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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다정한 학교 - 그해 여름, 어느 초등교사의 문장들
정혜영 지음 / 책소유 / 2024년 6월
평점 :
이 책은 제10회 브런치 대상 <어린이의 문장> 수상 작가이며 24년차 초등교사인 정혜영 작가의 네번째 책이다. 서이초 교사가 하늘나라로 떠난 이후에 학교 이야기는 더욱 조심스럽다. 이 책 안에는 작가가 학생들과 학부모들과 나누었던 평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나는 정혜영 작가의 문장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을 이미 이전의 책들을 통해 알고 있다.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었던 날에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주문하고, 도착을 기다리면서 왜 책 제목이 <어쩌면 다정한 학교>일까 궁금했다.

책이 왔고, 표지에는 어린이를 보호하는 듯한 화병을 선생님이 꼭 잡고 있으며 꽃 같은 어린이들이 사람 꽃으로 피어있다. 예쁘다. 어쩌면 학교는 다정한 곳이라는 제목이다. 따뜻하다.
책 안에는 3개의 꼭지에 33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1장 내 무대의 주인공들
2장 학부모님, 당신이 필요합니다
3장 상냥한 학교, 다정한 온도

그림만 보아도 정혜영 작가의 마음을 알 것같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길러주는 분이라는 것과 본인이 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학생들에게 부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현대 사회에서 학교는 직장이기도 하지만, 학교라는 사회 안에 교실이라는 더 작은 사회로 이루어진 작은 사회 안의 미니 사회다.
교사의 시간을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따라다니며 찍는다면 일반적인 직업으로만 대하는 사람들은 오래 버틸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자기계발로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며 실시간으로 무엇인가 폭풍이 일어나는 교육의 현장이다. 그렇다. 학교는 배움이 일어나는 가치의 세계라 대충이 허용되지 않는다.

아이들로 인해 기쁘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 교사의 숙명이다.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내가 이만큼 밖에 안되는 사람인가?'라는 자존적 질문과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 교사이기에 더 자주 흔들리고 넘어진다. 아이들이 하는 가식 없는 말과 행동은 점점 '보여지는 나'라는 옷을 덧 입어가는 내게, 그냥 그대로도 괜찮다고, 주변의 사소한 것들과 함께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라고 오히려 가르쳐준다. 이렇듯 사실은 내가 가르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23쪽
미안해, 괜찮아. 대부분의 관계는 이 두 가지 사과와 수용의 언어로 회복되고 단단해진다. 뾰족해진 마음은 때로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받아들일 수 있다. 요동치는 마음이 몸 어딘가에서 부글부글 끓어 넘치지 않도록 그대로 내놓음으로써 스스로를 가볍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52쪽
과거에 해소되지 않은 마음의 응어리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고 불쑥불쑥 올라와 현재를 바라보는 눈에 자꾸 색 안경을 덧 씌우곤 한다. 솔직하게 소통하고 받아 들여지고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과정에서 비로소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볼 마음이 생긴다. 54쪽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평소에 갖는 철학을 본인만의 것으로 가둬 두지 않고, 학생들의 마음 밭에 심어주는 지루하고 고단하지만 힘껏 애쓰고 계시다는 확신으로 마음이 포근해졌다.
꾸준히, 천천히 가다 보면 언젠간 자신의 속도가 생겨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래 천천히 갈 수 있는 용기다. 타인이 내 속도를 몰아붙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용기, 내 속도가 아니라면 과감히 멈춰서 숨을 고르고 다소 늦어졌더라도 다시 천천히 내딛을 수 있는 용기, 내가 뒤처진 게 아니라 나만의 속도를 가늠해가고 있음을 알아챌 용기 말이다. 내게 맞는 속도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 그러니 용기를 낼 사람은 바로 '나'인 것이다. 우석이는 자신의 타이밍을 찾고 예쁜 노랫소리도 찾아 마침내 독도리나와 친해졌으니 아홉 살의 담대함이 그저 기특하다. 이 모든 과정에 새겨진 우석이의 마음이 휘발되지 않고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75쪽
엄마의 존재가 커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 스스로 설 곳은 줄어들기 쉽다. 하지만 육아의 끝은 아이 스스로 서는 것에 있지 않은가. 엄마가 앞장서서 아이 손을 끌고 가는 것이 육아의 목적이 아님을 끊임없이 되새기길 바란다. 아이들은 타고난 대로, 스스로 방식대로 배워간다. 때로는 가르치지 않았는데 알아서 배우기도 한다. 내 아이만 뒤처질까 봐 걱정하는 것은 엄마의 걱정이지, 아이의 걱정과는 무관할 때가 많다. 우리 아이들에게 '스스로 해보는 시도와 연습'은 성장하는 데에 있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오롯이 혼자 힘으로,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기쁨과 희열은 아이에게 강한 자신감과 자존감을 만들어준다. 116쪽

격려와 지지를 받는 것의 중요함이 어찌 교사 뿐일 것인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모두에게 처음이라 사람은 삶의 모든 순간이 언제나 어렵다. 서이초 교사의 청춘이 한없이 아깝다. 교사는 교사이기 이전에 본인의 꿈을 실현하고 싶은 존재,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배우자, 누군가의 부모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평소 일과 가사, 육아를 병행하는 엄마가 딸의 눈에도 여유롭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엄마의 관심을 온전히 받고 싶어 했을 아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아이의 감정이 북받쳐 있을 때가 바로 부모의 감정을 먼저 다스려야 할 때라는 사실이다. 부모가 함께 흥분하면 아이에게 일어난 사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어렵다. 260쪽~261쪽
정혜영 작가의 마음이 내 마음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와서 자리 잡은 문장을 써본다.
유진이가 살면서 선생님과 같은 스승님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감사했습니다. 어머니의 이 문장에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교사의 마음을 알아주고 더 크게 지지와 응원으로 환대해주시는 학부모를 만날 때면 난 오히려 한없이 낮은 자세가 된다. 내 부족함을 채워 더 나은 교사,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155쪽
나는 작년 여름에 국회의사당 앞에 함께하지 못했다. 업무가 밀려 주말도 없이 일을 해야했다는 변명과 몇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만으로 길위의 선생님들을 응원했을 뿐이다. 선생님들이 폭염에 검정옷을 입고 모여있는 모습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결국, 다정한 학교는 다정한 사람들이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을 교사와 학부모들, 교사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 교육과 관계된 업무를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