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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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어린이들의 수필’이라는 문구에 호기심이 일었다. 어떻게 이 자료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어느 언어로 쓴 글일까? 어떤 주제로 글을 썼을까? 마침 광복 80주년을 맞아 이 책을 읽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서평단에 신청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1939년과 1940년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수상작이다. 조선에 살고 있는 일본인, 조선인 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했고, 글은 일본어로 쓰였다. 일본인 어린이들이 쓴 글은 자연 풍경을 묘사하는 글이 많다. 일본 문학을 읽을 때면 느껴지는 특유의 감상적인 표현이 아이들의 글에서도 느껴진다. 아버지가 뽑은 새 차를 타는 이야기, 나이 많은 조선인 가정부 ‘오모니(어머니)’와 나이 어린 조선인 가정부 ‘키치베(계집애)’와의 일화 등도 나온다. 글에서 풍족함과 여유가 느껴지고 모국어로 썼기 때문에 표현이 유려하다. 반면 조선인 어린이들은 학비를 걱정하거나 어렵게 돈을 모으던 중 학교에서 강매한 신전을 사는 이야기(그러나 신전을 사고 참배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표현되지 않고, 오히려 ’인고단련’하겠다고 말한다.), 집안일을 도와 돼지나 닭을 돌보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가축을 돌보지만 소는 나오지 않는데, 조선의 소들은 모두 식용으로 일본에 반출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국어가 아닌 학습한 일본어로 쓴 글이라 섬세한 묘사보다는 본인의 입장에서 일어난 이야기와 감정 위주의 글이 많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으므로 아이들의 삶에도 전쟁이 등장한다. 아이들은 군사용어를 자연스럽게 쓰고, 전쟁놀이를 재미있어 한다. 시대가 보여주는 것을 아이들이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족 중 한 명이 징집되어 기차역에서 작별하는 글이 여러 편 나온다. 어린이들은 슬퍼하는 한편, 병사가 된 가족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일본인 어린이는 일본 전대가 중국에서 연이어 승리하는 소식을 뉴스로 전해들으며 그 기록을 지도에 표시하며 만세를 부르기도 한다. 전쟁을 멈추길 바라는 글은 없다. 조선총독부 주최의 글짓기 대회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었겠지만, 학교와 사회가 아이들에게 전체주의와 군사주의를 끊임없이 주입했다면 조선인 어린이도 일본의 전승을 바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이 시기의 글은 늘 독립을 향한 열망과 저항으로 가득했는데, 일제가 목표로 했던 내선일체의 교육적 산출물을 본 건 처음이라 왠지 모르게 허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일본의 체제 아래 숨죽이며 성장했던 어린이들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이 글을 쓴 조선의 아이들도 마음 속으로는 조선의 독립을 꿈처럼 바라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연대를 계산해보면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 시기에 어린이였다. NHK 채널에서 스모를 보던 할아버지, 가끔씩 일본어 단어를 더 먼저 말하던 할머니의 유년기를 이 글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땐 막연히 그들이 일본어를 아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될 수록 그들이 거대한 풍랑을 거쳐 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다. 이 책을 통해 그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된 것 같다.

📚을유문화사 @eulyoo 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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