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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가게 글월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5월
평점 :
이 책은 연희동과 성수동에 편지 가게 글월이라는 곳에서 공모한 실제 편지들을 글감으로 쓴 소설이다. 글월의 주인공들은 모두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웃들이다. 꿈을 포기하고 고통스러운 사람, 아내를 먼저 천국으로 보낸 중년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이혼 후 글 쓰는 일을 다시 시작한 회계사, 미래를 고민하는 고3, 동네 빵집 부부와 같은 사람들이 펜팔 편지로 마음을 나눈다. 책날개에는 책갈피로 쓸 수 있는 여백이 있다. 무엇이든 빠른 초 스피드 시대에, 책갈피를 이용해서 읽는 책이라면 시간을 오래 녹여서 읽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책의 주인공들은 마치 시나리오를 읽는 것처럼 등장인물의 상황 설정으로 먼저 소개되어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주인공 효영의 언니 효민의 편지로 시작된다. 효영은 시나리오를 쓰고 독립영화를 찍으려다가 집안이 망해서 꿈을 접어야 했던 감수성 여리고 글쓰기 내공이 만만치 않은 여성이다. 효영의 아픈 가족사를 중심으로 편지를 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삼의 잔뿌리처럼 펼쳐진다. 소설의 목차는 7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고 부록처럼 에필로그가 있으며, 추신으로 글월의 편지들과 편지 가게 글월의 사진이 있다.
- 햇빛에도 향이 있다
- 인생을 반송하고 싶다면
- 편지지 위를 걷는 손들
- 로맨티스트 금원철
- 과거의 영광
- 글월의 크리스마스
- 누구에게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다
- 에필로그: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감동을 주려 노력했다

소설은 긴 시를 읽듯 행간마다 사람들의 감정이 고여있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정서가 느껴진다. 햇빛에서 어떤 향기를 느낀다거나, 편지 가게의 책상에서 누군가의 편지에 답장을 쓰면서 오히려 위로받는 사람들이 정답다. 소설을 읽으면서 시처럼 아름답게 느껴진 문장들이 있다. 효영과 웹툰 작가인 영광이 썸을 타지만 봄꽃처럼 싱그럽고, 효민과 화해하는 효영의 마음이 봄비처럼 순수하다. 모두 편지가 서로의 마음을 연결해주었기 때문이다.

<햇빛에도 향이 있다>
이 풍경 때문에 글월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창에 담긴 아늑함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이상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다는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21쪽
제가 사는 곳 건너편에는 편지지를 파는 편지 가게가 있어요. 가게 이름은 '글월'인데 글월이 편지를 높여 부르는 순 우리말이래요. 평소에 무심코 쓰는 단어를 더 높이고 소중하게 부르는 단어가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46쪽
<인생을 반송하고 싶다면>
창밖에 내리는 빗줄기를 보고 있으면 글월에 고요라는 무드가 피어나는 것 같았다. '고요'라는 단어가 왜 '고여있다'라는 단어와 닮아있는지 글월 한 가운데 서면 알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렇게 흙이 없어도 뿌리 내릴 감정이 태어났다. 56쪽
<편지지 위를 걷는 손들>
효영도 시나리오로 밤새워 씨름해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창작자의 고통에 괜히 마음이 쓰였다. 작품이 안 될 때는 이미 시든 꽃에 끊임없이 물을 붓는 기분이 들었다. 말라비틀어졌어도 아직 고꾸라지진 않았으니, 덧없이 물을 붓는 행위를 멈출 수가 없는 거다. 끊어 내야 새로운 씨를 뿌릴 수 있는데도 말이다. 107쪽
문득 누군가의 옆에 무해하게 남는다는 것이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옆에 있어도 괜찮은 것들은 결국 나를 바꾸려는 의지가 없는 것들이었다. 135쪽
각기 다른 인생과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커다란 위로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239쪽

손 편지가 진심을 담는 그릇처럼 느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은 기다림의 여백을 주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파손되어 수리 중이거나 배터리라도 방전되어야 주변을 바라보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백이 있어야 마음도 숨을 쉰다.
글이란 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다. 편지란 속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실제 존재하는 장소와 편지를 통해 태어났다. 연희동과 성수동에 편지 가게 글월이 있다. 소설 속의 장소가 그곳에 있다니. 내가 살아가는 세계가 하나의 소설로 변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으며, 누군가의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소설이라는 편지로 내게 닿은 것 같았다.
꿈을 포기하고 상심한 사람, 이혼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배우자의 죽음으로 외로운 사람, 인생이 지루한 사람,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 울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대인 모두에게 이 소설이 위로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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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추천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