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거라 예상했네. 어떤 역사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드러나지 않으니까. 그리고 추측이란 무엇이든 그다지 믿을 수 없어. 그러니까 세상의 많은 일은 반드시 알아야 하지도 않아. 자네는 안다고 생각해도, 사실 자네가 아는 것은 본래 모습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어."
"네. 이번에 다니면서 어떤 일은 하늘이 덮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에 맡긴 채 시간에 의해 풍화되도록, 시간에………… 연매장되도록 둔다고요." - P430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래, 나는 망각을 선택했고 너는 기록을 선택했어. 하지만 네가 기록하는 이상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그리고 진실은, 칭린은 냉소를 지었다. 진실이 어떻게 언어와 글로 표현될 수 있겠니? 세상의 어떤 일도 진정한 진실을 가질 수 없는데. - P444

이렇게 나는 내 기억을 되짚으며 글을 썼다. 딩쯔타오는 친구 어머니의 얼굴과 내 큰이모의 얼굴로 번갈아가며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여인들은 조용히 자신의 일생을 살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고난을 짊어졌음에도 세상에 온 적도 없다는 듯 숨죽이며 살았다. - P4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 나는 문득 우리가 모든 역사를 알아야 하는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삶에는 자연도태의 법칙이 있잖아. 알리기 싫은 것들이 있으면 삶은 모종의 방식으로 그걸 감춰버리지. 그럴 때는 아예 몰라도 되는 거야. 어차피 세상에는 모르는 일이 더 많고 아는 일은 적으니까. 더군다나 우리가 힘들게 알아낸 것들이 당시의 진실이라고 보이지도 않아." - P3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일 쯔타오를 데리고 성당에 간다. 루르드 성모상 앞에 이르렀을때 쯔타오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당시 사람들도 "누구세요?"라고 물었으며 그녀는 "나는 원죄에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노라고 알려줬다. 쯔타오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래서 성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손바닥에 글자도 써줬다. 쯔타오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나는 원죄가 없다는 뜻이라고 답한 뒤 이 세상에서는 나와 그녀 모두 원죄에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리송한 눈치였지만 내 말을 가슴에 새겼다. 다음날에는 루르드 성모를 보고 속으로 ‘나는 원죄에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중얼거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그게 옳다. 내게는 그녀의 평온이 필요하다. - P3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날 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흙을 메웠는지 몰랐다. 평소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재잘재잘, 바스락바스락 울리던 집안의 소리가 전부 사라졌다. 한때 미소 짓던, 슬퍼하던, 키득거리던, 찡그리던, 침울해하던 얼굴이 전부 똑같이 변해버렸다.
이런 밤을 겪었는데 제가 살아 있는 것 같나요? 그녀는 속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 P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인은 오랜 시간을 한결같이 보냈다. 한 해 한 해의 시간이 세밀하고 촘촘한 막처럼 그녀의 기억 뒤편에 놓인 것들을 층층이 덮었다. 한해에 한 장씩, 시간이 흐르면서 얇았던 막이 두껍게 쌓였고 판처럼 굳어졌다. 그렇게 그녀의 의식 속에 깊이 숨겨진 마귀들이 모조리 봉인되었다.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