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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박상영은 내가 가장 친밀감을 갖는 작가다.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상영아!”라고 부를 것만 같아 실례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더군다나 올 8월에는 부산에 방문할 예정이 있다고 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정말 긴장해야 한다.
그를 내적 친구로 삼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우리는 동갑이다. 그가 졸업한 대학, 그것도 같은 학부에 합격하여 동기가 될 뻔했으나, 집안 어른들의 사립대 불가론을 이기지 못하고 그가 떠난 대구에서 대학을 다녔다. 대구의 특성을 4년간 속성으로 터득한 덕분에 그가 진저리치는 포인트 하나하나 공감할 수 있고, <1차원이 되고 싶어>의 무대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게다가 나도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교지 편집부를 했던 이력이 있다. 이번 에세이에서 교지 편집부 동기들과의 여행 이야기를 보며 혼자서 저 멤버에 내가 있을 수도 있었을까 생각하면 괜히 아쉽기도 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내적 친밀감이 아니라 내적 질척임이네.) <믿음에 대하여>를 읽었을 땐 어느덧 경력직으로 성장한 우리 또래 이야기를 읽으며 같이 나이 들어가는 작가가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에 무섭게 좋아요를 누르는 팬으로서, 이번 에세이는 그 사진들의 뒷이야기를 보는 기분으로 읽었다. 여러 도시와 나라를 오간 흔적, 아름다운 가파도 생활 사진을 보며 성공한 작가의 삶에 진입한 것을 축하하면서도, (가까운 적 없었던) 우리 사이가 점점 멀어지나 내심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그 못지않게 마음이 꼬인(!) 그의 애독자로서 이 책의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가 가파도에서 각종 동물들과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었을 줄이야. 허균문학작가상 시상식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까지 강릉을 향해 목숨을 건 운전을 했을 줄이야. ‘역시 눈물 닦으면 다 에피소드구나!’ 하며 신나게 이야기를 읽었다.
하지만 눈물을 닦고 농담을 던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가. 나는 에세이를 비롯해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쓸 때 실수와 잘못, 비뚤어진 마음 따위를 쉽게 글로 옮기지 못한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열등감은 굳이 말하지 않고 글로 쓰지 않아도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아채겠지만, 그럼에도 숨길 수 있는 데까지는 숨기고 싶다. 물론 작가는 무엇이든 작품으로 승화시켜야 하다보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런 마음을 솔직한데다 재미있게 써내려가는 박상영의 글을 읽다보면 팬이 될 수밖에 없다.
책을 읽다가 플래그를 붙여 놓은 부분은 김연수 소설가와 이금희 아나운서가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그가 이렇게 좋은 어른들을 만나 ‘감정의 경제성’을 배워가는 모습도 멋졌다. 아쉽게도 내 곁에 그런 어른은 없었지만 이 책 덕분에 바람 한 점에도 휘청대는 내 마음을 다잡아줄만한 문장들을 주워 담을 수 있었다.
📖”선생님의 삶은 지나온 과거나 먼 미래에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나간 일에 머무르지 않는다. (...) 지금 좋으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러다 인연이 다 되면 또 후회 없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삶. 미움과 슬픔뿐만 아니라 후회, 비뚤어진 애착과 같은 감정들도 선생님의 사전 속에는 들어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239쪽)
나 또한 올 한 해를 쉼 없이 보내고 있다. 신변에 많은 변화가 생기면서 정신없이 적응하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벌써 7월 중순이 되었다. 사실 지금도 가구가 덜 들어온 새 집에서 이사를 마치고 부엌 조리대에 노트북을 놓고 글을 쓰는 중이다. 다행히 2주 뒤에 방학이 온다. 이번 방학엔 어디론가 여행을 가려는 계획도 없다. 오랫동안 여행과 휴식을 착각하며 살아온 또 다른 인간이 올 여름에는 과감히(!) 집에서 정말 푹 쉬어보려고 한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이 책을 다시 한 번 펼쳐보며 휴식의 순도를 높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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