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는 오늘도 짝사랑 중 - 동물을 돌보는 기쁨, 동물의 아픔을 보는 슬픔, 수의사 일일드라마
김명철 지음 / 김영사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년, 갑자기 집 마당에 나타난 검은색 솜뭉치로 인해 우리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깜냥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밥을 챙겨주는 정도였다. 작년 10월 깜냥이가 새끼 고양이를 낳았다. 그중 몸이 약한 아이를 집에서 보살피며 고양이를 집에 들이게 되었다. 밤낮으로 밥을 먹이고 약을 먹여 건강을 회복한 아이에게는 눈이 예뻐 ‘단추’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니 떡하니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이 책을 지나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고양이들의 건강을 신경 쓰면서 동물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데, 갈 때마다 수의사 선생님의 친절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초보 집사인 탓에 한번 방문할 때마다 여러 질문을 하는데 알고 싶었던 정보보다 더 많은 걸 알려주신다. 피곤한 모습인데도 목소리는 늘 활기가 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동네 수의사분에 대한 감사함이 더 커졌다. 다음에 방문할 때에는 박카스라도 하나 사서 가야겠다.

/

<외줄 타는 수의사>라는 꼭지에 이상적인 수의사에 대해 적은 내용이 있지만, 나는 어쩐지 그 문장들이 김명철 수의사님의 다짐처럼 다가왔다. 몇몇 에피소드에는 마음이 힘들어 며칠 내내 입맛을 잃고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날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대부분의 직업이 그렇지만, 수의사는 특별히 사랑 없이는 절대 이어갈 수 없는 직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몰아치는 일정을 소화한 후에 학회나 세미나에 참석하여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어디 이뿐인가, 보호자들이 환자로 찾아온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도록 때로는 다독이고 때로는 설득해야 한다. 경제관념을 가지고 똑똑하게 병원을 경영해야 한다. 지나친 감정이입보다는 냉철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잘 돌봐야 한다.

🐈‍⬛ 근무시간 이후에도 완전한 퇴근을 하지 못한다. 상태가 좋지 않은 입원 환자가 있을 경우, 집에 도착해서도 대부분 편히 쉬지 못하고 환자의 상태가 달라졌다는 연락이 올까 봐 항상 휴대전화 옆에 두고 날이 서 있기 마련이다. 이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 퇴근 후에도 병원에 전화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p.107.)

🐈‍⬛ 치료 결과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결국은 무너져 내려 다른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다. 자책보다는 복기를 해야 하며, 복기는 나중에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과정이지 나를 채찍질하기 위한 시간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pp. 156-157.)

🐈‍⬛ 대부분의 동물 병원은 공휴일 없이 일하고 주 5일, 게다가 근무시간을 초과하여 일을 하는데 퇴근 이후의 시간조차도 일에 잠식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p.158.)

특히 생명과 관련된 일이기에 일과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이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명감이 없다면 절대 지속할 수 없다. 수의사의 자살률과 우울증 비율이 높다는 것도 어쩌면 이런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할 테다. 수의사분들이 꼭 충분히 휴식할 수 있길, 너무 오랫동안 아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기기 구입과 운영 관리 등으로 초기 투자비용과 고정 유지비가 높기 때문에 일반 병원에 비해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떤 수의사분은 월급을 포기해가면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근무 환경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개선 또한 이루어져야 할 텐데 더디더라도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를 바라본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고양이 앞에서는 ‘물렁이는 물풍선’ 같은 고양이의 배처럼 한없이 말랑해지는 수의사. 오랫동안 병을 앓던 환자가 치료되어 나갔을 때의 그 기쁨, 초보 집사들에게 이런저런 고양이 관련 지식을 설명하는 기쁨. 이런 것들이 수의사로서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하니 ‘역시 가장 밑에 있는 것은 사랑이구나, 사랑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지탱해 주는구나’ 싶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때.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작은 선택들이 실은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가는 이정표였다는 확신이 들 때. 그리고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될 때. 그때 나의 직업이자 삶이 된다.

/

일일드라마는 한 직업에 대해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 좋다. 이번 수의사 편은 사랑스러운 일화에 피식거렸고, 빈틈없는 일정을 소화해 내는 내용에는 마음이 함께 바빠졌다. 동물 병원과 수의사 근무 환경의 실태를 다룬 부분을 읽으며 덩달아 심각해지기도 했다. 내용이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책 한 권 달랑 들고나가 가뿐하고 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