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년 전 중국의 일상을 거닐다
카키누마 요헤이 지음, 이원천 옮김 / 사계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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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방송에서 젊은 시절 남편을 여의고 평생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며 건사한 어느 할머니의 힘겨운 삶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 제작진의 질문에 대한 할머니의 답변이

엉뚱하면서도 인상깊었는데, 할머니는 바로 '세탁기'를 집에 들여놓았던 일이

가장 행복했다면서 '죽은 남편이 살아돌아온 것보다 기뻤다'라는 구수한 과장으로 소감을 표현했었다.

아무리그래도 어떻게 죽은 남편이 살아돌아온 것보다 기뻤다고 할 수가 있나라는 생각도 잠시, 이어지는 할머니의 일상을 들어보니 정말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랴 아이들 돌보랴 몸이 두개라도 모자란 하루를

보내고나면, 마지막으로 잠을 쪼개어 해야 하는 것이 빨래였는데 피곤도

피곤이지만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손이 어는 고통까지 견디어야 했으니

할머니는 세탁기가 오죽이나 고마우셨을까.

이처럼 세탁기의 보편화라는 차이 하나로도 그 삶을 이해하는데 부연설명이

필요하다면, 전기도 가스도, 인력외엔 마땅한 노동력도 없던 시절의 선조들의 삶을 이해하려면 얼마나 많은 부연설명들이 필요할까?

거기에 인간의 평등권도 종교의 자유도 과학적 사고관도 없던 시절의

선조들의 삶을 말이다.

저자는 이처럼 소수의 정치집단이 주도한 정쟁이 아닌 일반민중들의 삶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을 '일상사'라고 한다고 한다.

영웅이 새로운 시대를 열지만 또한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는 말처럼 역사는

일방이 아니라 양방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천해가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역사는

너무 상위집단 일방의 역사만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소개되어온 경향이 크며 이런 반쪽짜리 역사의 남은 절반은 그릇된 '낭만'으로 채워져 결국 왜곡된 역사관을 낳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를 분석하는 것이 역사학의 의의라면, 그 분석대상인 과거가

편향되어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말에도 깊은 동감이 간다.

<이천년 전 중국의 일상을 거닐다>는 이처럼 중국 고대의 '일상사'를 보여주어

그 시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입체적으로 중국 고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일반 민중들의 경제활동과 여가활동, 연애와 결혼, 성생활과 육아 등 말 그대로

일상의 '디테일'한 부분들에 대한 설명은 관직제도,조세,전쟁 등 정치사적 주제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그 시대의 새로운 일면을 볼 수 있게 해주며그 안에서 차이점

못지 않게 많은 현재와의 닮은 점들도 찾을 수 있다.

진한시대 중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겐 시대배경에 대한 훌륭한

자료집으로 추천할만 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인의 24시간>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어

이 책을 지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다룬 일상사도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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