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사랑
이서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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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사랑은 눈부시게 구체적이어야 한다.

읽는 내내, 과거의 내가 생각나서 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눌러담았다. 언제나 내 자신의 이야기와 겹쳐지는 글들은 읽기가 힘들다. 이제는 괜찮을거야, 다 지난 일이니까, 난 잊었어- 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서희 작가의 '구체적 사랑'은 그런 나를 이러저리 흔드는 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과 사랑, 관계의 부딪힘, 홀로 가졌던 기대, 좌절된 관계, 수많은 부딪힘과 단절, 흘러감과 멈춤,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인연들까지 모든 기억이 흘러넘치는 기분. 결국 눈물이 흘렀다.

나는 차마 드러낼 수 없어서 그저 저 깊숙한 곳에 쳐박아놓고 꺼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흉터들을 작가는 가감없이 꺼내들었다. 그런 작가의 이야기가 내게 와 세게 때렸다가 이내 흩어졌다. 과거의 나와 대면하게 되면서 조금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이 책을 완독하고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리뷰를 쓴다. 좀 더 삼켜내었다. 좀 더 꺼내보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저 불행한 것이 아니어서 나도 불행하기만 해선 안되겠구나- 했다. 삶이 힘들었어도 그런 삶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며, 같지만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여 감정과 마음을 나누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의 사랑은, 나의 마음과 관게와 삶은 구체적이어야 했다. 뭉뚱그려 넣어놓고 꺼내보지 않을 그런 것이 아니었다. 꺼내어 빛을 보아야 조금이나마 온전한 '나'가 되는 것일테다. 좋은 기회에 좋은 글을 읽었다. 내 묵은 감정을 일부나마 덜어낼 수 있었던 슬프지만 기뻤던 시간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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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양형 이유 -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한 판사의 기록
박주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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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양형 이유는 공소사실에 대한 법적 설시를 모두 마친 후 판결문 마지막에 이런 형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는 곳이다.

현직 판사인 저자는 이 부분을 차용하여 글을 써나간다. 피고인에게 특별히 전할 말이 있거나 사회에 메세지를 던지고 싶을 때 공들여 쓰는 글. 영구 보존되어 때때로 우리에게 묵직한 메세지를 던지는 부분. 이 판결이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 그 이유들을 보면서 문득 울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분노하기도 했다.

단순히 보면 이 책은 판결을 내리는 판사의 이야기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는 삶이란, 인간이란, 정의란, 사랑이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게 해준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떨까.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죄질의 경중을 떠나서 법의 심판을 받은 그들은 잘 살고 있나.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는 사람들과, 다른 누구보다 못한 삶을 바라는 사람들이 섞인 시간들.

나와 타자의 거리. 멀리 두고 싶은 타자들.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그 타자들에 의해 존재가 증명된다. 그들이 나를 설명해주고 테투리를 잡아줌으로써 나는 이 사회에 속한다. 그렇지 않으면 잊혀진다. 잊혀짐으로써 나는 소외된다. 소외된 자는 어디로 가는가. 수많은 편견에 휩싸여 마음 편할 날이 없을까. 혐오와 차별이 일상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 두려움이 내겐 항상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와닿는다. '법' 아래 벌어지는 타자들의 이야기. 어찌보면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니기에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 그렇기에 한걸음 뒤에서 볼 수 있는 것.

참 멀리있는 사람들이다. 내게 판사란 정갈한 법복을 입고 무표정하게 앉아서 판결을 내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가끔 뉴스에서나 보는 시종일관 덤덤해보이는 사람들. 그런 판사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아 나랑 같은 사람들이구나. 정당하지 못한 것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감정이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결정이 수많은 우주를 비극으로 바꿔놓은 경우가 많아 끝없이 후회하는 사람.

저자는 그렇게 자신이 마주했던 사건들과 만났던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며 그 후회와, 자신의 직업에 대한 믿음,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번뇌를 드러낸다. 저녁 있는 삶이 아니라 삶이 있는 저녁을 바라는 마음. 퇴근이나 귀가가 아니라 생환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쓰다듬어준다. 잊혀지는 사람들이 잊혀지지 않길 바란다. 지워지는 이름이 지워지지 않길 바란다. 나는 타자에 의해 증명되나 혼자서도 꼿꼿하게 서있길 바란다. 마지막까지 사랑이 남아있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는 좀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나은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 법은 정의이면서 사랑일 수 있기에 나는 좀 더 믿어보기로 했다. 법과, 법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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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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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부터 쭉 읽다가 깊이 공감한 구절을 발견했다. 바로 '게으름의 아름다움은 따근한 사워와 포근 푹신 베개 쿠션과 함께 완성되기 때문에.' (25p) 그렇지. 그리고 원래 이불 밖은 위험한 법이니까요. 작가님.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읽기 시작했고, 단숨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끝까지 읽고 나서 좀 아쉬웠다. 조금 더 읽고 싶었다. 사회의 통념에 대한 문소영 작가의 생각들이 내 마음을 콕콕 찔렀기 때문이다. 글 사이에 자리잡은 그림과 사진들도 그 사유의 일부분으로써 잘 자리잡고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꽃핀다."의 의미는 유명해지는 것보다도 자기 분야에서 스스로 인정할 만큼 독창적이거나, 새로운 경지의 뭔가를 이뤄서 극소수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거나 생각을 전환시키고, 장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13

특히 2부 불편하게,의 글들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요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프로불편러'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우리 스스로를 위하여 우리는 불편해야하며, 내가 가진 것들에 의해 겪지 않는 타인의 불편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말해야한다는 거, 그렇게 한다면 이 사회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불편해지는 것이다. 그 불편함을 겉으로 끌어내야 한다. 3부 엉뚱하게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사랑을 거절할 권리도 있지! 맞다! 하며 읽은 '사랑을 거절할 권리도 있소이다'도 좋았다. 폭력과 협박 비스무리한 것으로 압박해서 얻어낸 관계가 행복할지 의문이니까. 원하지 않는 관계를 맺느니 평생 혼자살 수도 있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을 벗어나서.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다 같이 나대고 다 같이 잘난 척하면 안 될까? 서로의 나댐. 서로의 잘난 척을 관용하면서 '나도 잘나고 너도 잘났어.', '아, 나 특이해. 어, 너도 특이해.'의 마인드로 산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열려 있고 다양하고 여유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166

그리고 문소영 작가의 글은 내게 유쾌함, 통쾌함,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비좁았던 문을 열고 더 넓은 곳으로 향하게 하는 힘을 지닌 글. 조금 늦어도 괜찮아. 조금 게으르면 어때?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삶을 일궈내고 있다고 말해준다. 사회, 예술, 인문 분야를 통틀어 다루면서 그의 즐거움과 씁쓸함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독자가 공감하게 만드는 그녀의 글이 멋지게 빛난다.

🏷기억되는 것, 그건 결국 사심 없는 사랑만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보답인지도 모른다. /275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허례의식은 없애고 그 본질만 보는 것. 산다는 건 힘들고 불편한 일 투성이니까, 우리라도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말자고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무엇이 변했을까. 조금이라도 변한 나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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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 - 교통 혁신.사회 평등.여성 해방을 선사한 200년간의 자전거 문화사
한스-에르하르트 레싱 지음, 장혜경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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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혁신, 사회 평등, 여성 해방을 선사한 200년간의 자전거 문화사

'사람들이 페달을 밟을 때마다 세상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서문을 시작하는 문장이다. 처음 만들어진 드라이지네부터 현재의 자전거까지 변화해 온 자전거와 그에 따른 사회변화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엔 페달이 없는 형태로 사람들이 직접 발을 구르면서 탔지만. 심지어 그조차도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계층들만! 상상하다가 웃음보가 터졌다. 멋지게 차려입고 두다리로 으챠으챠! 바퀴를 구르는 남성들이라니. 당시엔 멋있다고 느껴졌을까 싶고. 여튼 그때까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말과 마차를 밀어낸 자전거의 발전 이야기를 읽으며 즐거웠다.
일단 거리에서 말의 배설물이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좋지 아니한가.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지만 그정도는 자연스럽게 흘려가며 읽어도 내용 이해엔 전혀 어려움이 없었고, 중간중간 그림과 사진들이 삽입되어있어서 힐끗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챕터는 '5. 자전거가 가져온 경제 변화', '6. 자전거가 선사한 여성 해방' 이었다. 그냥 단순하게 탈 것으로만 여기던 자전거가 당시엔 사회 평등의 상징이 되고, 자전거에 견줄 만한 사회 혁명은 없다는 평을 들었다는 게 신기했다. 자전거를 타느라 소비가 줄고, 사치품도 사지 않았으며, (시계와 자전거 중 자전거를 고르는 아가씨들) 기존의 맞춤옷을 대신해 값싼 스포츠 복장이나 기성복을 선호하게 되다니. 물론 자전거 용품들은 성행했다. 자전거에 오르골을 장착하는 경우도 있었다니. 드라이브 하면서 꼭 음악을 듣는 지금의 우리와 같다. 역시 자전거든 자동차든 드라이브엔 음악! 그러면서 멀리까지 나들이가 가능해지니 외곽의 경제도 활성화되고 부동산 시장도 호황을 이루게 된다. 왜? 장거리 출퇴근이 가능해지니까! 좋네, 나도 이사가고 싶다.

게다가 자전거와 여성 해방이라니. 이 둘이 연관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고 편안한 옷을 입기 시작할 수 있게 한 용기의 시발점이 자전거였다니. 자전거를 탐으로서 여성은 독립되어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여성은 자고로 이래야 한다'는 낡은 사회규범을 벗어나 의문을 품고 나아가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 항상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니던 여성들이 자신의 두 다리로 페달을 밟고 달리며 느꼈을 그 자유로움은 뭐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거다. 자전거로 시작된 여성들의 움직임이 나중엔 여성 참정권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역시 기동력은 중요하다.

미처 몰랐던 새로운 분야를 알게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 준 책. 갑자기 자전거 타고 싶어지고. 페달을 꾹꾹 밟으며 빠르게 달리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무서워. 다음엔 꼭 도전해봐야지. 이런 멋진 자전거를 꼭 타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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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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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분실을 읽고 첫눈에 반해버린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펀딩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참여. 진짜 표지부터 딱 멋진 책. 간결한데 따뜻한 느낌. 가름끈 있는 양장까지 완벽.
.
안의 글은 더 따뜻하고 아련하다. 사회로부터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있고 싶었던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작가는 덤덤히 풀어내는데 왜 나는 마음에 콕콕 와닿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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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은 너무나 내 취향인 글이라 한번만 읽을 수 없었다. 외부로 인한 단절과 그로 인한 내부의 공허함. 닿을 수 없는 것들. 그것을 향한 그리움과 애증. 그리고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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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사는 작가가 한 명 더 생겼다는 건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원통 안의 소녀도 어서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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