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점 반 우리시 그림책 3
이영경 그림, 윤석중 글 / 창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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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점 반>은 1940년에 윤석중이 쓴 동시이다.

점(點)은 시간을 나타내는 말로 넉 점 반은 네 시 반을 가리킨다.

책 첫 장에 ‘그리움을 담아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께 바칩니다.’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는데, 아마 어른들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 올리며, 우리의 아이들을 바라보라는 진지한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분꽃 사진이에요
 
1940년이면 일제시대. 우리의 말과 글을 마음 놓고 쓸 수 없었던 암울한 시대에도 변함없이 피어 오르는 분꽃처럼 그림책 안의 아기는 천진난만 하면서도 당당하다.  

 시는 1940년대 쓰여 졌지만 그림책 안의 모습은 그리 오래 전인 아닌 1970~80년대의 모습처럼 보인다. 가겟집 앞의 아이스크림 통과 ‘미원’이라고 써 있는 봉지가 회전 걸게 위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풍경이라든지, ‘원기소’라 써 있는 광고지, 통에 담겨 있는 비닐우산 등등이 왠지 일제시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림책 뒤쪽에 가면 아가의 집과 구복상회는 작은 도랑 하나를 사이에 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책은 ‘아가, 영감님, 어머니, 데이트하는 청년’의 시선을 좇아가며 읽으면 더욱 생동감이 넘친다. 

이 책의 아가는 ‘물 먹는 닭 →지렁이를 잡아 옮겨가는 개미떼→잠자리→분꽃’ 쫓아가며 재미있는 놀이의 세계에 빠져 있으면서 잊지 않으려는 듯 “넉 점 반, 넉 점 반”을 중얼거리면서 다닌다. 그러다가 해를 꼴딱 넘겨 돌아오면서 “엄마, 시방 넉 점 반 이래.”라고 말하는데, 이 대목에서 나는 마치 시간이 넉 점 반에서 멈춘 후 나의 어린 시절로 잠시 갔다가 다시 현실 세계로 되돌아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다섯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네시반에 나가 해를 꼴딱 넘겨 돌아와도 전혀 위험하기 않는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어른 들 눈에는 별 것 아닌 것에 나도 모르게 한참 동안 빠져 들곤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뭔가에 빠져 몰두할 때가 있다면 넉넉한 여유를 갖고 지켜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을 덮는 순간, 동심의 세계로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행복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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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창비아동문고 175
박기범 지음, 박경진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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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만났던 '문제아'는 서두부터 내 마음을 확~ 사로 잡았던 책이다.  당장 샀다. 당장 사서 그의 순수한 문학 세계를 간직하고 싶었다. 

서두의 작가의 말은 특이하게도 일기 형식을 빌어서 쓰여 졌는데, 내용이 참 솔직하고 순수해서 내 심장에서 방망이질 소리가 다 났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작품 속 동화들은 하나 같이 읽는 이의 정곡을 찌르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고, 산업재해, 정리해고, 노숙자, 이혼가정 자녀들에 대한 잘못된 시선, 문제아 아닌 문제아에 대한 시선, 학교 촌지, 남북 평화 통일에 대한 꿈, 이름없이 스러져 간 민주투사들, 버려지는 애완견 등등. 우리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올바른 시각의 필요성을 골고루 전달한 글들이었다. 그리고 동화의 맨 마지막마다 쓰여 진 <끝>이라는 글자는 수록된 모든 글이 아이의 눈높이에서 쓰여졌음을 알게 해 준다.  저자는 아마  이 책을 통해서 "문제아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잘못된 시선이 문제아가 아닌 아이를 문제아로 만든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아주 잘 쓴 책이라 생각되고, 초등 중학년 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널리 읽혀 졌으면 하는 책이다.  

먼저, <손가락 무덤>부터 차근차근 보자면, 한창 젊은 나이에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제대로 된 보상도 못 받고 노가다 배관일을 전전하는 힘 없는 아버지요, 가장이지만 손가락 무덤사연을 통해서 중요한 말을 던진다. "공부한답시고 어려운 거 머리속에 담는다며 제일  쉬운 것들을 까먹지는 말라고"  정말 그런 것 같다. 많이 배운 사람은 모두 훌륭한 사람, 좋은사람이 되야 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걸 보면 말이다.  모두 훌륭한 사람만 되려고 하지 다들 사람으로서 꼭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소양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아빠와 큰 아빠>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던 형제간이 '정리해고 통지서'로 인해 하루아침에 화목이 깨지게 되는데, 과연 두 가정이 다시 행복하게 되는 길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한 사람이라도 회사에 다녀서 나머지 식솔들을 건사할 것인가?, 아니면 윤석이 말대로 두 가장이 사측의 요구에 응하고 힘을 합해 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인가? 나라면.... 어렵다. 참, 어렵다. 때론 아이들의 말 속에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어른이 되어야 겠다.

<독후감 숙제>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아이가 독후감 숙제할 변변한 책 한권이 없어서 쓰레기장에서 우연히 주운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 일기'를 통해서 자신도 수학여행비 5만원이 없어서 선생님께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교사는 늘 학교 업무와 학급일로 시달리고 있는현실이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나, 이혼가정 어린이, 편모편부인 아이들에게 동정이 아닌 진심어린 사랑으로 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교사가 이런 아이들에게 우선순위로 이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봐 준다면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교사와 어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이 절실하다. 

<전학> 이 책에서 내 마음에 가장 와 닿는 내용이었다. 학군때문에 살고 있지 않은 곳으로 주소지를 옮겨 가면서 겪게 된 한 아이의 이야기. 아마 둘째가 작년에 초등학교에 첫 입학을 했기 때문에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다녀야 원칙인데 극성 엄마때문에 일부러 멀리 떨어진 '미래초등학교'에서 불행한 학창시절을 다 보내고, 5학년때 기어코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원래 살던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다.  아이는 얼마나 좋았으면 중학교, 고등학교도 안가고 '선옥초등학교'에서 졸업도 안하고 계속 다니고 싶다고 했겠는가. 난 이 글의 극성 엄마까지는 아니지만 과연 내 아이들이 쫄지 않고 마음 편히 학교 생활을 하게 했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봤다. 무엇이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 길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다.   

<문제아> "나는 문제아다.  선생님이 문제아라니까 나는 문제아다. (작가의 말)"  

처음부터 문제아는 없다. 문제아라는 선입견이 아이를 문제아로 만든다는 뜻이 아닐까?  창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아빠랑 어렵게 사는 아이다. 아빠가 다치셔서 어떻게든 병원비라도 마련해 보려고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는 기특한 아이요, 할머니 약값을 불량배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용기있게 맞서는 아이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싸움이나 해서 남의 이나 부러뜨리는 무서운 아이, 수업시간에 잠자코 엎드려 잠이나 잤으면 하는 아이, 폭주족처럼 오토바이나 타는 아이로 본다. 새학기가 시작해서 새로운 각오로 살아 보려고 해도 문제아 딱지 때문에 문제아로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아이다. 여러분, 언제까지 하창수가 문제아로 살게 놔 두실 겁니까? 창수가 그냥 보통 아이로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게 우리 모두 도와 주고 노력해야겠습니다.           

<김미선 선생님>은 '학교 촌지'라는 다소 민감한 문제를 소재로 담임교사와 반 아이들이 풀어 가는 내용이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아이들의 어두운 마음을 더욱 짓누른다. 혹자는 그래서 "정말로 이혼하고 싶다면 제발 아이들이 다 큰 다음에 이혼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미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부모의 이혼으로 그 아이가 받게 될 상처가 안쓰럽고 안타까운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가 동정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잖는가. 혹여 잘못을 해도 그냥 넘어간다거나, 괜히 잘 대해주는 척, 관심있는 척, 작가 말처럼 "집안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느니 하면서 자꾸 이상하게 보는 것은 문제아가 아닌 아이를 '문제아'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아이들을 문제아 취급하는 일은 "그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라는 점을 우리 모두 명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되 그냥 보통아이로 대해 줘야 한다.

<김미선 선생님>과 <문제아>는 주제면에서 서로 비슷하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이혼가정 아이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 보지 말고 그냥 보통아이로 봐 주어야 한다는 것과 다른 선생님과 달리 진정으로 아이들을 이해해 주시는 김미선 선생님을 촌지문제와 결부시킨 점이 약간 겉돈다. 또한 주인공 여자 아이는 선생님이 촌지를 받았든 안 받았든 상관 없이 내년에도 담임선생님이 되어 주셨으면 하지만 독자입장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김미선 선생님과 같이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선생님은 절대로 촌지를 받지 않았기를 바라고, 당연히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받았나, 안 받았나'에 대한 궁금증은 최고조로 끌어 올려 놓고 이 문제는 흐지부지 끝을 맺었을까?  내가 글의 속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쉽다.  만약 기회가 되서 "작가 박기범"을 만난다면 꼭 물어 봐야겠다.   

<끝방 아저씨> 재개발 재건축으로 인한 철거민의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무료 배식자, 노숙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잘못된 시선을 꼬집는 글이다. 사지 멀쩡하면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그저 남에게 기대 살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 그럴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오히려 형편이 조금 나은 사람들이 자원 봉사를 통해서라도 그들이 사회에 나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대상이지 그저 할 일 없이 놀고 먹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 준다.  

<송아지의 꿈> 예전에 농가에서는 소 한마리가 큰 재산이었다. 그런데 자꾸 소값이 하락해서 농민들은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나 울상이다. 이 글은 소떼 방북이라는 사회 이슈를 통해 축산 농가의 어려운 경제 사정과 분단현실, 실향민의 아픔을 그렸다. "꿈"이라는 글자는 "잠잘 때 꾸는 꿈"이라는 뜻도 되지만 "희망"이라는 뜻도 된다는 점에서 꿈속에서 '나 = 송아지'였기에 "송아지의 꿈"은 "나의 꿈"이다. 송아지의 입을 빌어서 말하되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작가의 생각을 피력한 좀 복잡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설정이다. 사회 돌아가는 문제를 어른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아이들에게 들려 줄 말이 없다.  고작 만날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주냐,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잔소리만 늘어 놓는 것 밖에 더 되지 않은가?  내 자녀가 공부해서 남 준다는 새로운 시각에서 자녀가 의욕을 갖고 공부하게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다. 이 글을 읽고 아이들은 세상 돌아가는 뉴스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사회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이다. 또한 어른들은 사회 이슈를 아이들과 함께 나눠 보면서 자녀와 자연스런 대화의 장을 열게 될 것이다. 

<겨울꽃 삼촌> '박래전'이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이 땅의 정의와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자녀들에게 들려 줘야 하는 지 말해 주고 있다. 뭐라고 이야기하기가 막연하고 아이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고 말조차 꺼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요즘은 "전태일"과 같은 인물도 만화로 나와서 아이들이 세상을 폭넓고 올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어진이> 처음에는 장애인을 둔 가족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어진이는 사람이 아니다.  요즘 버려진 애완동물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병든 어진이를 가족의 일부처럼 생각하는 득철이네 식구들에게 감명을 받았다.  처음에는 예쁘고 귀여워서 키우다가도 병들고 귀찮아지면 아무렇게나 내다 버리는 사람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다. 박기범의 또 다른 동화 <새끼개>, <어미개>에도 애완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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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샤쓰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3
방정환 지음, 김세현 그림 / 길벗어린이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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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한창남은 고등보통학교 1학년 학생으로 매 수업시간 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매우 재치있고 반 아이들에게도 단연 인기있는 아이이다.  

체조시간에 샤쓰(지금의 '내복'의 의미같다)를 입지 않은 자신의 몸을 '만년샤쓰'라고 한 대목을  보면 창남은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늘 재치로 대처하는 용기있는 아이여서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저려온다.  

뒷부분에 가서 나의 코끝을 빨개지게 하더니 기어코 가슴이 미어지도록 눈물나게 했던 대목은 엄동설한에 상의는 교복, 하의는 다 헤진 한복 바지에 짚신을 신고 온 창남의 모습, 아니 그보다는 그렇게 입고 오게 된 사정을 담담하게 전하는 창남의 이야기였다.  늘 강인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창남이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린다. 나 또한 꾹 누르고 있던 울음이 복받친다.   

그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천장을 바라보시는데 눈과 코가 빨갛다. 제자의 아픔을 함께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참 스승을 보았다.

창남의 어머니는 훌륭한 어머니이신 것 같다. 아무리 눈이 안보인다 해도 어찌 가난한 살림을 모르겠는가. 

자신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라고 하시는 어머니에게서 내 아이만 괜찮으면 되지, 늘 내 아이를 위해서 바쁘게만 살아왔던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창남을 이십리 먼길에 학교를 보내면서 아들을 삐뚤어지게 키우지 않고 올곧은 심성으로 자라게 한 것은 어머니의 안 보이는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 책이 오늘날의 시대와 동떨어 진다하여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혹은 왜 이 책이 아이들 필독에 속하는가에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르겠다.  

어른이 먼저 읽어 내 아이만 잘되면 되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모든 아이들이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위에 그런 아이들이 안 보인다하여 없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먹고 살만하다 하여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T.V에서 보여지는 소년소녀 가장들이 있어서 그렇고, 문학작픔 속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도 결식아동들이 우리 주위엔 많이 있다고 들었다. 얼마전 용산참사현장을 보더라도 하루 아침에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아이들, 영문도 모르고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헐리는 것을 그져 넋놓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그렇다. 얼마전 못된 어른의 잘못으로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갈 나영이가 있어서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하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이 읽어야 한다. 어른도 부모도 물론 읽어야 한다. 아픔을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우선 어려운 상황에서 얼굴에 슬픔이 가실 날이 없는 아이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아이들아, 힘들고 어렵겠지만 아무쪼록 이 책의 한창남과 같이 힘든 상황을 꿋꿋이 견디어 가길 바란다.  

부디 어렵더라도 정말 힘들겠지만 '만년샤쓰' 표지의 한창남처럼 웃음 잃지 않고 살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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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이가 잠자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날아야 되는데 안 날고 있었다.  

내가 무덤을 만들자고 했다. 

먼저 무덤을 만드는 순서는 땅을 파고, 잠자리를 넣은 다음, 흙으로 덮어주고, 네모난 돌을  

꽂고, 소원을 빌었다. 

  "하느님, 잠자리가 지옥에 안 가고 천국에 가게 해 주세요. 아멘." 

너무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 기분도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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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어느덧 2학기에 접어들어 그럭저럭 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있던 

늦여름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피아노 학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우리 반 배사장을 만났다. 

하도 먹성이 좋고 배가 많이 튀어 나와서  담임 선생님께서 지어 준 별명이다. 

나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관계로 별명이 아직까지는 없다. 어디 예쁘고 깜찍한 별명 없을까?  

아, 나를 보더니 관심을 보이며 어디 가는지 물었다. 

집에 가는 길이랬더니 눈을 반짝이며 같이 가자고 한다. 

대답하기도 좀 그래서 끄덕이고 걸음을 옮기자 내 옆에 바짝 붙어 따라 온다. 

"우리 손잡고 갈까?" 배사장이 물었다. 

가만히 있었더니 내 손을 슬그머니 잡는다. 뭐 그리 나쁘진 않았다. 

집에 왔더니 엄마가 계셨다. 

배사장은 우리 반 소문난 말썽쟁이라 엄마가 순순히 들어 오라고 할 지 조금 걱정됐다. 

하지만 나의 우려와는 달리 "어유, 배사장님께서 어인 행차이신지요? 어서 들어 오너라" 

하고 반겼다. 

우선 요즈음 우리 반에서 가장 유행하고 있는 카드를 꺼냈다.  반 아이들이 수업시간까지  

카드에 정신팔려 있는 통에 결국  "카드 가져오면 빼앗음" 이라는 약간 유치한  항목이  

알림장에 단골 메뉴로 오르 내리기에 이르렀다.  카드를 놔 두고 다니니 그만큼 간절했었다.  

한참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얼음 동동 띄운 음료수와 찐고구마를 내오셨다.  

배사장은 음료수만 두잔이나 먹었다. 몸에 좋은 것은 별로 안 좋아한다. 

이어 불루마블 게임을 하자고 했다. 배사장은 자기 집에도 있는 거라면서 알은체를 했다. 

게임하는 중에 나한테 돈 이만원 내라고 한다. 만원짜리 다 내서 없다고 했더니 "야, 오천원짜리  

네장 주면 되잖아!"하며 약간 무시하는 말투로 말했다. 

배사장은 수업시간에 속이 답답하다고 칠판 밑 교실바닥에 뒹굴뒹굴하기 일쑤다. 

그렇게 딴짓하다가도 신기하게도 수학 문제 정답은 척척 알아 맞힌다. 알 수 없는 애다. 

난 계산을 잘 못한다. 엄마는 내가 신기하단다. 넌 수업태도도 좋고 집에서 학습지도 하는데 

왜 그렇게 시험성적이 낮게 나오는 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배사장은 부모님이 직장에 나가셔서 밤 10시경에나 오신다고 한다. 방과 후에는 거의 학교 

운동장이 자기집 앞마당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는데도 받아쓰기는 항상 80점이상 나온다. 심지어 담임선생님께서 불시에 본 시험에서  

난 20점 맞았는데 배사장은 100점을 맞았다. 

그때 얄밉게도 공부 하나도 안했는데 100점 맞았다고 얼마나 뻐기던지.  

아마 그때부터 우리 엄마가 배사장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욱하는 성질하고 똥고집만 좀 고치면 노는 것이 제법 창의적이라며 호기심을 가지고 말씀한  

기억이 난다. 

아마 오늘 깜짝 방문에도 순순히 응한 것을 보면 아마 친하게 지내면 창의적으로 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내심 했는 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기분이 좀 상하긴 했지만  꾹 참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노래방 장난감이 생각이 났다. 

90점이 넘으면 팡파레가 울리는 장남감이다. 마이크도 있다. 

제일 자신있는 "검은 고양이 네로"를 불렀다. 평소에는 그렇게 불러도 90점을 못 넘겨 

애를 태웠는데 헉, 92점이 나왔다. 배사장 눈이 커졌다. 내친 김에 "아빠와 크레파스"도  

불렀는데 94점이었다. 흐흐. 학교 시험성적은 70점을 못 넘겨 허덕이던 내가 90점을 넘었다. 

엄마도 "아휴~ 우리 딸 남자 친구 앞이라고 가수 뺨치게 부르는 구나"하고 거들었다. 

웃긴건 배사장에게 불러 보라고 떠밀었지만 괜히 책장의 만화책만 꺼냈다 뺐다 한다. 

한마디 했다. "너 노래 못 불러?" "응" 아까 블루마블했을 때 속상한 마음이 조금 풀렸다.  

그러다 재미없어 졌는 지 밖에서 놀자고 했다. 축구공하고 줄넘기를 가지고 나갔다. 

뻥뻥 공을 차대는 통에 내 얼굴에 맞을 뻔 했다. 같이 차야 하는데 혼자서만 몰고 갔다. 

나한테 오는 가 싶으면 어느 틈에 달려와서 뻥 차버렸다. 

공을 뺏으면 안 줄려고 마음 먹었다. 드디어 내가 공을 잡았다. 꽉 잡고 안 놔 줬다.  

주라고 막 사납게 굴었다. 그럴수록  더욱 꽉 잡았다. 그랬더니 뒤에서 팔을 감아 목을 졸라맸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 엉엉 울어도 안 놔줬다. 무서웠다. 옆에 있는 아저씨가 뜯어 말려서 겨우  

놔 줬다.   

'야, 배사장! 성질 진짜 드럽다! 너랑 다시는 안 놀아. 너 우리집에 한 번만 오기만 해봐라!'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혹시 오늘 일기장에 이렇게 쓸 지 모르겠다. 하윤이 집에 놀러 갔는데 치사하게 자기 공이라고  

안 줘서 화났다고.  

배사장은 자기가 잘못한 일은 싸악 빼고 속상하고 기분 나쁜 것만 쓸 것이다. 

나는 다 안다. 배사장은 무조건 불리하면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말하는 재주가 있으니까.

나쁜 녀석. 바보 똥개 멍청이!  

엄마에게 당장 달려가서 울먹이면서 일러 바쳤다.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게 과격하게 노는 거야"라고 울고 있는  

나를 나무랐다. 

난 죽음에 문턱에 다녀온 것 같았는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배사장은 여자를 잘 모르는 구나, 쯧쯧,언제나 철이 들까나" 하며 덧붙였다.  

그래,  배사장! 너같은 애 한 트럭을 싣고 와 봐라, 내가 눈하나 깜빡하나.   

"하윤아, 친구 배웅해야지, 어서 나가 봐." 라고 엄마가 말씀하셨지만 나가지 않을 거다. 

집에 가든지 말든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엄마는 언니랑 도서관에 다녀 온다고 나가셨다. 나가다가 배사장 만나면  나 울렸다고 

혼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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