해서 히틀러에게 강력한 권력을 부여할 수 있었던 확신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히틀러가 자신의 천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음을 강조한다. 히틀러는 국민들에게 그 자신의 천재성으로 독일의 위대함을 회복하고 국가적 고통을 극복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심었던 것이다. 

17 고대 로마인은 게니우스genius를 수호하는 영혼, 즉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인간과 함꼐 동행하면서 인간을 신성한 존재에게 연결하는 존재로 여겼다. 고대 로마인이 생각한 게니우스가 근대적인 '천재'와 전혀 다른 존재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근대적인 '천재'는 특별한 창조력이나 통찰력을 지닌 개별 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른 천재 개념의 변화에서 가장 극적인 것은 '탈마법화'다. 저자에 따르면 천재의 개념은 본래 종교적 색체를 띄고 있었다. 이러한 '탈마법화'의 과정은 사람들에게 미치던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들어감에 따라서, 한편으로 평등의 개념이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촉진된다. 이를 짚어보는 긴 서사의 과정은 역사적 사건과 탁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둘러봄과 함께 충분한 재미와 흥미가 되었다. 또한 현재 내가 믿고있는 개념의 의미가 영원하지 않으며, 시대와 사회적 변천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486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반도 전에 에머슨은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는 비문과도 같은 언급에서 인류의 천재는 역사의 관점에서 올바른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불사조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고 해서 세계의 마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마법이여 영원하라.

타고난 천재의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천재들의 탁월함을 학습함으로써 천재성을 획득하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시대에서, 천재라는 단어가 주는 경이로움은 예전과 같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에서 이름을 떨친 천재들의 위대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존재의 가장 높고 영원한 상태를 추구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는 현대인의 가슴에도 뜨거운 영감을 남긴다. 바이런, 베토벤, 푸앵카레, 에디슨, 아인슈타인의 탁월함을 기억하며, 나 역시 '천재'는 되지 못할지라도, '거듭남'의 여정만큼은 결코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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