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 - 티라노사우루스부터 북극곰까지 인류와 공생한 동물들의 이야기,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사이먼 반즈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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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처분소득을 신경쓰지 않고 소비하는 사람에게 '절망'은 예정된 결말이다.


신용이나 차환으로 잠시 지연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청산되지 않은

청구서의 추격은 그를 파산에 몰아넣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당연한 귀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경제사범 정도밖에 없을 것이지만

희한하게도 가처분소득을 '지구의 자원'으로 바꾸는 순간 우리는 모두

잠재적 경제사범이 된다.

물론 지구의 자원이 결코 무한하지 않으며 사실 이미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경고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1960년대 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지하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 기상이변 등 인류라는 종의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협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동참여부는 몰라도 그 당위성 자체에는 이견이 없는 정도까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성공했지만,

지하자원 못지 않게 중요한 천연자원인 '동물'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감성적 차원에 머무르고 있어 동물의 멸종이 지하자원의 고갈보다 인류에게 훨씬 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 역시 무시당하고 있다.

이런 몰이해와 몰지각 아래 파괴되고 있는 동물의 생태계는 결국 가장 막대한

금액의 청구서가 되어 돌아올 것이며 그때 인류에게 예정된 결말은 파산이 아닌

절멸이 될 것이다.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는 지금까지 동물을 언제든 손쉽게 소비할 수 있는 공유자원으로 여겨온 인간의 근시안적 행태를 고발하고 이러한 관념이 가져온

현재의 위기를 경고하는 섬뜩한 보고서이다.

농작물의 재배면적을 넓히기 위해 무심하게 갈아엎는 꽃들로인해 벌의 생존이

위협받은 결과 전 세계 작물의 1/3 가량이 열매를 맺기 어려워져 벌들의

수분(受粉)활동을 대신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고 있으며, 이렇게 어렵게

재배하는 농작물을 보호 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살포한 살충제의 독극물이

또 다시 벌을 포함한 화분매개곤충들에게 위협을 가해 수분활동을 더 줄이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또 무한해 보이는 바다자원을 무분별하게 남획한 결과 수많은 어류들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양식은 다시 양식장

물고기의 먹이를 구하기 위한 작은 물고기 남획을 조장해 바다생물 먹이사슬

전체의 붕괴를 야기하고 결국 많은 어류들의 멸종을 가속화하고 있다.

(맛좋고 값이 나가는 연어 500g을 얻기 위해서는 2kg의 작은 물고기가 필요하다)

이처럼 먹이사슬로 얽혀있는 동물의 생태계는 그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와 같아서

일부의 파괴가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지금까지 인간은 수많은 동물의 생사여탈을 인간 자신의 편익에 따라 결정지어왔고 그 결과 인간이 직접 관여하지 않은 동물들도 멸종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그 멸종의 길을 마지막으로 걷는 종은 결국 붕괴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군림하고 있는 인간일 것이고 인간이 마침내 그 길을 걸을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시급한 동물종의 보호에 대한 노력이 즉각적이고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인간이 비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몇 종을 정해 개체수를 늘리고 관리하는 방법은 임시방편일 뿐 결국 그 동물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서식지)을 조성해주어야만 지속가능성을 얻을 수 있지만

매년 증가하는 인구수로 인해 오히려 남아있는 서식지도 사라져가는 상황이다.

거기다 고릴라 연구의 선구자 다이앤 포시의 비극적 죽음에서 볼 수 있듯

그나마 서식지가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 빈곤국의 경우 당장의 생계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천연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동물자원의 고갈이라는 문제점에 대해 인지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이제 동물들에 대한 종래의 관념이 어떻든 현재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며 그 어떤 사나운 발톱과 육중한 몸집, 강한 턱을 가진 동물도

인간의 마음먹기에 따라 그 종 전체를 보존할 수도 절멸시킬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며 이미 인간이 부지불식간에 멸종시킨 많은 동물 종들을

기억하고 남아있는 동물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미 행동하고 있는 많은 보호단체와 함께 남아있는 서식지의

보존과 복구에 관심을 갖고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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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에 등장하는 동물들 중에는 분명 독자에게

친숙하거나 특별히 관심을 끄는 동물도 있을 것이고 생소하고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하는 동물도 있지만 각 동물들이 지면에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현재 그 동물들이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있는 별인 지구의 생태계를 이루는 이 동물들은 모두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가치를 가진 소중한 존재라는 저자의 생각이 반영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어 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책의 메세지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전혀 없지만 책을 읽는 내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지금까지 인간이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고 주장해왔다면

이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라는 원 계명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별하기란 정말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다.


우선 나부터 실천을 위한 첫 걸음을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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