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용준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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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곱씹어 읽어보면 참으로 신비로운 문장이다.

시간은 그곳에 있되, 흘러가버리니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책을 펴면 으레 있는 저자에 관한 소개가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아름답고 정제된 글을 쓴 분은 어떤 분이실까?

얼핏 읽으면 산문체의 글인데,

한 편 한 편이 시와 같다.

낭독해서 읽어보면 그 깊은 뜻이 가슴에 더욱 와닿는 듯하다.

잠시 행복해 진다.

저자의 사랑에 관한 단상이 에세이처럼 흘러나오기도 하고,

짧은 문장들로 이쁜 운율이 느껴지는 시가 들려오기도 하고,

피아노 연주 음악을 배경삼아

글을 읽는데,

괜히 이 밤에 감성 폭발했다.

 

"사는 일은 슬프고, 쓸쓸하고,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정말 공감되지 않는가!

사는 것이 녹녹치 않다.

무슨 깨달음을 주시려고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저자 권용준 님은 그 시련들에 다 의미있음을, 견뎌낼 만한 가치 있음을,

훗날 알게될 거라고 계속 속삭인다.

마음이 따뜻해 진다. 자꾸만 행복해 진다.

 

'봄을 기다리며'.

모든 글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아름다웠지만,

봄을 기다리며, 라는 글을 소리내어 낭독해 보니

내 마음이 이러함을 깨우치게 되었다.

아직 보이지 않아 그립고 애틋한 봄은

그 시간이 되면 반드시 와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 복잡하고 서글프고 허망하고 슬픈 시간들을 마주하며 봄을 기다리자.

나 보다 분명 연배가 있으실 권용준 님은,

"야, 인생 힘들지? 힘 좀 내봐!"하는 응원의 말을

감미롭게 들려주셔서 마음이 혹하게 된다.

"까짓것, 정말 한 번 견뎌봐?"하면서 말이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게 느껴졌는데,

뜻하지 않게 참으로 귀한 언어들을 접하게 되어 감사하다.

 

'혼자여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외로움과의 싸움.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나면 당연하게 느끼게 되는 숙명의 감정, 외로움.

당연한 걸 그렇게 부정하고 애써 떨쳐버리려 할까, 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일 인간이 외로움이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상이 훨씬 평화롭지 않을까?

아니면 외로움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더 외로운 존재가 될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인간이 서로를 보듬을 수 있을까?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존재의 업이, 삶의 굴레가 참으로 기구한 것 같다.

외롭게 태어나서는,

본인은 애쓰겠지만 외롭게 살다 외롭게 간다. 혼자 간다.

죽음의 문턱 앞에선 그 누구도 나와 함께 가줄 수 없다.

심지어 가족이라도.

그러니 혼자일 때의 내 삶도, 같이일 때의 내 삶도 사랑스럽게 꼬옥- 보듬어 안아줘야지.

꼬옥- 안아줘야지.

 

'인도의 가난과 거짓에 대하여'.

저자 권용준 님의 인도 여행 일화가 나온다.

신도 어찌할 수 없다는 인도의 가난.

불가촉천민은 짐승과 비슷하게 산다.

화장실이 없어 길거리에서 대변을 본다.

수치심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가난에 대한 수치심...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 감정 중 하나가 수치심 쯤 되지 싶다.

그러나 그 수치심 조차 허영일 수 있는 나와 같은 또다른 사피엔스가 있다니.

인도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다소 충격으로 다가온 슬픈 생에 관한 이야기여서

한동안 책을 가만히 펴들고 있었다.

감사하자.

내가 이렇게 태어남에, 이곳에 태어남에, 이렇게 살고 있음에 감사하자.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글로 마무리하는 책.

시간은 우리가 생명체를 떠나는 순간 신기루가 되어,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종족의 생존과 번영, 문명의 강한 테두리를 위하여 형성된 가상의 개념인 것이다.

권용준 님의 많은 글 중에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글이 책의 제목이 된 연유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았다.

시간을 쫓아 살고 있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인간의 본질을 깨달으시오, 하는 듯한 강한 힘을 가진 글이라 아마도 맨 마지막에 나왔지 싶다.

인간이 그토록 쫓고 있는 것이 실은 인간이 상상해낸 허상이라는 것.

참 재미있는 존재이지 않은가?

그냥 인생이 재미있다. 그치?

저자와 대화하는 듯한 편안한 문체가

철학 사유에 이르게 하는 책이라 나에게 깊게 다가왔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궁구하고, 나를 어루만지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 소중하고 한시가 아까운 내 시간과 내 딸 뽁이의 시간을 지켜내야 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긴다.

감사합니다.

내가 나임에.

내가 내 딸 뽁이를 마주할 수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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