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나날들은 가능한 한 많은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다.
우리나라와 다른 색깔의 감성, 사람, 책, 장소, 문화를 맛보고 싶다.
<60, 외국어 하기 딱 좋은 나이>의 저자 아오야마 미나미는 그런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미국 소설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을 해 온 저자가 스페인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미국 소설을 읽다 보면 스페인어가 툭툭 튀어나와 어찌 됏든 좀 배워 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계기라고 한다.

책은 16세기 초 스페인이 은광을 차지하기 위해 멕시코를 빼앗고,
이어 1846~1848년에 미국이 멕시코 영토의 거의 절반을 빼앗은 아픈 역사에서 출발한다.
인종이 섞이며 '치카노 문학'(미국 문학에서 멕시코계 미국인이 만들어 온 문학. 영어로 쓰였지만 곳곳에 스페인어가 섞여 있음)이 발달했다고 한다.

미국사회에서 영어 속에 스페인어가 섞이는 Spanglish(스팽글리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스페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저자. 멕시코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한다. 60살에. 응? 60살에? 몸 안 아파? 기력 안 떨어져? 그게 가능해?
난 30대 중반에 애 하나 키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우선 NHK 어학강좌를 통해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 저자.
요건 나랑 비슷하네.
나도 EBS 라디오 어학강좌를 통해 일본어, 영어, 중국어를 공부해 왔었다.
책은 스페인어를 배우러 가서 결국은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까지 배워온 저자의 쏠쏠한 어학여행기가 나온다.
하나의 공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 하나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는 거구나.
그거 정말 해볼만 하겠구나!
저자가 말해주는 이런저런 밥벌이 풍경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멕시코에서 만난 '뛰는 놈 위에 나는' 사람들
어학을 공부하기 위해 떠난 멕시코에서 저자는 스쳐지나가는 여러 사람들과 조우하게 된다.
은퇴 후 혹은 현업이 있는 가운데 휴가를 써서 멕시코에서 스페인어 수업을 들으러 온 사람들 이야기는 멋졌다!
교수 은퇴 후, 의사 은퇴 후, 은행장 은퇴 후 등등등.
세상에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구나.
경제적 여유가 되어,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바로 추진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할까?
물론 그들에게 젊음보다 소중한 것은 없겠지만.
내가 60이 되고, 은퇴를 하고, 갑자기 현업이 없어져 쓸쓸한 때즈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구나!
인생 여행을 다시 시작할 수 있구나!
이건 겪어보지 않아 아무것도 알 수 조차 없지만, 무언가 희미한, 희뿌연 희망, 기쁨으로 느껴졌다.
관심가져 본 적 없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역사, 부흥기, 유명 작가 등 저자는 스페인어에서 출발해 결국은 사람과 문화로 이어지는 무형의 어떤 것까지 설명해낼 줄 아는 분이었다.
김씨의 방황하는 꿈
. 차를 타고 남아메리카를 일주하는 게 꿈인 김씨. 그러나 아내가 좀처럼 마음을 움직여 주지 않아서인지 스페인어 수업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저자는 김씨의 권유로 스페인어 개인 과외를 받게 되고,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전공한 과외쌤을 만나,
스페인어로 소설과 시를 읽어 보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
적절한 시기에 나에게 필요한 적절한 사람을 만난다는 일의 중요성이 이런 것이리라.
스페인어를 배워서 스페인 감성을 내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저자의 열정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일본어를 배우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어로 읽으며 일본 작가 특유의 그 무엇을 직감으로 느껴보고자 했으니까.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의 매력은 아래와 같은 것일 게다.
피터와 루이스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이유
. 두 사람 모두 미국인이었는데 피터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루이스는 텍사스의 샌안토니오에서 왔다. 피터는 은행원이었는데 지금은 퇴직했고 대학에서 가끔 경영학을 가르친다고 했다. 루이스는 비뇨기과 개업의였다.
오전에 스페인어 수업을 받고 오후에 관광을 하는 일정은 나와 같았다. 230쪽
세상엔 대단한 삶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나는 거대한 종이 인형을 스페인어로 'mono'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데 군데 나오는 스페인어를 내 입으로 따라해가며
저자가 밟았을 그 과정을 나도 간략하게나마 따라 밟아 보았다.
스페인어 수업 시간에 피터가 작문한 예시에 난 웃음이 빵 터졌다.
ser 동사를 활용해 작문한 문장이 아래다.
Donald Trump no es abierto(= Donald Trump is not open.)
너무 웃기지 않은가?
이 책에 나오는 디에고 리베라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 싶다.
낯선 문학 작품이나 예술 작품의 작가들을 알게 된 것도 승산이다.
책 맨 뒷부분에는 이 책에 나오는 스페인어 단어와 그 뜻이 나온다.
책을 읽다 보니 어설프긴해도 스페인어 단어 정도는 대충 발음할 수 있을 것 같다.
신기한 게 하나의 외국어를 배워보면 다른 외국어의 규칙이랄까 특성이 눈에 빨리 익는 장점이 있다.
저자의 홈스테이 수기, 어학학습기, 여행기를 보니,
60이 되었을 때 건강하고 행복하고 경제적 풍요로움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나이에 충분히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나를 감싸고 있으면 좋겠다.
저자에게 스페인어가 60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킨 그 무엇이었다면,
나의 60에는 어떤 것이 나에게 그런 강한 이끌림을 안겨줄 수 있을까?
삶은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게 아니구나.
삶, 그것 참 재미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