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 장애, 세상을 재설계하다
사라 헨드렌 지음,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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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의 몸이 증강된 몸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나와 다른 몸 또한 돌아보게 한다. 그 몸들을 통해 마주하는 세상은 새롭다.

■ 몸은 아주 단순한 것에서부터 기계적으로 가장 복잡한 것까지 수많은 증강물이 추가된 바디 플러스 body plus 상태로 살아간다. 당신이 유난히 장애가 되는 환경에 살면서 보철장치로 몸을 확장하는 10억 명 중 하나든, 매일 콘택트렌즈나 교정 신발을 착용하는 사람이든, 당신의 일상은 바디 플러스가 가장 진정한 상태라는 증거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일상의 형태에 상충하는 몸들을 돌아본다면, 레너드 데이비스가 주장했듯이 “존재의 예외적 상태로 보였던 장애가 사실 존재의 극히 평범한 상태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또한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라는 말은 너무 쉽게 할 수 있어서 도리어 할 수 없는 말이다.” 너무 손쉬운 총체적 일반화라서 어떤 몸에는 그러하고 어떤 몸에는 그러하지 않은 부적합의 특정한 현실을 가리게 된다는 뜻이다. p.47.

지난주 배터리 교체 수리를 맡겨 3일 동안 강제 스마트폰 디톡스를 했다. 좋은 점 보다 불편한 게 훨씬 많았다. 일정 관리, 할 일 정리를 모두 스마트폰으로 하는 나로서는 머리 하나에 의존해 생활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지하철 노선도와 누군가의 전화번호 이 모든 걸 손쉽게 찾을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이렇게나 스마트폰에 의존을 많이 해왔구나 싶어 새삼스러웠다. 스마트폰 말고도 없으면 불편한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다. 일상에 익숙해진 나머지 바디 플러스 상태로 살아가고 있음을 잊는다.

일상에 쉽게 무뎌진 이유는 세상이 ‘표준’에 맞추어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평균에 비해 비교적 키가 작은 나는 때로 지하철이나 버스 손잡이를 잡는 게 어렵다. 하지만 크게 불편함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저신장 장애인의 몸으로 보는 세상은 이와 다르다. 강의실에 들어와 강연대에 서는 일도 특별한 보조가 필요하다. 거리는 휠체어 이용자나 노인,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사람들에게 매일 차별을 실감하게 하는 곳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크게 놀랍지 않은 연석 경사로는 수많은 투쟁으로 얻어낸 결과다. 신호등을 건너는 시간 또한 누군가에게는 버거울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 장애 연구는 몸과 세상의 이런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 유용한 모델을 제시한다. 순수한 의학적 모델에서는 손상의 위치가 몸이며, 손상된 몸을 가진 사람이 책임을 진다. 즉, 장애에 대한 대처, 생존, 극복, 그 외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 개인이 자신의 개별적인 조건과 싸워야 한다는 말이다. 반면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서는 시나리오가 몸에서 주변으로 확장된다. 거기에는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든 몸이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가능 또는 불가능하게 만드는 도구, 시설물, 교실, 보도 그리고 인간의 번영을 이루는 제도와 경제라는 더 큰 구조가 포함된다. 사회적 모델에서 장애를 살아 있는 경험으로 만드는 것은 몸의 조건과 세상의 형태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따라서 장애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의 문제이다. p.31.

한편 이 책은 개인이 여러 도구를 사용해 세상에 적응하는 방식도 소개한다. 비슷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적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첨단 기술이 동원된 의수를 착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수를 거부하고 케이블 타이만으로 어려움 없이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여 적응하는 변화무쌍한 몸을 본다.​

개인의 차원에서 다양한 기술을 적용하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견고한 정상성의 환상을 벗어나 바뀌어야 할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담겨있다.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를 읽다 보면 몸과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 안도하기도,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함에 경각심을 느끼기도 한다. 많은 내용이 담겨있어 살짝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여러 장애와 그를 경유하여 보는 세상을 소개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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