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찌른 사람은 난데 사람들이 나를 위로합니다.
나는 무릎 꿇고 고개 숙여 그들에게 절합니다.
이곳은 내가 벌받는 자리입니다.
위로가 벌이 됩니다. - P165

‘그동안 내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속인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재작년 축구 훈련중 채운은 일부러 부상을 유도했다. 그러고 담당의로부터 더이상 운동선수로 살기 어려울 거란 진단을 받은 뒤 남몰래 안도했다. ‘적어도 내가 그만둔 게 아니니까. 내가 의지가 약해서, 실력이 안 돼서 못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겉으로는 모든 걸 잃은 양 어두운 표정을 짓고 다녔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좀더 너그럽고 친절하게 대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 삶에는 또 얼마나 많은 기만이 있을까?‘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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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휴대전화 액정 위로 두 손가락을 벌려 엄마 얼굴을 확대했다. 긴 투병 기간 동안 엄마 몸은 계속 달라졌다. 장기는 물론이고 몸의 전체적인 선과 색이 변해갔다. 평소 엄마 모습을 많이 그려온 소리는 그걸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아픈 엄마를 그리다 말고 종종 손을 멈췄다. 소리는 엄마가 떠난 뒤에도 엄마 얼굴을 자주 그렸다. 엄마의 눈동자에 고인 빛을 표현할 땐 더 공을 들였고, 어깨선을 다듬을 땐 실제로 엄마를 쓰다듬는 것처럼 했다. 그렇게 한때 엄마였거나 여전히 엄마인 선들을 좇으며 손끝으로 엄마를 만졌다. 그런 식으로 엄마를 한번 더 가졌다.
‘지우도 그랬을까?‘ - P129

소리는 가끔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자기 꿈과 깨끗이 작별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그저 다음 단계로 간 것뿐‘이라며, ‘작별한 건 맞지만 깨끗이 헤어진건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어른이 그렇게 사는데 그건꼭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라면서.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요즘에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재능은 있되 그게 압도적인 재능은 아님을 깨달아서였다.
사실 그걸 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당장학원 친구들의 그림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소리는 궁금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계속하는 데 필요한 재능은 얼마만큼인지. 그 힘은 언제까지 필요하고 어떻게 이어지는지.
손에 이상을 느낀 뒤로 소리는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더 잃어갔다. 그림이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아닌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수단이 되다보니 그랬다. 그런데 최근 지우에게줄 선물을 준비하며 소리는 자신이 오랜 시간 잊고 지낸 재미와 기쁨을 느꼈다. 내가 특별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그리는 그림은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 P130

‘이야기가 가장 무서워질 때는 언제인가?‘
소리가 슬픈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때‘
그런데 채운은 지금 무서운 이야기 속에 갇혀 있는 모양이라고, 거기서 잘 빠져나오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리는 곧 채운과 만날 예정이었고, 그건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는 뜻이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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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도 겨울 바다에서 눈을 맞으며 내 키보다 더 큰 파도에 올라서보고 싶어. 그리고 그런 나를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 나 잘 지내고 있다고, 안심하라고.‘
지우는 지금 자신이 상상하는 바다와 그날 엄마가 실제로 마주한 바다는 얼마나 같고 또 다를지 가늠했다. 그러곤 자신에게 태블릿 피시를 건네며 희미하게 웃던 엄마 얼굴을 떠올렸다. ‘내게 죽음이라는 가장 큰 거짓말을 남기고 떠난 엄마, 나를 위한다면서 바다 쪽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삶의 방향을 튼, 용서할 수 없는 엄마‘를.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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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그 불편한 진실을 나는 중환자실과 병실을 오가며 깨달았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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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사람에 익숙하지 않지?"
그 애의 목소리도 지나치게 가까웠다.
"사람 대하는 거 싫고, 불편하고. 그러니까 파드되가 유난히 어려운 거
"아니야. 그런 거. 나 군무는 괜찮아."
"군무도 못 하겠다고 하면 무용 때려치워야지. 애초에 발레는 혼자 추는 춤이 아니잖아. 그리고 군무는 여럿이 함께 추는 거니까 동작만 정확하게 맞추면 되고, 파드되는 상대의 상황도, 감정도, 생각도 이해하면서춰야 하니까 너한테 더 불편하고 어려운 거야. 상대까지 생각하면서 춤을 출 여유가 너한텐 없어."
신랄한 말이었고, 배려가 없는 표현이었다. 지금 이게 진짜 강유리구나. 내 표정이 험악해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눈을 수건으로 동여매고있는데도, 그게 보였는지 강유리가 하하, 웃었다.
"너 다른 사람이랑 얽히는 거 무서워하잖아."
"아니야!"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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