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 - 티라노사우루스부터 북극곰까지 인류와 공생한 동물들의 이야기,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사이먼 반즈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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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처분소득을 신경쓰지 않고 소비하는 사람에게 '절망'은 예정된 결말이다.


신용이나 차환으로 잠시 지연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청산되지 않은

청구서의 추격은 그를 파산에 몰아넣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당연한 귀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경제사범 정도밖에 없을 것이지만

희한하게도 가처분소득을 '지구의 자원'으로 바꾸는 순간 우리는 모두

잠재적 경제사범이 된다.

물론 지구의 자원이 결코 무한하지 않으며 사실 이미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경고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1960년대 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지하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 기상이변 등 인류라는 종의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협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동참여부는 몰라도 그 당위성 자체에는 이견이 없는 정도까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성공했지만,

지하자원 못지 않게 중요한 천연자원인 '동물'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감성적 차원에 머무르고 있어 동물의 멸종이 지하자원의 고갈보다 인류에게 훨씬 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 역시 무시당하고 있다.

이런 몰이해와 몰지각 아래 파괴되고 있는 동물의 생태계는 결국 가장 막대한

금액의 청구서가 되어 돌아올 것이며 그때 인류에게 예정된 결말은 파산이 아닌

절멸이 될 것이다.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는 지금까지 동물을 언제든 손쉽게 소비할 수 있는 공유자원으로 여겨온 인간의 근시안적 행태를 고발하고 이러한 관념이 가져온

현재의 위기를 경고하는 섬뜩한 보고서이다.

농작물의 재배면적을 넓히기 위해 무심하게 갈아엎는 꽃들로인해 벌의 생존이

위협받은 결과 전 세계 작물의 1/3 가량이 열매를 맺기 어려워져 벌들의

수분(受粉)활동을 대신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고 있으며, 이렇게 어렵게

재배하는 농작물을 보호 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살포한 살충제의 독극물이

또 다시 벌을 포함한 화분매개곤충들에게 위협을 가해 수분활동을 더 줄이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또 무한해 보이는 바다자원을 무분별하게 남획한 결과 수많은 어류들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양식은 다시 양식장

물고기의 먹이를 구하기 위한 작은 물고기 남획을 조장해 바다생물 먹이사슬

전체의 붕괴를 야기하고 결국 많은 어류들의 멸종을 가속화하고 있다.

(맛좋고 값이 나가는 연어 500g을 얻기 위해서는 2kg의 작은 물고기가 필요하다)

이처럼 먹이사슬로 얽혀있는 동물의 생태계는 그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와 같아서

일부의 파괴가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지금까지 인간은 수많은 동물의 생사여탈을 인간 자신의 편익에 따라 결정지어왔고 그 결과 인간이 직접 관여하지 않은 동물들도 멸종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그 멸종의 길을 마지막으로 걷는 종은 결국 붕괴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군림하고 있는 인간일 것이고 인간이 마침내 그 길을 걸을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시급한 동물종의 보호에 대한 노력이 즉각적이고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인간이 비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몇 종을 정해 개체수를 늘리고 관리하는 방법은 임시방편일 뿐 결국 그 동물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서식지)을 조성해주어야만 지속가능성을 얻을 수 있지만

매년 증가하는 인구수로 인해 오히려 남아있는 서식지도 사라져가는 상황이다.

거기다 고릴라 연구의 선구자 다이앤 포시의 비극적 죽음에서 볼 수 있듯

그나마 서식지가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 빈곤국의 경우 당장의 생계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천연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동물자원의 고갈이라는 문제점에 대해 인지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이제 동물들에 대한 종래의 관념이 어떻든 현재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며 그 어떤 사나운 발톱과 육중한 몸집, 강한 턱을 가진 동물도

인간의 마음먹기에 따라 그 종 전체를 보존할 수도 절멸시킬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며 이미 인간이 부지불식간에 멸종시킨 많은 동물 종들을

기억하고 남아있는 동물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미 행동하고 있는 많은 보호단체와 함께 남아있는 서식지의

보존과 복구에 관심을 갖고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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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에 등장하는 동물들 중에는 분명 독자에게

친숙하거나 특별히 관심을 끄는 동물도 있을 것이고 생소하고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하는 동물도 있지만 각 동물들이 지면에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현재 그 동물들이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있는 별인 지구의 생태계를 이루는 이 동물들은 모두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가치를 가진 소중한 존재라는 저자의 생각이 반영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어 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책의 메세지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전혀 없지만 책을 읽는 내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지금까지 인간이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고 주장해왔다면

이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라는 원 계명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별하기란 정말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다.


우선 나부터 실천을 위한 첫 걸음을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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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진 리더들의 전쟁사 - 고민하는 리더를 위한
존 M. 제닝스 외 지음, 곽지원 옮김 / 레드리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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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을 성립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하마르티아'를

거론했다.


하마르티아는 '비극을 일으키는 주인공의 성격적 결함이나 과오'를 뜻하는 말로,

햄릿의 우유부단함이나 오셀로의 열등감 처럼 비극 속의 주인공들은 이 하마르티아에 이끌려 늘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 속에 파멸을 맞이한다.


그러나 파멸 앞에 읊조리는 단말마의 참회가 섬뜩한 것은, 그들의 하마르티아가 

결국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마르티아라는 망령은 자신의 소임을 다 한 뒤 또다른 희생양을 찾아

배회하고 있을 뿐이며 결국 비극의 주인공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인생을 비극이라 비유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하마르티아의 불멸성 때문이지

않을까.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의 어리석음에 대한 지독한 농담인 이 

하마르티아가 우리 각자의 주변을 늘 멤돌며 우리 삶을 '비극'적 결말로 이끌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 [삐뚤어진 리더들의 전쟁사]는 하마르티아에 이끌려 

파멸을 맞이한 인물들의 사례집이라 할 수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보이는 공감능력 결여.과대망상.잔혹함.교만함.나태함.

비겁함.우유부단함 등의 성격적 결함은 결국 그들의 삶을 파멸시키며 실패만을 

유산으로 남기게 만들었다.


허나 재미있는 점은 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늘 패배자였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에 리더의 지위에 오를 정도로 인정받았고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잔혹함, 우유부단함, 조급함 등의 결함들이 

강단剛斷있는 판단력과 신중함, 신속함 등 이들을 성공으로 이끈 비결로 작동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실패는 결국 변화된 상황이 요구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인데 여기가 바로 하마르티아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의 성공이, 곧 자신의 장점이 다른 모든 결점들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는 

그 자신감의 원천이 씨앗이 되어 이 것이 오판이고 오만이었다는 것이 결국 파멸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이런식의 분석이 단순히 결과론적일 뿐이며 그저 편협한 환원주의적 접근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인간에 대한 고찰에서 정답은 없기 때문에 타인의 하마르티아를 찾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실패라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실천적이고 실리적 행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의 집필동기가 '역사상 위대한 지휘관들의 성공을 보고 배울 수 있다면,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들에게서도 배울 수 있지않을까?' 라는 화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실패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면, 책이 소개하는 실패자들의 사연을 타산지석삼아 부답복철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같다.

 



책의 장점은 '분량'이다.  본문 약 310페이지의 분량에 15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각 인물들에 대해 집중력 있게 숙독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소개된 인물들이 

영미권이나 유럽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인데  분량도 짧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의 경우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왜 이 인물이 선정되었는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각 인물의 사례 말미엔 필자가 해당 인물을 최악의 리더로 

꼽은이유에 대해 부연하고 있지만 분량을 더 늘렸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또 이 책의 저자들이 대부분 군교육시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인지 

일반독자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사관학도들을 위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 제목에 '전쟁사'라고 명기되어 있으므로 군 지휘관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있을 

것이라는 점은 예측했지만 좀 더 대중적으로 알려진 군 지휘관의 사례를 수록했으면 

나같은 일반독자들의 접근성을 더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실패사례 분석이라는 '꼭 필요하지만 여전히 보편적이지 않은' 접근법에

 대해 흥미를 가진 사람들에겐 충분히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책 속의 실패들을 

통해 스스로의 잠재적 하마르티아를 느낄 수 있다면 이 접근법으로 자기수양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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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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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의 역사에 익숙한


나와 같은 평범한 독자들에게 중부 및 동부유럽은


아무래도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내지만 존재감이 크진 않은


유럽의 주변부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기에 합스부르크 가문 그 천년의 성쇠를 상세히 담은 이 책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가 편중되어있는 유럽사의 균형을 


잡아주는 추이자 유럽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드디어 찾아낸 


퍼즐조각'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나라들이 전쟁을 할 때 행복한 오스트리아는 결혼을 한다"는 말로 


대표되는 성공적인 '결혼정책'으로 비교적 손쉽게 영토를 확장한 합스부르크가문은, 


그 대가로 언어도 정치상황도 다른데다 국경도 이어지지 않은 여러 영지들을 통치해야


하는 문제에 일찌감치 봉착했다. 거기에 서쪽에는 프랑스, 동쪽에는 오스만투르크라는 


강대국과의 끊임없는 마찰은 합스부르크 통치자들이 결코 순종적이지 않은 각 영지의 


의회 구성원들과 타협을 할 수 밖에 없도록 강요했고 그 결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중앙집권화는번번이 실패하게 되며 결국 하나의 영속적인 단일국가체제를 이루지도 


못하게 된다.




허나 이런 복잡한 정치상황이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요구한 관용과 실리라는 통치방식이 


또 제국을 여러번 존망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유연한 통치술'로 빛을 발하기도 해 


결과적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의 천년존속이라는 위업을 가능케 했고 중앙유럽을 


혁명의 안전지대로 만들었으며 도시 빈을 파리에 버금가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저자는 이처럼 다민족으로 구성된 복잡한 정치환경이 야기한 여러 장애들과 


합스부르크가문이 서유럽의 통치자들과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그들의 가풍, 정치철학, 통치관념 등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고찰하고 해설하는데 


어느면에서는 해설이 아닌 '해명'으로 읽힐 정도로 편향적인 부분도 있지만 합스부르크 제국이 


가진 그 이질적이고 이색적인 역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책의 구성은 비교적 짧은 분량의 29개 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각 챕터의 분량이 적어 


호흡이 짧아 집중력을 흐트리지 않고 읽기는 좋지만 중앙유럽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각 챕터의 축약된 내용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아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전체 내용이 머릿속에 잘 남지 않는다.




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건들에 대한 언급도 의외로 짧거나 없는 경우도 많은데 


1천년의 역사를 상세히 다루기에 500여페이지가 터무니없이 적은 점은 이해하더라도 


생소한 역사를 볼 때는 그나마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들이 방점을 찍는 역할을 해준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카를5세 시대에 벌어진 로마대약탈 사건은 언급조차 없고 오스만제국과 벌인 


대 투르크 전쟁도 2차 빈 포위 부분만 짧게 다룬다)




이런 아쉬운 점은 앞으로 중부유럽을 다룬 책들이 더 많이 번역되면 차차 채워질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도록 한다는 점이 


이 책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가 중부유럽사를 다룬 훌륭한 입문서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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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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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속의 조선 정치인들은 드라마틱한 정치사가 아닌 

일반 백성들의 삶, 즉 민생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환과고독과 장애인은 국가가 돌보아야한다"라는 태조 이성계의 선언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건국초부터 각지에 파견된 지방관은 수시로 환과고독(과부,홀아비,고아,독신노인)과 

장애인의 수를 파악하고 관리했으며 진휼과 환곡을 대비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었다. 중앙정부의 고위직 관리들 역시 각지의 지방관들이 올리는 복지 예산신청을 들어주기 

위해 밤낮으로 궁리를 했으며 지방관의 보고를 통해 올라오는 백성들의 탄원 해결, 복지정책의 건전한 집행을 위한 감시 및 제도 마련 등의 사안을 놓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물론 상공업을 천시하고 농업만 권장하는 조선의 기본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은 채 

매년 국가예산의 대부분을 복지에 쏟아붓는 이런 예산 불균형정책이 조선을 다른 

국가규모의 사업을 시행할 여력은커녕 분식회계와 허위장부 상의 종이호랑이로 

만들어버렸고, 이에 더해 행정적-기술적 한계는 결국 지방관과 아전, 향촌 사대부 계층의 

야합이라는 부패 카르텔의 형성과 함께 그들이 복지정책을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수단으로 

악용하게 만들어 조선말 각종 봉기와 민란의 원인인 '삼정의 문란'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문제점을 보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개념도 없던 군주정의 시기에도 '굶어죽는 백성이 없도록 한다'라는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500여년의 긴 역사 내내 고민을 거듭한 조선 정치인들의 노력은 

그저 '어리석다'라는 한마디로 결론짓기 어렵게 만드는 울림이 있다.




허나 우리가 알다시피 조선은 결국 실패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는 조선이 시도했던 다양한 복지정책의 변천을 따라가며 각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당시 조선인들의 인식을 기록과 함께 소개한다. 국무회의에서 오고간 대화나 지방관의 

보고서 혹은 개인의 일기 등 각개각층의 사람들이 어떤 문제점을 인식했고 어떤 해결책을 

제안했는지를 보다보면 지금도 복지정책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속가능한 복지가 증세없이도 가능한가? 자력갱생을 위한 도움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보조금만 지급하는 복지정책이 대상자들에게 정말 유익하다고 할 수 있는가? 과연 퍼주기식 

복지가 능사라 할 수 있는가?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어떤 정책이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하다'

라고 일갈한다.


복지문제는 결국 해당 시기의 인구수, 경제규모 및 불평등지수의 수준에 따라 

'저부담-저복지'와 '고부담-다복지'의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할 수 밖에 없으며 다만 

'불공정/불평등을 최소화 한다'라는 복지의 존재이유에 맞게 정책에 유동성을 갖고 

국민들의 관심과 의견을 수렴하며 계속 시도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500여년 동안 정책을 놓고 밤을 샌 조선인의 정책입안자들, 현장의 최일선에서 

밤을 샌 집행자들, 복지정책에 울고웃은 대상자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혈연,지연,학연을 

동원해 부정수급을 일삼는 자들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지금의 대한민국과는 모든 면에서 

다른 조선의 역사를 거울삼아 돌아볼 이유로 충분하다.




******



나름 역사 애호가를 자처하면서도 내가 조선에 대해


이렇게도 몰랐었구나하는 자책감에 책을 보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는 조선의 역사란 당파싸움의 긴 갈등 사이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이나

왕가의 스캔들 따위가 전부인 '조선 정치사'였고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선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한 최고위층이었다. 나머지 99%의 삶을 하나도 알지 못하면서 지금까지 잘도 

조선에 대해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 [시시콜콜한 조선복지실록]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당파싸움'이나 '상공업천시' 등

조선왕조 500년에 대해 부정적인 면만 갖고 있던 내 의식이 크게 변했다는 점이다.



조선이 대한민국에 대한 자조적인 멸칭으로 쓰인 '헬조선'이라는 말이 별 거부감없이 널리 퍼진 것처럼 대다수가 조선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지금, 이 책이 많이 읽혀 사람들이 

나처럼 조선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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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 : 재앙의 정치학 - 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Philos 시리즈 8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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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현재 우리는 재앙의 시대를 살고있다.



세계는 코로나19라는 혼돈의 터널 속 어딘가에 머물러있으며


언제쯤에야 그 끝에 다다르게 될지, 그리고 그 너머엔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있을지 가늠조차 못한 채로 그저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렇기에 바로 지금이 재앙 그 자체를 진지하게 고찰해볼 적절한 시기라고 

말한다.



재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재앙을 예측할 수 있는가? 재앙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리고 재앙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우선 저자는 '재앙'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부정한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할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인류종말급의 대재앙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으나' 대응의 실패로 

인해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모는 재난이며 이런 관점에서 볼때 이미 21세기만 놓고 보아도 

로나19 이전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세계적 금융위기, 국가의 실패, 이민 흐름의 폭증 

민주주의의 후퇴 메르스 조류독감 등 이런 재난은 줄줄이 이어져왔고 코로나19는 그저 가장 

최근의 사태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코로나19에 대한 실존이상의 공포에서 벗어나 의연히 바라보는 환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지진이나 홍수, 역병, 기상이변으로 인한 기근 등 우리가 천재지변이라 생각하는 재앙들 

역시 그 자체로는 불가항력적이고 예측불가한 자연재해이나 그 피해의 규모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우리의 대응이었고 실제로 역사상의 수많은 재난들은 그 시대의 사회구조 및 의식/

기술수준에 따라 인명피해의 수가 달라져왔음을 사료와 통계에 기반한 근거로 내세운다.




이처럼 재난은 비록 예측불가하고 불가항력적이지만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피해를 줄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위기를 극복한 결과 더욱 단단해지는 '안티 프래질antifragile'상태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그렇다면 어째서 재난이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최초의 징후를 발견했을 때, 이 것이 회색코뿔소에 불과할지 검은 백조급의 사태로 

발전할지 아니면 드래곤 킹급 대재앙의 서막을 열지를 판단하고 대응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며 체르노빌 방사능 유출/ 챌리저호 폭발/ 1957-1958 아시아독감 유행의 억제 등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던 세 재난의 인과 비교를 통해 정책결정권을 가진 집단의 의식과 

단합에 따라 사태의 향방은 얼마든지 바뀔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재앙에 관한 재정의 및 고찰에 이어 이를 기반으로 현재 코로나 19의 확산과 미국/유럽 등 

선진국들의 처참한 방역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저자는 지난 역사를 통해 재난은 언제나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폭력적인 사회적 갈등이나 전쟁 등의 2차적 피해를 수반해왔다는 

분석에 따라 코로나19사태 이후의 세계에 일어날 수 있는 국제적인 사회 혼란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경고한다.



코로나19라는 재앙의 진정한 위험은 그 살상력 자체가 아니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인명피해의 규모는 1947-48년의 아시아독감수준이며 이는 지금까지 발생했던 팬데믹 

중에는 경미한 편이다.


허나 세계화라는 네트워크로 전세계가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지금은 재난의 2차 파급력이 그 어느때보다 강력하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며 실제로 

전세계는 삽시간에 퍼지는 가짜뉴스들이 전염시키는 과장되고 허황된 공포에 요동치고 있다.


한 편에선 고립주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반대편에선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강력한 범국제적 단일 지휘체계라는 전체주의체제를 요구하고 있으며 사실상의 

전제국가인 중국은 자국의 체제의 유용성을 선전하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비방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의 이러한 분위기가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격화되고 있던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를 본격적인 2차냉전시대라는 파국으로 끌고갈 위험이 있으며 현재 미국의 대내외적 

상황을 놓고 볼 때 이번 냉전에서도 미국이 승리할 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경고로 책을 마친다.




[둠:재앙의 정치학]은 저자의 말마따라 시의적절한 때에 나온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정치학'이라는 표제답게 이 책의 내용들은 일반시민이 아니라 정책결정권자들에게 

더 즉시즉효를 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내용 자체에서 저자만의 참신한 주장이나 

놀랄만한 정보는 없었지만 코로나 19가 이미 일상의 깊숙한 부분까지 침투해 그 추이와 

방역대책에만 천착하여 지금 현재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를 객관화시켜 볼 여력이 

없던 요즘 같은 시기에 [둠 : 재앙의 정치학]을 읽는 것은 재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등 보다 거시적 시각에서 현 상황을 

환기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기후위기, 인구증가, AI나 유전공학의 위험하리만치 급속한 기술발전 등 우리가 

'미증유의 재앙'을 두려워 할만한 요인들은 많이 있지만 우리가 지난 과오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그 각성을 활용할 수 있다면 그 위기의 터널 끝에 기다리는 것이 

인류종말이 아닌 안티 프래질 상태 일 수 있다는 말에 가벼운 위안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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