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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평점 :
제목이 너무 유혹적이어서 이끌리듯 그 자리에서 다 읽은 책. 트럼프의 집권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미국의 민주주의의 위기가 어떻게 찾아왔는지 논리적으로 서술했다. 비단 미국의 사례에 그치지 않고 태국이나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타국의 사례도 등장한다. 정확히는 2021년 1월에 발생한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가 위기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라고 본다. (따지고 보면 폭도가 국회에 난입한 사태나 군인이 국회에 난입한 사태의 본질은 같다. 그 시발점이 선동이든 상급자의 명령이든 결과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전당에 침범한 것이니)
약 4년 뒤에 우리도 미국에 밀리지 않을 사진을 만들어냈다. (NYT에서 퍼옴)
책에서는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의 개념을 정치학자 후안 린츠의 정의를 차용해 서술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언제나 세 가지 기본적인 행동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승패를 떠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이는 패배를 일관적이고 명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자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혹은 폭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명백히 거부해야 한다.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거나, 폭동을 조직하고 반란을 조장하며, 폭탄 투척 및 암살 등 다양한 테러 행위를 계획하거나, 정적을 물리치거나 유권자를 위협하기 위해 군대나 폭력배를 동원하는 정치인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위 두 가지 기본 원칙을 어기는 모든 정당과 정치인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야 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반민주주의 세력과 명확하게 관계를 끊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암살자에게는 언제나 공범이 있다. 그 공범은 겉으로는 민주주의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규칙을 공격하는 정치 내부자들이다. 린츠는 이들을 가리켜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라고 불렀다.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자가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자. 한국에서 2024년 12월에 발생한 일과 소름 끼치게 일치한다.
이날 밤 우리가 얼마나 불안에 떨며 잠 못 이뤘는지 잊지 말자.
우린 민주주의의 개념을 배울 때, 제도의 장점으로 다수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된다는 것, 그와 반대로 소수의 의견은 무시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는 내용을 균형 있게 배웠다. 하지만 그 소수의 의견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이 오히려 다수의 의견을 배제시키고 소수의 이익만을 대변하기 위해 악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배우지 않았다. 미국의 특정 세력은 제도 상의 허점을 정확히 분석하고 파악해서 자기들의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이를 완벽하게 활용하고 있다. 승자 독식 선거인단 제도, 주별로 무조건 2인을 뽑는 상원 제도, 법안 통과를 막을 수 있고 이를 멈추려면 상원의 3/5이 필요한 필리버스터, 상원의 인준을 거쳐야 하는 대법원 판사 임용과 판사들의 종신 임기, 하원과 상원 각각 2/3가 찬성해야 하고 전체 주의 3/4(38개 주) 의회에서 비준되어야 하는 헌법 개정의 어려움, 선거구를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개편해서 소수의 인구로도 선출이 가능하게 만드는 게리맨더링과 같은 제도들은 소수에 의한 지배를 오히려 강화시키는 장치들이다. 유권자 다수는 여전히 하원, 주지사 선거 및 주 차원의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소수 지배 현상이 점차 빈번해지고 있다.
거의 모든 주는 승자독식 방식으로 선거인단 표를 할당한다. 다시 말해, 어떤 주에서 한 후보가 50.1% 대 49.9%의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면, 그 후보는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표 100%를 차지한다. 이러한 방식은 모든 주의 선거인단 표를 합산할 때 불공정한 문제를 만들어낸다. 이는 전국적인 보통선거에서 패배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소수 지배를 뒷받침하고 당파적 편향을 더욱 뚜렷이 드러내는 또 다른 요소는 상원 제도다. 미국 전체 인구의 20% 미만을 차지하는 인구가 적은 주들만으로도 상원에서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전체 인구의 11%에 해당하는 주들만으로도 필리버스터를 통해 입법을 가로막을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상원의 당파적 편향으로 더 심각해진다. 공화당은 인구가 적은 주들에서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전국적인 보통선거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않고서도 상원을 장악할 수 있다. 미국 상원의원의 임기는 무려 6년이며, 이 중 1/3이 2년 주기로 선거를 치른다. 이는 상원 전체를 새롭게 구성하려면 6년에 걸쳐 세 번의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소수 지배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은 대법원이다. 대법원의 당파적 편향은 간접적이지만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선거인단 제도와 상원의 특성을 고려할 때, 보통선거에서 패배한 대통령이 대법원 판사를 지명하고, 전체 인구의 소수를 대표하는 상원 다수가 이를 승인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선거인단과 상원에서 공화당이 가진 이점을 감안할 때, 대법원 판사는 공화당이 지명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1980년에 태어나 1998년이나 2000년에 처음으로 투표한 미국인을 떠올려보자. 그가 성인이 된 이후 민주당은 상원 선거에서 대부분 승리했으며, 거의 모든 대선의 보통선거에서도 이겼다. 하지만 그는 공화당 대통령과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 그리고 공화당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다수를 차지한 체제 속에서 살아왔다. 과연 그는 미국 민주주의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선거 제도가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과잉대표를 허용하면 정당이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고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정당이 유권자의 생각에 반응할 압박이 줄어들고, 이는 정당의 극단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일이 21세기 초반 공화당에서 일어났다. 공화당이 전국적 다수를 확보하지 않고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은 그들이 지지 기반을 확대하려는 동기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공화당은 시골 지역에 편향된 제도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보통선거에서는 계속 패배하면서도 대선과 상원, 나아가 대법원까지 장악했다. 이는 공화당이 전국 선거에서 경쟁해야 할 동기를 약화시켰고, 그들이 극단주의로 치닫는 데 일조했다.
선거인단 제도를 보통선거로 대체하고, 게리맨더링을 제거하며, 상원을 비례적으로 구성하고, 필리버스터를 폐지하며, 대법원 종신제를 없애는 등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덴마크, 독일, 핀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미 자리 잡은 제도들이다. 이 개혁안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지만, 미국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논의되고 실행되어야 한다고 책은 해결책을 제시하며 마무리된다.
한국의 모 정당과 현재의 대통령이 사용하는 전략은 아마도 미국의 현실을 주의 깊게 관찰해서 차용하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유사하다. (그는 귓불에 총을 맞아 선거에서 우위를 점한 트럼프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정치가 삶에 미치는 영향은 일상에선 느끼기 힘들겠지만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는 정치가 존재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발전을 저해시킬 텐데, 그나마 미국은 인구도 많고 첨단 산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엄청나니까 국가 차원에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제도를 개혁하고 다시 정상화할 기회를 노리겠지.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절대적인 인구수 부족, 노령화와 출산율 하락, 대기업에 편중된 경제 구조, 세대/지역 갈등과 양극화, 빈곤층을 양산하는 복지제도 등 부실한 시스템 위에 세워진 나라는 정치가 쇠퇴하면 금세 국력이 쇠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싹트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