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 -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인류 행동의 모든 것
브루스 후드 지음, 조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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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때문에 상처받지만 결국 다시 사람을 향합니다. 짐승에게 물렸다면 당황을 했지 실망하지는 않았겠죠. 사람이니까. 사람이니까 바라고 기대했을겁니다. 기대가 컸으니 실망도 컸을테죠.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람에게 기대하고 의지합니다. 그러니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것도 결국 사람입니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지독한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부터 치유되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은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니까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혼자 살아도 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은 편리한 시대에, 타인이라는 존재가 여전히 절실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격상된 거리두기만큼 커져가는 단절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뇌가 작아진 것은 스스로를 길들였기 때문이다

21 우리는 사회적으로 변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긍정적, 부정적 감정을 이용해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왜 사람들이 타인의 생각에 연연한 나머지 비이성적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33 인간의 뇌는 다른 사람의 뇌와 상호작용하도록 정교하게 제작되었으며, 자기와 비슷한 다른 사람을 찾아 관계를 맺게끔 진화했다.

책 <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는 우리에게 타인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뇌과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봅니다. 타인의 의도를 이해하고자 하고,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을 진화 생물학의 시각에서 파고듭니다. 그렇다면 '뇌는 작아지고싶다'는 제목은 어떤 의미일까요? 도대체 작은 뇌와 타인이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인간의 뇌는 진화의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커졌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뇌가 클수록 더 똑똑한 생물이라는 것이 우리의 통념이니까요. 그런데 지난 2만년 사이, 인간의 뇌는 오히려 15%나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선사 시대의 인류화석을 들여다봤더니 이전 조상들의 뇌가 훨씬 컸다는 것이죠. 인간의 뇌는 진화의 과정에서 분명 점진적으로 커졌습니다. 하지만 특정 시점을 기점으로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15%나. 이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여기서 저자는 하나의 도발적인 견해를 제시합니다. 인류의 뇌가 작아진 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길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마치 야생의 동물이 가축이 되듯, 인간 또한 야생의 동물에서 사회적 존재로 스스로를 길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가축화된 동물들의 뇌 역시 비슷한 비율로 크기가 감소했음을 지적합니다. 길들여지는 과정에서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낮아지고, 그 영향으로 뇌의 부피가 줄어들었다는 것이죠. 굉장히 재미있고 신선한 발상이죠? 책은 그렇게 길들여진 뇌(aka. 사회화된 뇌)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뇌의 진화과정, 뇌가 결정을 내리는 방식, 유전과 환경 사이의 후성유전학, 작아진 뇌가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도덕과 감정, 인간의 본능적 갈망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길들여진 뇌의 영향을 살펴봅니다. 

경험과 환경이 유전적 변화를 일으킨다

140 후성유전학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과 경험을 결합해 인간의 발달 과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146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우리가 살면서 경험한 것이 다음 세대의 생물학적 조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후성유전학'을 다룬 챕터였습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기억하시나요? 그는, 생물체가 살면서 획득한 형질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며 전달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린의 목이 긴 이유는 높은 곳에 있는 먹이를 따먹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대를 이어 점진적으로 길어진 것이라는 식이죠. 하지만 여러분이 알다시피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스케이팅 훈련을 한 김연아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아이가 은반위의 요정으로 태어날리는 없을테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경험이 전혀 대물림되지 않느냐? 그건 아닙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말입니다. 세포는 유전자가 가진 정보에 따라 발현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정해져있는것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발현의 스위치가 켜지거나 꺼질 수 있는데, 경험과 환경이 이에 포합됩니다.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린 사람은 코르티솔 분비에 불균형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임산부가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경우, 태어난 아기 역시 코르티솔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산모의 경험이 아이에게 대물림 된 셈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대물림된 유전자의 노예일까요? 그것 또한 아닙니다. 개인의 직접적인 경험 역시 유전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하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전사 유전자'라는 별명을 가진 이 유전자는 남성 갱단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에 따르면 학대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에만 유독 반사회적 문제를 일으켰죠. 개인의 경험에 따라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거나 끌 수 있다는 것. 아이의 양육과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우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소중한 너, 소중한 나, 소중한 우리

286 우리 대부분은 극단적인 따돌림이나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배척당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있다. 극단적으로 배척당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아마도 조금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읽고, 타인과 함께 어울리도록 진화해왔습니다. '협동'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협력'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서로를 도우며, '동거'함으로써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안전을 제공합니다. 인류가 스스로를 길들이고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번영과 안전은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당연한 사회, 당연한 친구, 당연한 가족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 읽기였습니다. 오늘도 곁을 내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진심과 정성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만,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디까지' 길들여질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회에 적응하며 타인과 어울리되, 우리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할테니까요. 디지털 혁명과 SNS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는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추천 알고리즘은 취향과 기호를 점점 획일화하며, 집단과 집단 사이의 분열과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특정 집단에 소속됨은 건너편 집단을 향한 혐오와 배척으로 이어지며 사람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연대감을 유지하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 세상의 외침을 흘려보내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열린마음과 호기심으로 신념의 경계를 단정짓지 않는 것. 늘 타인을 소중히 대하는 만큼 나 자신을 돌보는 것. 늘 깨어있는 것 역시 함께 기억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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