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지막 말들
박희병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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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을 받기 전까지 나는 엄마에 대한 분노를 늘 가슴 안에 품고 살아왔다.

그것이 내 아이를 키우면서 폭발했고, 상담을 받으며 점차 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심리학 책이나 성장과정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해 통찰할 필요는 있지만,

사실 상처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면 원망과 분노만 커져갔다.

그런데 그것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내가 내 감정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어서이지,

현재까지 내가 그 감정을 안고 살아가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현재'를 살고 '미래'를 살아나가야 하니까.

그래도 쉽지 않은 엄마를 향한 분노는 나의 마음공부하기 나름이겠지.

그래서 창비출판사에서 출간된 박희병 교수님의 <<엄마의 마지막 말들>>을 읽고 싶었다.

엄마도 우리를 키우기 위해 자신이 받은 환경 내에선 최선을 다한 것이 사실이고,

나쁜 기억도 있지만 좋은 기억도 많다는 것을 상기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계속 이런 분노의 감정에만 사로잡혀 있다가 훗날 엄마가 돌아가시면 백퍼 후회할 것이 뻔했다.

자식을 향한 사랑이 누구보다 컸던 엄마였기에,

이렇게 책을 읽으며 타자의 인생을 간접경험하며

내 인생과 내 엄마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했다.

일종의 독서치료를 위해 읽고 싶었다.

엄마가 올해 5월 부산대병원에서 척추협착증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에 잠시 입원해 계실 때,

나는 엄청 울었었다.

엄마가 퇴원하고 나면 환골탈태해서 반드시 효도할 거라고.

그런데 또 원망중이다.

뭔 원망이 그리도 많은지......

분명 엄마가 훗날 또 병원신세를 지게 되면, 나는 후회할 것이다.

이리 연약하고 나약하고 아픈 한 늙은 여자를 내가 그리도 미워했구나.

불쌍하다.

지켜줄 사람 없이 혼자 아파야 하는 이 여자가 불쌍하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을 읽으며 나는 병원에서 몇 달간 느낀 그 느낌을 또 느꼈다.

자신이 아픈데 자식 걱정부터 하는 엄마.

그게 밉다.

자기가 아프면 자기만 생각해야지 왜 내 걱정을 하노.

자기자신만 이기적으로 생각하세요. 내 걱정 말고.

사랑하는 가족이 서서히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간병한 아픔을 글로 적으시면서 박희병 교수님은 얼마나 아팠을까.

엄마와 주고받은 몇 마디를 회상하며, 엄마가 살아있음을 표현하시는 모습을 기억하며,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을까.

사실, 떠나보내는 자와 떠나는 자 사이의 공간, 마음을 느끼기도 했지만,

저자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엄마가 복용하시는 뇌 관련 약을 증량, 감량하는 것을 선택하고

다른 환자들이 의사의 무관심 속에 하루 종일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또 좋은 의사를 만나 의사의 살뜰하고 따뜻한 관심 속에 가끔 중얼중얼거리는 모습은 보이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등 그것 병동만의 생태계를 보며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 처럼 느꼈다.


. 이런 우여곡절 끝에 3주쯤 후 내 주장이 받아들여져 약이 원래대로 감량되었다. 엄마는 차츰 생기를 찾으셨고 음식도 제법 드시기 시작했으며 한두마디 말도 하실 수 있게 되었다. 감격스러운 상황이었다. 물론 사나흘에 한번쯤 밤에 잠을 주무시지 못하고 혼자 중얼중얼하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엄마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엄마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로 이해되었다. 말을 못하는 엄마의 대변자로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의 수족으로서 내가 정당하고 정확하게 엄마의 요구와 뜻을 반영하고 있는가? 나는 엄마가 병실에 계신 열달 동안 이 물음 앞에서 늘 괴로웠다. 26쪽

. 죽음과 고통 앞에서 삶을 위해 분투하고 버텨내는 존재야말로 영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엄마는 힘들지만 영웅적으로 이겨내고 계신 것이다. 엄마를 통해 나는 병원에서 '죽어가는' 시간조차도 귀중하고 값진 인생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호스피스 병실에서 임종을 맞은 사람을 수십명이나 보았다. 그들은 모두 존엄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마지막 삶을 여기서 살다 인생을 마감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이들이 병실에서 보낸 시간이 의미 없고 하잘것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이 시간이 그 자체로 의미 있고 값지며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간은 언젠가 우리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올 것이다.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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