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광선 꿈꾸는돌 43
강석희 지음 / 돌베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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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생활 트래핑’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지 검색을 해봤다. 주인공 연주와 그 친구들이 하는 동아리 활동인데, 축구공을 트래핑하듯 지우개나 우유갑, 돌멩이 같은 생활 속의 물체들을 받아내는 것이다. “위치 에너지를 줄여 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을 연습하다보면 “뚝 떨어지는 기분과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까지” 받아낼 수 있을 거라는 동아리 안내가 너무 그럴듯해 보였다. 아쉽게도 검색 결과는 축구공 트래핑 영상뿐이었지만 어딘가 ‘생활 트래핑’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것을 하는 사람들은 있을 것 같다. 계속해서 홀로 가라앉으려고 하는 연주를 받아내주는 혜영, 다해, 정연처럼 다정한 친구들도 책 바깥의 세상에 있으면 좋겠다.

연주와 이모의 서사를 통해서 서로 알아간다는 것, 서로 돌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각자의 상처는 다른 것이고, 상처를 관통하며 사는 삶은 그것을 경험해보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기 어렵다. 다행히도 연주와 이모는 서로에게 다가갔고,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미움은 누그러들었다. 그리고 둘은 함께 살면서 서로를 돌본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극복하거나 치유하기를 성급하게 바라지 않는다. 곁을 지켜주면서 서로를 살게 하는 것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의 앞부분에선 주인공인 연주가 계속 뭔가를 숨기려 하는 듯했고, 후반으로 넘어갔을 땐 갑자기 너무 많은 이야기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연주의 마음이라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가 나중에는 쏟아지는 것들을 감당하기 어려워하기도, 함께 짊어내보려고 하는 그 마음을 읽었다. 껄끄럽고 날카롭고, 그러다 문득 둥실거리는 십 대 청소년의 성장을 잘 그려낸 책이다.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일까. 어째서 나는 나로 살 수밖에 없는 걸까. 스스로에 대한 익숙한 실망이 또 고개를 들었다. p.77

“내가 지키지 못한 것들이 꿈에 나왔어.”
(...) 이모가 내게 말했다.
“네가 사랑했던 것들이 찾아오는구나.” p.138

이모가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맞서서 악다구니를 부리고 팔을 휘젓는 모습을 상상했다. 굳센 이모, 거친 이모, 멋있는데. 당당한 이모. 우리 이모.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눈앞의 이모가 진짜 멋져 보였다.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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