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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 하버드대 마틴 푸크너의 인류 문화 오디세이
마틴 푸크너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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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소프트파워' 제고를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주목받으면서

문화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려는 각 민족, 각 나라의 갈등 역시

첨예해지고 있다.


문제는 문화가 과연 자산처럼 저작권과 소유권을 주장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고유해보이는 문화일지라도 그 기원을 따라가다보면

다른 문화와의 무수한 접목이 있었다는 것이 당연한데

문화를 (막대한 부가가치를 가진)하나의 자원으로 인식하는 관점이

퍼지면서 점점 '원조'와 '고유성'을 따지며 타 문화를 폄훼하거나

자신들의 문화만을 추켜세우는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그 어떤 문화도 고립된 상태에서 존속할 수는 없기에 문화에

순혈주의란 존재할 수 없다.


문화에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관념은 자신들의 문화가 지나온 과정에서

무수한 융합과 차용의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양분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런 문화는 빈약해질 뿐이다.



저자는 문화를 대하는 요즘의 이런 관점들에 일침을 가하면서

문화가 전파되고 공유되며 재발견되어 온 역사를 15가지 이야기로 소개한다.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왕비 이야기에서는 누가 문화 '원조'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문화 바탕을 통해 무엇을 이룩해냈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플라톤의 이야기에서는 때로는 모방이 문화 보존과 전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소카왕 이야기에서는 타 문화를 접했을 때 수반되는 파괴와 재창조의 이야기를,

폼페이 이야기에서는 타 문화를 받아들이는 행위에서 승패의 관점이 얼마나 편협한가를

이야기 한다.


15가지 이야기 중 들어본 이야기도 있고 생소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생소한 이야기의 경우 저자가 이 이야기를 선정한 이유와 그 안에 담긴

메세지가 쉽게 와닿지 않아 두세번을 읽어야 하는 경우도 적지않았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의 나이지리아, 유럽 중동 일본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저자가 주제로 삼은 '인류문화'의

거대한 스케일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그 앞에서 문화의 독점을 논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도 다시금 깨달았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요즘 문화강국을 표방하며 각국이 내세우고

갈등하는 문화라는 것이 결국 오락.음식,옷 등의 소비성 문화들 위주라는 것이다.


문화란 그 문화요소들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가치관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며, 문화를 계승한다는 것은 각 세대가 문화의 매개자로서

이런 문화의 정수精髓를 보존하고 후대에 전달한다는 것일텐데 요즘 유행처럼

너도나도 내세우는 '문화컨텐츠'라는 게 결국 돈이 되는 것들 뿐이지 않은가 싶다.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문화는 그것을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경주되지 않으면 너무도 쉽게 잊혀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문화의 우열, 경제성만을 따지지 말고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문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다양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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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과 국경 - 청-조선의 영토 인식과 경계 형성
김선민 지음, 최대명 옮김 / 사계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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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제국과 조선이 인삼을 놓고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다는

생경한 이야기에 흥미가 돋아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생각해보면 인삼에게 국경이 있을 리가 없으므로 조선땅이

인삼의 산지라면 그에 인접한 지역에서도 인삼이 얼마든지

날 수 있는 게 당연한데, 인삼이 아주 옛날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특산품이며 한국이야말로 인삼의 종주국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익숙해진 탓에 그동안 한반도의 북쪽 국경인 압록강과 두만강이 곧

인삼 자생지의 북방한계선인 것처럼 생각해오던 나의 어리석음도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인삼은 오랫동안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

자생해왔으며 조선이 그랬듯이 그 일대를 강역으로 삼은

건주여진에게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수출효자상품이었다.

때문에 자연스레 조선과 여진족(정확히는 건주여진) 사이에서는

인삼의 확보를 위한 첨예한 갈등이 계속되었는데 이 갈등의 양상은

여진과 조선의 국력 변화에 따라 달라졌으며 저자는 이 무게추의 이동을

심도있게 추적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청의 국력 성쇠에 따른 만주정책의 변천과정을

분석하고 청과 조선의 갈등 해소 방식을 통해 조공관계라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질서의 실질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17세기 이후

시작된 유럽제국과의 마찰과정에서 영토와 주권에 관한 관념 및 의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소개한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한데

백두산에 대한 만주족과 조선의 인식 변화와 백두산 정계비 이야기,

청나라로 떠나는 조공 일행의 경제활동과 그로인한 마찰 이야기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대소사가 생동감있게

다가오며 또 잊을만 하면 불타오르는 '간도 땅'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소개된다.

국가간의 외교와 경제 등 거시적 이야기 뿐 아니라 인삼이라는

보화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까지 다채롭게 다룬 저자의 노고가

느껴지는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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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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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흥미를 돋운다.

식민지배의 어두운 색채를 머금고 있는 '경성'이라는 단어와

유한계급의 발랄한 레저활동의 대명사인 '맛집'의 병렬이라니.

채만식의 <태평천하>를 떠올리며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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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실제로 일제시대에 경성에서 가장 유명했던

고급 음식점들에 대한 정보를 담고있다.

당시 판매되던 음식들의 종류와 가격뿐 아니라

식당 내부 인테리어와 당시의 식문화 등도 두루 소개하고 있는데

신문기사나 공신력있는 기관을 출처로 하는 정보지를 샅샅히

살피고 부족한 부분은 동시대 일본의 자료까지 참고하여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복원을 시도한 저자의 꼼꼼함이 돋보인다.

덕분에 식민지시대 경성 상류층의 삶을 엿볼 수 있으며

지금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당시의 영업전략 및 상술을

보고 있으면 식민지시대가 현재와 정말 가까운 시기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또 맛집이 위치했던 백화점, 호텔 등 근대를 상징한다 할 수 있는

문물들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운데 한복을 입고 백화점과 호텔을

활보하던 조상님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는 듯 했다.

책의 또다른 재미는 저자가 소개하는 식민지시대의

통속극 소설의 토막들이다.


당시 신문에 연재됐던 소설들 중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음식점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들을 모아 함께 소개하는 방식은 자칫 따분한

정보의 나열이 될 수 있는 책의 구성에 몰입감과 재미를 살려주는

요소였고 덕분에 반복되는 구성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또 설렁탕의 연원에 대한 통설에 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실제로

저자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고, 면 요리의 진실(?) 부분 역시

기존에 파편적으로 알려진 정보들 ( 조선시대 밀농사의 비중과

미군의 밀 원조로 인한 밀값 폭락 등)이 부합되며 하나의 일관성을

갖추게 되는 부분이라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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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경성의 나날을 보내던 다양한 계층의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볼 수 있게 해주는 즐거운 독서 시간이었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경성의 맛집들이 우리 문화사에서 갖는 의의가 무엇인가

에 대한 궁금함이 남는다는 것이다.

'요정'이라 불리는 일본요리점이 이 후 등장한 조선요리점의

모태가 되었다거나 책의 마지막장에 소개된 경성의 중화요리 맛집

<아서원>의 경우 아서원에서 일하던 이병과,추본경 등의 요리사들이

이후 한국 중화요리계의 대표적인 요리사가 되었다는 설명이 있긴하지만

지나가는 식의 언급일 뿐인데, 당시 경성의 상류층이 향유하던

고급식문화가 우리 식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전개가

깊게 이루어졌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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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유목제국사 - 기원전 209~216 유목제국사
정재훈 지음 / 사계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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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제국 진-한과의 압도적인 국력차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대적한 흉노의 역사는 

한마디로 '활로를 찾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역사였다.


한정된 목초지를 두고 쟁탈이 일어나기 일쑤인 유목민족의 

특성상 본래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를 이루기 어려웠던 흉노는 

이웃한 중원에 강력한 통일제국이 들어서자 곧바로 묵특선우를 

중심으로 최초의 중앙집권적 유목제국을 세우는데 성공하고 

한제국의 국내정세에 따라 자신들의 비교우위를 최대한 활용해 

압도적인 국력차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로부터 유리한 지위를 차지해 

제국의 영위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 후 한제국의 국력을 기울인 대대적인 북벌에 막대한 

타격을 입지만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끊임없이 재기를 위해 

노력하며 한제국의 압박에도 장장 400여년을 존속하는데 

성공해 역사에 자신들의 이름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흉노인들의 역사는 이 후 계속될 유목민족들의 역사의 전형이 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한정된 자원과 적은 인구수라는 불리함에도 자신들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알았던 흉노의 치열한 투쟁의 역사는 

이 후에도 유목민족들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흉노가 

극복하지 못했던 한계와 흉노가 저질렀던 과오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각 유목민족들의 역사가 달라졌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교양으로 역사를 찾는 나에게 '흉노'는 지금까지 존재감은 강하지만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베일에 가려진 존재였다. 


때문에 정재훈교수의 [흉노유목제국사] 발간이 더없이 반가웠고

덕분에 흉노의 역사와 그들의 실재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중국 중심, 정주문명 중심의 역사가 아닌 그들과 동시대를 

함께 했던 유목민족의 역사를 연 흉노에 관한 훌륭한 통사이자 필독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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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년 전 중국의 일상을 거닐다
카키누마 요헤이 지음, 이원천 옮김 / 사계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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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방송에서 젊은 시절 남편을 여의고 평생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며 건사한 어느 할머니의 힘겨운 삶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 제작진의 질문에 대한 할머니의 답변이

엉뚱하면서도 인상깊었는데, 할머니는 바로 '세탁기'를 집에 들여놓았던 일이

가장 행복했다면서 '죽은 남편이 살아돌아온 것보다 기뻤다'라는 구수한 과장으로 소감을 표현했었다.

아무리그래도 어떻게 죽은 남편이 살아돌아온 것보다 기뻤다고 할 수가 있나라는 생각도 잠시, 이어지는 할머니의 일상을 들어보니 정말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랴 아이들 돌보랴 몸이 두개라도 모자란 하루를

보내고나면, 마지막으로 잠을 쪼개어 해야 하는 것이 빨래였는데 피곤도

피곤이지만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손이 어는 고통까지 견디어야 했으니

할머니는 세탁기가 오죽이나 고마우셨을까.

이처럼 세탁기의 보편화라는 차이 하나로도 그 삶을 이해하는데 부연설명이

필요하다면, 전기도 가스도, 인력외엔 마땅한 노동력도 없던 시절의 선조들의 삶을 이해하려면 얼마나 많은 부연설명들이 필요할까?

거기에 인간의 평등권도 종교의 자유도 과학적 사고관도 없던 시절의

선조들의 삶을 말이다.

저자는 이처럼 소수의 정치집단이 주도한 정쟁이 아닌 일반민중들의 삶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을 '일상사'라고 한다고 한다.

영웅이 새로운 시대를 열지만 또한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는 말처럼 역사는

일방이 아니라 양방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천해가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역사는

너무 상위집단 일방의 역사만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소개되어온 경향이 크며 이런 반쪽짜리 역사의 남은 절반은 그릇된 '낭만'으로 채워져 결국 왜곡된 역사관을 낳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를 분석하는 것이 역사학의 의의라면, 그 분석대상인 과거가

편향되어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말에도 깊은 동감이 간다.

<이천년 전 중국의 일상을 거닐다>는 이처럼 중국 고대의 '일상사'를 보여주어

그 시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입체적으로 중국 고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일반 민중들의 경제활동과 여가활동, 연애와 결혼, 성생활과 육아 등 말 그대로

일상의 '디테일'한 부분들에 대한 설명은 관직제도,조세,전쟁 등 정치사적 주제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그 시대의 새로운 일면을 볼 수 있게 해주며그 안에서 차이점

못지 않게 많은 현재와의 닮은 점들도 찾을 수 있다.

진한시대 중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겐 시대배경에 대한 훌륭한

자료집으로 추천할만 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인의 24시간>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어

이 책을 지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다룬 일상사도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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