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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아주 독특한 형식의 문학작품을 만났다.
시인가?
소설인가?
딱히 목차도 없고 주욱 이어지는 글이 신비로웠다.
특이하네~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된 마루야마 겐지의 <<달에 울다>>.
표지부터 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인데,
일본어 원제 '쯔키니나쿠'를 소리내어 읽으니,
그 처량함과 쓸쓸함에 눈물이 나려 했다.
달만 둥그렇게 떠 있는 하늘 밑에 황량한 땅은 펼쳐지고,
거기 나홀로 서 있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상상했다.

그가 사용하는 오묘하고도 기괴한 단어들이 재미있다.
이를 테면, 두부 같은 영혼과 같은.
시작부터 조촐하고 빈한 열 살 소년의 이야기에 거부감없이 빠져든다.
야에코, 백구, 법사...
등장인물들이 뭔가 가슴철렁하게 갑자기 하나씩 등장하는 이 느낌 뭐지?
아부지의 생선 껍질 옷은 또 뭐고.
일본 소설답게 야한 장면들도 곳곳에서 등장한다. :)

책에 흐르는 느낌은,
주인공 '나'의 암울한 현실이랄까.
자신도 아는 자신의, 아니 자신의 집안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겉도는 듯한 슬픔이랄까.
전후 전쟁터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는 아들의 헛헛한 감정이랄까.

책의 주인공들은 이상하게 다들 어딘가 아픈 사람들인 것 같다.
각자 힘겹게 삶을 견뎌내고 있고, 쾌락을 쫓고 있고, 살아가고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고 버티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데 그것이 낯설지 만은 않은,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같기도 해서 씁쓸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용히 슬플 줄 몰랐는데,
주인공 '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그다지 기구한 것 같지 않은데도, 기구하게 느껴지고 쓸쓸했다.
젊은 남자의 삶이 이렇게 쓸쓸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그게 어디 '나'만의 이야기이겠는가.
조용한 사내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고요하게 요동치는 심리에 빠져들어보았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대륙에서 가져온 것은 질질 끄는 오른쪽 다리와 그 괴상한 옷, 두 가지였다.
나는 파는 물건이 아니다.
우리 집으로 시집올 여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나하고 살림을 차리고 싶어 하는 여자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 집에 들어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나 말과 다름없는 노동, 소독약 냄새, 땀투성이, 흙투성이의 나날, 일년 내내 바뀌지 않는 식사, 길고 할 일 없는 겨울, 그런 생활에 뛰어들 젊은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촌장 말이 맞다. 이제는 먹고 살기만 하면 만족하는 시대가 아니다.
나는 지금 분명히 행복하다.
1년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날들이다. 사과를 재배하고, 결실의 반은 내다 팔고, 반은 먹고, 오래 살고, 생선 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누군가를 쫓고, 그러다 언젠가는 사과나무 아래 묻히는 일생을 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는 야에코가 있다. 우리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자는 아버지라도 용서하지 않으리라.
야에코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