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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법칙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용감한 딸입니다
클레어 비드웰 스미스 지음, 최하나 옮김 / 새움 / 2014년 1월
평점 :
누구든 부모님의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부모님의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이별을 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언젠가는 엄마가 돌아가실 것을 알지만, 한편으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늘 부인하는 평범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사랑하는 사랑의 죽음만큼 더 힘 빠지는 일이 있을까. 아주 예전, 한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어떤 남자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라디오 DJ는, 사랑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실연의 아픔을 잊지 못하고 계속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남자의 사연을 소개했다. 맘 편히 밖을 나설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늘 고통 속에 살며 전 여자친구를 잊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남자.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면 이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의 사연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DJ의 반응이었다. 여느 DJ처럼 ‘지나간 사랑을 잊고 빨리 새출발을 하시라’며 독려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도 충분히 잘 견디고 있다고, 3년이든 몇 년이든 충분히 슬퍼하라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DJ의 반응은 몇 년이 지나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게 된 지금에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어렴풋’이 아닌 ‘뚜렷이’ 상실과 슬픔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살다보니 말 그대로 ‘누구의 위로도 소용없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위로도, 이론도, 충고도 필요 없는 그저 슬픔만이 존재하는 시간. 나는 그동안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기계발서를 들춰 왔던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그때의 나를 지탱해 주었던 것은 그저 나 자신이었을 뿐이었다. 마치 구르는 두루마리 휴지처럼, 그저 풀리게 두었다면 자연스레 치유되었을 슬픔이었고 상처들이었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슬픔을 이겨내라고, 또 힘내라고 강요하지 않으니까. 저자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클레어 비드웰 스미스의 위로 방식은 그저 그녀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고백’이었다. 부모님의 연달은 암 선고와 죽음, 그리고 방황했던 자신의 모습. 그렇지만 그녀가 슬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메시지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 슬픔은 타인의 위로만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스스로 직면한 후에 당당히 걸어 나와야만 완전한 ‘상실의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량이 좀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앉은 자리에서 읽다보니 어느새 다 읽어버린 책이었다. 그 모든 상실과 아픔을 가감 없이 적어준 저자에게. 참 용감한, 그리고 솔직한 책이다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