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나는 엄마가 피워 올리던 담배 연기와 한숨을 이해했다. 엄마는 침묵 속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나를 사랑했다. 때론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자책감으로, 때론 꿈을 포기한 아쉬움으로 그 모든 감정이 그리는 그림자를 이해하게 되었다. 모성애란 산업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바치는 희생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아이를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는 세상 모든 엄마들의 고백이다. 그래서 모성애는 환상이다.
엄마 괜찮아, 엄마도 엄마는 처음 하는 거였어. - P114

결혼이란 시소를 함께 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올라가고 나면 내가 올라가고, 그다음엔 또 네가 그렇게 차례차례 오르락내리락 마주보며 웃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무게만큼 서로의 다리에 힘을 분산하여 균형을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게 중심은 언제든 시소에서 일어나 떠나 버리는 사람 마음대로 깨져 버릴 수 있음을, 그토록 아슬아슬한 것이었음을, 난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았다. 그가 떠난 겨울, 아무도 없는 텅 빈 놀이터에 아무도 올라타지 않은 시소는 기울어져 있었다. 발이 닿지 않는 허공에 혼자 남아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시소란 그렇게 기울어져 있었다. 난 그걸 한참이나 뒤늦게깨달았다. - P134

그 관계 속에서 의미 없는 사랑의 말을 하고, 의식적으로 당신을 보듬는 건 가식이 아니라 안간힘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사랑의 권태로움과 사랑의 종말을 너무나 잘 구별할 수 있으니까. 사랑의 모습이라는 것도 처음엔 총천연색 같다가 서서히 흐려지는 파스텔 톤으로 바뀌니까. 그것도 사랑이니까. 이미 끝난 사랑을 지속하는 것이 가식이고 허위다. 이별이 두려워서 이미 끝난 사랑을 붙잡고 있기도 했다. 그저 누구라도 곁에 있으면 되었다. 두렵지만 끝난 사랑은 놓아두자. 다행인 건 영원한 이별이란 없다는 것. 삶이란 만나고 헤어지고, 또 누군가를 만나는 기적의 순환. 그래서 우리는 이 외로운 별에서 살아간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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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자전거 렌트 요금

몇 년째 마주치지 않았지만
혹시 마주칠까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다

10년 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아직도 두려워하거나
그리워하는 마음도 싫었다

여기는 미국이고
그 안에 오리건 주
그 안에 포틀랜드
그 안에 아파트
12층
G호

문열고
나에게 나타날 리가 없는데

나의 뇌 안에서 머무르는 그가
나의 생각도 다 듣고있을것 같아서

생각을 뱉어내고 싶고
달려나가고 싶었다

2017년 4월 7일
자전거 렌트 요금
7.00$
Nike BIKETOWN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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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손을 대면 스러지는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증발해버릴까, 멀어져버릴까 언제나 주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가감 없이 표현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것도 어떤 관계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불가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태어난 것일까요. - P58

어떤 울음이 안에 있던 것을 죄다 게워내고 쏟아낸다면, 어떤 울음은 그저 희석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농도를 묽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 - P74

요즘은 사람을 만나면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들어요. 나한테 뭐 원하는 게 있어서 접근하는 건가 깔보는 건가 싶고, 별거 아닌 말에도 화가 나고.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애는 이야기했다. 누군가를 의심하거나 미워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그래서 도망치는 거라고.
좋아하던 사람도 미워지니까 자꾸 움츠러들어요. 지금의 제가 매미라면 땅 위로 나오는 걸 포기할 것 같아요. 저 진짜 후지죠?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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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라 예상했네. 어떤 역사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드러나지 않으니까. 그리고 추측이란 무엇이든 그다지 믿을 수 없어. 그러니까 세상의 많은 일은 반드시 알아야 하지도 않아. 자네는 안다고 생각해도, 사실 자네가 아는 것은 본래 모습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어."
"네. 이번에 다니면서 어떤 일은 하늘이 덮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에 맡긴 채 시간에 의해 풍화되도록, 시간에………… 연매장되도록 둔다고요." - P430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래, 나는 망각을 선택했고 너는 기록을 선택했어. 하지만 네가 기록하는 이상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그리고 진실은, 칭린은 냉소를 지었다. 진실이 어떻게 언어와 글로 표현될 수 있겠니? 세상의 어떤 일도 진정한 진실을 가질 수 없는데. - P444

이렇게 나는 내 기억을 되짚으며 글을 썼다. 딩쯔타오는 친구 어머니의 얼굴과 내 큰이모의 얼굴로 번갈아가며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여인들은 조용히 자신의 일생을 살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고난을 짊어졌음에도 세상에 온 적도 없다는 듯 숨죽이며 살았다. -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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