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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도시
김휘 지음 / 새움 / 2013년 11월
평점 :
문체의 시대에서 서사의 시대로. 시대의 변화에 꼭 걸맞은 경계문학의 탄생.
기억 조작이라는 무거운 주제이지만 결코 허무맹랑한 비현실적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데올로기 교육을 통한 정신개조가 결코 없었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집단에 의해 머릿속에 심어진 일종의 믿음. 우리는 뉴스를 통해 그런 사람들을 종종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기도 그들 중 한 명일지 모른다.
처음에 표지만 보고, 제목이 ‘해마도시’라고 해서 해양 생물 해마를 말하는 줄 알았으나, 결코 그런 귀여운 해마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설 속의 해마센터는 ‘해마시술’이라는 것을 진행하는데, 이 회사의 일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행복한 기억을 내 기억으로 머릿속에 집어넣는다거나, 아니면 돈을 받고 자신의 행복한 기억을 파는 것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잊고 싶은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아직까지 이러한 시술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는 없지만,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가 근미래에 마주할 현실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인공 마윤수는 기억을 조작하는 해마센터의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던 도중,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어릴 적을 떠올린다. 고아로 자랐지만, 상담을 온 고객에게 자신을 꼭 닮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고, 자신이 자랐던 고아원을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뜻밖에 그곳에 자신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자신의 기억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고, 원래 자신의 기억을 되찾게 된 마윤수는 몰래 해마센터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해마센터의 꼭대기층으로 잠입한다.
작가 김휘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이미 2007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바 있다. 무엇보다 기억 조작이라는 독특한 소재, 빠른 호흡, 흡입력 있는 구성으로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다. 영화로 치면 ‘토탈 리콜’이나 ‘본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이제 문체의 시대에서 서사의 시대로 간다고들 하는데, 꼭 걸맞은 작품이다. 치밀한 구성이야말로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