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존중 - 생명 중심주의 환경 윤리론
폴 W. 테일러 지음, 김영 옮김, 박종무 감수 / 리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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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치며 역설적이게도 요즘 5월의 맑은 하늘을 매일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때아닌 강풍이 불고, 봄이 없어진듯이, 겨울처럼 춥다가 여름 날씨가 훅 하고 찾아오는 등

이상기후는 계속 되고 있다.

자연이 살아있어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

자연이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어야 우리도 생존할 수 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마시는 물,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 내가 먹는 음식이 나는 땅, 드넓은 바다.

그 어디 하나 농약이나 미세 플라스틱으로 오염되지 않은 것이 없다.

리수출판사에서 나온 생명 중심주의 환경 윤리론을 담은 폴 W.테일러의 <<자연에 대한 존중>>을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장씩 읽어보았다.

난 이 책이 1986년도에 나온 책이란 사실에 놀랐다.

미국에서는 벌써 그 시기에 자연 존중 시각에 눈뜨기 시작했구나.

내가 좋아하는 유발 하라리 님이 그러셨다.

인공지능 시대에 위협을 느낀 인간이 이제야 동물이나 식물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살 권리를 지켜주려고 하는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일리있는 말이다.

인공지능 앞에선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똑같은 객체아닌가.

그런데 나는 다행스럽게도 자연의 소중함, 자연의 풍요로움에 감사하고 자연의 품 안에 안기는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그게 커서도 이어지고 있다.

자연 존중 태도의 표현

자연 존중 태도는 도덕 행위자의 일련의 성향이다. 그 성향은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으며, 각각은 그 태도의 한쪽 측면을 이룬다. 나는 이들을 평가, 능동, 실천, 감정 측면이라고 부르겠다. 평가 측면은 어떤 가치를 판단하는 성향이고, 능동 측면은 목적을 가지거나 특정 목표를 달성하려는 욕구의 성향이다. 실천 측면은 특정 이유 때문에 행동할 뿐 아니라 그 이유를 행동의 좋은 구실로 간주하는 성향이다. 감정 측면은 특정 감정을 느끼는 성향이다.

자연 존중 태도의 평가 측면은 지구 자연 생태계의 모든 야생 생물이 본래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는 성향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그에 따라 그들의 선은 모든 도덕 행위자의 관심과 배려를 받아야 마땅하며 야생의 존재는 그 자체로, 그리고 그들을 위해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 존중 태도를 이루는 다른 모든 성향은 여기서 비롯된다. 88쪽

인간은 지구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다

생명 중심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면, 우리는 인간의 생명을 지구 생물권의 자연 질서를 구성하는 부분으로 본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종들의 지위를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자연계 내 인간의 지위를 생각한다. 지구와의 관계는 공통이며 우리와 야생 동식물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통 관계를 온전히 인식하면 우리는 그들과 진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된다. 110쪽

목적론적 삶의 중심으로서의 개별 유기체

개별 유기체를 목적론적 삶의 중심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릇되게 의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인간의 특성으로 '읽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들에게 의식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어떤 나무가 목적론적 삶의 중심이라고 해서 나무가 의도적으로 자기 존재를 지키려고 하거나,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하거나, 심지어 삶과 죽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와 단세포 원생동물 같은 유기체에게는 의식적인 삶이 없다. 그들은 그들 주변의 세계를 의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생각이나 감정이 없으므로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고유의 선이 있고 그들의 행위는 그 선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의식이 있든 없든 모든 유기체는 자신의 존재를 지키고 유지하는 지속적인 경향이 있으며 목표 지향적으로 활동하는 통일되고 일관성 있고 질서 정연한 시스템이라는 의미에서 목적론적 삶의 중심이다. 129쪽

<<자연에 대한 존중>>은 내가 평소에 자연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일치했다.

인간은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들중 단지 일부일 뿐이다.

지금은 마치 지구의 주인인양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은하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지구에 사는 한 생물종일뿐이다.

콘크리트로 지은 집이 없이, 아무런 도구없이, 야생에 버려지면 우리들보다 몸집이 크고 사나운 멧돼지, 곰, 호랑이와 같은 야생 동물에게 저항 한 번 못해볼 사피엔스일 뿐이다.

나는 늘 생각했다.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은 생각하고 글쓰고 말하고 책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그 외엔 먹고 자고 배설하는 등 다 똑같다고.

이런 단순한 시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찍 돌아온다면,

지구의 최대위기인 이 때, 사피엔스들이 똑똑하게 뭉칠 수 있을 거다.

사실 내 닉네임 긍정 Sapiens에 담긴 뜻이 이거다.

우린 사피엔스로서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해 뭉칠 수 있다는 것. 내가 사피엔스라는 걸 늘 자각하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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