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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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작가님이 2022년에 펴낸 첫 단편집. 2년 전인가 벌써 읽은 책이었다. 이런 식으로 기록을 안 해놓으니 전에 읽었던 책도 기억 못 하고 나중에 읽은 다른 작품에서 감탄해서 멀리 돌아오다니.


전반적으로 상처 입은 인물들이 그 아픔을 어떻게 극복하고 나아가는지의 과정을 다른 인물과의 관계로 풀어나가는 이야기 구조인데 중간중간 재미있는 장치들이 많이 들어가서 읽기가 무척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24년의 발견이라고 꼽는 작가 두 명, 김기태 작가님과 함께 성해나 작가님의 앞으로의 작품활동이 기대된다.


<언두>

틴더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만남 이야기인데 농아장애인 이야기가 뒤섞이면서 벌어지는 이별의 과정. 만나고 사랑하고 갈등하다 헤어지는 과정이 50페이지 안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려져 있으니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다.


<화양극장>

인생의 벽에 막혀 동네 극장에서 매일 시간을 죽이는 주인공이 역시 극장에 매일 오는 할머니와 가까워지면서 서로 위안을 주고받는다. 할머니는 70년대에 활약한 스턴트우먼이자 레즈비언, 소수자였다.


한때 낙원상가 옆의 서울아트시네마에 많이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오래된 영화들을 무작위로 막 틀어주는 극장이 있으면 좋겠다. 대형 극장 체인이 아닌 극장은 이제 다 사라진 것 같다.

여기도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고 하더라…


<괸당>

이 작가는 소재를 어디까지 확장하는 것인가. 조상의 흔적을 가지고 와서 도움을 청하는 먼 고려인 친척에게 배타적으로 구는 제주도 토착민들. 아픈 과거사에서 비롯된, 혹은 섬사람들의 폐쇄성 자체가 원인일지도 모르는 언행의 민망함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

부르주아 친구에게 촬영의뢰를 받아 찾아간 친구 조부의 100세를 축하하는 상수연에서 벌어지는 일. 애지중지하던 가보는 사실 친일의 명백한 증거였지만 그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오는 자본가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는 평범한 사람들.


<당춘>

코로나 때가 배경. 농촌을 살려보려 애쓰는 활동가를 돕는 청년 둘. 동네의 노인들에게 유튜브 활용법을 가르치면서 벌어지는 일들의 이야기인데 썩 재미는 없다.

<오즈>

작가님의 등단작. <화양극장>처럼 상처가 있는 할머니(실제로 흉터도 있다) - 좌절하여 막사는 타투이스트 젊은이(실제로 자해 흉터가 있다) 조합의 이야기. 이쪽은 할머니가 무려 종군위안부다. 비슷한 플롯인데 이쪽이 조금 더 자극적이다.


<김일성이 죽던 해>

작가님 본인의 자전적 소설이자 작가님의 엄마에게 헌정하는 듯한 소설. 액자식 구조로 엄마 이야기가 별도로 등장한다. 실제로 작가님 엄마가 쓰신 시가 등장하는데 무척 잘 쓰셨더라.


이래서 엄마한테는 딸이 있어야 하나보다. 무뚝뚝한 아들만 있는 내 어머니께 괜히 죄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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