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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과 국경 - 청-조선의 영토 인식과 경계 형성
김선민 지음, 최대명 옮김 / 사계절 / 2023년 11월
평점 :
청제국과 조선이 인삼을 놓고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다는
생경한 이야기에 흥미가 돋아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생각해보면 인삼에게 국경이 있을 리가 없으므로 조선땅이
인삼의 산지라면 그에 인접한 지역에서도 인삼이 얼마든지
날 수 있는 게 당연한데, 인삼이 아주 옛날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특산품이며 한국이야말로 인삼의 종주국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익숙해진 탓에 그동안 한반도의 북쪽 국경인 압록강과 두만강이 곧
인삼 자생지의 북방한계선인 것처럼 생각해오던 나의 어리석음도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인삼은 오랫동안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
자생해왔으며 조선이 그랬듯이 그 일대를 강역으로 삼은
건주여진에게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수출효자상품이었다.
때문에 자연스레 조선과 여진족(정확히는 건주여진) 사이에서는
인삼의 확보를 위한 첨예한 갈등이 계속되었는데 이 갈등의 양상은
여진과 조선의 국력 변화에 따라 달라졌으며 저자는 이 무게추의 이동을
심도있게 추적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청의 국력 성쇠에 따른 만주정책의 변천과정을
분석하고 청과 조선의 갈등 해소 방식을 통해 조공관계라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질서의 실질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17세기 이후
시작된 유럽제국과의 마찰과정에서 영토와 주권에 관한 관념 및 의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소개한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한데
백두산에 대한 만주족과 조선의 인식 변화와 백두산 정계비 이야기,
청나라로 떠나는 조공 일행의 경제활동과 그로인한 마찰 이야기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대소사가 생동감있게
다가오며 또 잊을만 하면 불타오르는 '간도 땅'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소개된다.
국가간의 외교와 경제 등 거시적 이야기 뿐 아니라 인삼이라는
보화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까지 다채롭게 다룬 저자의 노고가
느껴지는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