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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시대의 탄생 - 1980년대의 시간정치
김학선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어느 강연에 갔더니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흐름을 통찰하고 싶다면,
1970~80년대사부터 공부해보면 좋다는 말씀을 들은 것 같다.
일상생활 속에서 시간정치(통치)에 따라 국민들의 일상이 어떻게 루틴화되어가는지 살펴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 되겠다.
'생각하는 대로 살거나, 사는 대로 생각하거나.'
매주 일요일 저녁 9시면 개그콘서트를 보며 아쉬운 일요일을 마무리하고
활기찬(?) 월요일을 우울하게 맞이해야하는 우리네의 모습이 '시간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알고 생활하면,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은 줄어들 것 같다.

저자 김학선 님의 <<24시간 시대의 탄생>>은 최근에 읽은 각각의 자기계발서, 재테크, 심리학 서적을 실로 꿰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도록 도와주었다. 대학생 때 노동운동의 역사가 있는 동아리에서 열심히는 아니지만 활동을 한 이력이 있어서인지, 근대 노동사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아주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1980년대는 18년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신군부의 군사정변이라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시작되었다. 신군부 정권은 스스로를 '새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이전 시기의 정권들과 단절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새로운 시간기획을 통해서 국민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이를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동원하고자 했다.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유치, 야간통행금지제도 철폐, 서머타임제 실시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반면, '서울의 봄'을 맞이한 대한민국 국민은 그동안 지연되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욕망을 실현하고자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신군부 정권은 이전 군사정권의 연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왜곡하는 구체적인 대상이었다. 그 때문에 1980년대 시공간에서 신군부 정권과 국민은 현재의 시간성을 둘러싸고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적 시간체제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인간의 노동이 사적 공간으로부터 분리되어 자본에 의해 일정 시간과 한정된 공간 속에서 임금으로 계산되면서 시간은 돈과 등치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이 돈과 등치되면서 시간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존재양식의 변화를 보였다. 금융자본주의의 발전은 자본의 축적과 순환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자본은 더이상 토지나 노동과 결합하지 않고도 순환을 통해 이윤 창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4시간시대의 탄생>> 김학선. 22쪽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분화
신군부 정권은 야간통행금지제도의 철폐를 기점으로 중고등학생에게는 교복 자율화와 두발 자유화를, 정치계와 대학교에는 사면과 복권을, 일반 국민에게는 해외여행의 자유와 아침방송, 컬러방송, 프로 스포츠 등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자율'로 누리도록 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억압과 통제 속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시간 이용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68쪽
당시 근로기준법이 존재했고, 법정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1주 48시간이었다. 그리고 노사가 합의하면 1주 6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시에 나오는 노동자는 그것과 무관하게 주당 78시간, 84시간 일해야 했다. '방세'와 '곗돈'을 내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24시간 이용의 자유와 서머타임제 등은 노동시간을 증가시킨 또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73쪽
새로운 성과주체, 1980년대 중산층
특이한 것은 당시 중산층 육성책이 노동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으로, '중산층 육성계획'은 노동부 관할로 되어 있었다.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임금이 증가하고 소득분배가 개선됨으로써 중산층 의식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중산층의 확대로 이어졌다. 77쪽
모든 길은 텔레비전으로 통한다
텔레비전의 시간성은 일상을 통해 개인의 시간에 간섭하는 것을 넘어선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외부의 사회적 시간은 개인의 시간과 관계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시간을 구성한다. 이는 각 개인이 서로 떨어진 공간에서 개별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 같은 그 일상이 실상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 동시적으로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155쪽
1980년대의 서머타임제 실시는 자유시간의 증가로 이어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출근시간은 변하지 않은 채로 퇴근시간만 한시간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181쪽
이렇게 위정자들이 휴일이 겹쳐서 쉬는 시간이 줄어든 상황과 국민의 노고를 연관시키고 국민의 노고를 위무하고자 임시공휴일을 지정한 행위는 마치 휴식이 국민의 마땅한 권리가 아니라 집권자에 의해 주어지는 시혜와 같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이렇게 대통령이 법률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통치행위로서 국민의 휴일을 결정하는 것은 시간주권을 통치자가 독점한 때문이다. 218쪽
'국풍 81', KBS 시청료 거부운동, 인질극 생중계 방송(경악했다;;) 등 낯선 이벤트들에 대한 접촉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했다.
'시간', '시공간'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근대사 살펴보기는 흥미로웠다.
저자 김학선 님의 방대한 자료수집과 일관성있는 논리전개에 놀랍기도 했다.
'시간기획', '시간정치'라는 개념은 마치 공기와 같이 보이지 않는 어떠한 틀을 망에 건져올린 것처럼 신박한 개념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약간 무섭기도 한..
내가 짜놓은 일상이라고 생각한 나의 '개인시간'은 사실 사회적 시간과 겹쳐 어떻게든 타인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980년대의 정치, 경제, 사회, 노동, 인권 등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지, 얼마만큼 달라졌는지, 아직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창비의 책들은 이렇듯 깊은 사고를 유도해줘서 인생공부, 사회공부에 많은 도움이 된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