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
천자오루 지음, 강영희 옮김 / 사계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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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타인의 세상을 경험하고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게 된다지만,

천자오루 님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읽기 전까지는, 그 타인의 정의가 좁았던 것이 확실하다.

부모의 인문학 세계가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된다고 한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크기만큼

자녀가 볼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내가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보여줄 수 있는 세계의 크기를 넓히기 위해 나는 오늘도 책을 조금씩 읽어내려간다.

비록 내가 받지 못했어도,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타이완의 천자오루님은 타이완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이 책은 장애인의 사랑과 성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과 성이 어떻게 이해되고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고 접해본 적 없는 내용이라 조용히 계속 읽어내려갔다.

 

깊은 잠에 빠진 아이

. (즐거운 신 부모) 왜 나는 좀 더 즐거울 수 없는가? 나를 대신해 바닥을 닦아줄 사람이 없어 그것이 오롯이 내 몫이 된다 해도 말이다! 나는 왜 이리도 억울해하는가? 바닥 닦는 즐거움을 만끽할 순 없단 말인가? 33쪽.

=> 고양이울음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아들 위위를 키우는 엄마 황리야 님이 아들 뒷바라지를 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을 때 문득 든 생각.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의 마음과 입장은 얼마나 힘들고 난처할까?

사회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아이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혼자서 고군분투해야 할까?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어쩌면 엄마인 자신이 살기 위해 더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했을 위위의 어머니가 존경스러웠다.

위위가 사람들의 옷을 잡아당기는 등 돌발행동을 해도 경쾌하고 의연하게 사람들에게 아이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들에, 위위는 정말 행복한 아이구나 싶었다.

아이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위위의 엄마는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쉽지 않았을 텐데... ...

위위의 경우는 아버지가 의사이고, 어머니가 성교육에 특화된 강의전문가라, 경제적으로 풍족하기에 그나마 다행인 듯 하나, 그렇지 못한 경우의 현실이란... ...

사랑할 권리

부모가 지적장애인의 출산과 양육의 권리를 대신 결정할 수 있을까?

- 방학을 이용해 후환을 미리 없애고자 지적장애인 딸의 자궁을 적출했다는 이야기

- 1933년 독일 국회의 <유전질환 자녀 출산 금지법> 통과

- 나치의 장애인, 범죄자, 건강한 유대인 등 '가치 없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역사

일반적으로라면 들일 일이 없는 사실들이 나왔다. 충격적인 사실에 당황스러워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예, 아니오로 시원하게 답변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

장애인의 의사결정권, 생존권에 관한 논쟁은 어려운 문제다.

한 페이지씩 읽어내려가는데,

자꾸 마음이 아파지려하는 거다.

그래서 힘들었다.

딸 아이 하나 키우는 것도 힘든데,

와- 진짜 힘든데, 란 말 자주 한다.

그런데 '내 몸에 맞는 엄마 되기'란 제목의 글 속에서는 내가 상상도 못한 육아의 광경이 펼쳐진다.

아이 옷을 이빨로 물어 보행기에서 아이를 꺼내는 장애를 가진 엄마,

자신의 휠체어와 비슷한 높이에 있는 옷 서랍에 이불을 폭신하게 깔아 아기 침대로 사용하는 엄마, 아이가 창가로 가거나 놀이터에서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휠체어 위에 앉아있으므로 아이에게 당장 달려가 구출해낼 수 없어 발만 동동구르는 엄마.

나와 또 다른 엄마의 육아 이야기를 읽으며,

내 눈으로 보고 있던 세상이 실로 좁디 좁았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냥 육아도 힘든데,

자신에게 맞는 육아법을 하나하나 개발해서 부딪쳐 나가야하는 엄마들, 힘들겠다...

그리고 육아를 하면 반드시 오게 될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함, 우울감, 좌절감을 똑같이 겪는 것에 위로 받았다. 나만 힘든게 아니었구나. 우리 다 힘들구나~

 

 

내 몸에 맞는 엄마 되기(p.209)

아이를 낳고 아기띠로 아이를 매고 가거나 유모차를 끌고 가면서, 내 동네와 주변에 얼마나 유모차를 끌기에, 아이를 안고 걸어가기에 장애가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아마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지 싶다.

계단만 있고 적당한 비탈길이 없어 안그래도 아픈 허리와 무릎, 어깨로 "영차-!" 하며 무거운 유모차를 들어올려야 하고,

계단 마저 없으면 유모차 있는 상황에서는

절대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장소가 예상외로 많았다!

하물며 본인의 휠체어를 끌고 아이까지 데려간다는 것은, 현재 사회 인프라 속에서는 엄마 가 웬간히 강하고 또 강해져서 철심같이 강해지지 않으면 참 어려운 상황이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건 개인의 상황일 수 있지만 (공해 등으로 사회환경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개인을 키우고 신경써주는 건 세금 내는 우리들이 응당 누려야 하는 사회여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개인의 상황이라고만 치부하고,

애써 무시하고 모른척 하려던 건 아닌가?

특히, 장애인의 성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복지인가 모욕인가라는 저자의 질문은 너무 어려운 부분이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처음 펼칠 땐 낯선 땅 타이완의 저자가 쓴 이야기이고, 주제가 무거운 만큼, 겸허하게 읽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뭔가 한 줄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어내야만 할 것 같은 약간의 압박감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에 눈 뜨게 해준 이 책과 저자, 사계절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내가 애써 보려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그냥 넘어갔을 세상이기 때문이다.

논리정연하게 따져들어가는 지루한 논문 형식의 책도 아니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아픈 시선으로만 보는 책도 아니었으며, 건강한 이들에게 부담을 주기 위한 책은 더더욱 아니었다. 저자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이라 대화를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그들의 속마음, 강한 열정, 불만, 욕구, 희망, 행복에 관한 책이었고, 내 주변에도 사는 이웃, 다른 사람이 매일 겪는 흔한 일상 이야기였다.

다만 그렇게 평평한 시선으로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다 보면 생각에 변화가 생기게 될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생각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낳겠지?

저자의 마지막 말이 인상 깊다.

신체는 인류가 자아를 장악하는 도구이자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단지 육신이 존재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세계로 진입하는 중요한 통로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하고, 사회의 명과 암을 이해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과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모든 사람의 성이 보장받거나 해방될 필요없이 누구나 다 유일무이한 육체를 통해 사랑과 욕망의 한가운데서 속박이나 족쇄, 죄책감이 아니라 진실한 쾌락을 얻었으면 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모든 장애인에게 돌려주자. 이는 인도주의적인 동정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펼쳐 보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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