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가게 글월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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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먼저 알아본 한국 소설

<편지 가게 글월>

분이 나서 씩씩거리며 글씨를 적다가도

이쯤 쓰니 또 마음이 퍽 풀립니다.

편지라는 게 그래요.

아무리 화가 나도 막 쏘아붙일 수가 없어요.

이 손가락이 분통 난 마음보다 늘 느리거든요.

편지 가게 글월은

각종 편지 관련 물품 판매와 함께

펜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펜팔,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가장 바쁘면서도 가장 감수성이 풍부했던

고등학생 시절에 펜팔을 한 적이 있어요.

잡지 뒤편에 실려 있는 주소를 하나 골라

편지를 정성스레 써 보내면

저에게 소중한 답장이 도착하고

몇 번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야기가 잘 통하면

계속해서 펜팔 친구로 남아있을 수 있었죠.

서로 얼굴은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서로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었고

때문에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어요.

결국 글이라는 건

과거라는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 한 동이라는 재료가 필요했다.

서툴고 부끄러워도 물 한 동이를 퍼내야

다음 할 말이 차올랐다.

그렇게 과거라는 우물을 정화한 사람은

현실에서도 자기 마음을 투명하게 볼 줄 알았다.

편지를 써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학창 시절엔 끊임없이 비밀일기를 주고받고

연말이면 예쁜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보내며

종이 위에서도 재잘재잘 떠들어댔는데,

이젠 펜을 들고 뭐라도 한 자 쓸라치면

어색한 손글씨에 한 번 멈칫,

고르고 고른 말들 때문에 또다시 멈칫

좀처럼 빈 종이를 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찬란히 부서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절대 실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찬란하게 부서졌다는 결과를 얻은 거죠.

물론 꿈을 상실한 시간을 견디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살다 보면 또 설레는 일은 생기거든요.

진짜, 언젠가는요.

펜팔의 가장 큰 묘미는

상대를 잘 모른다는 점이에요.

잘 모르기에 상대를 내 마음껏 상상할 수도 있고

나를 마음껏 꾸며낼 수도

한없이 솔직해질 수도 있죠.

그리고 주고받는 편지 속에서

서로에게 응원과 위로를 전할 수도 있습니다.

보드게임 한 쪽 모서리에 붙은 '무인도'를 떠올리며

효민이 작게 웃었다.

한 번 들어가면 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

같은 숫자가 나올 때까지 세 번은 쉴 수 있었다.

인간의 인생에도 무인도가 필요하다고,

효민은 생각했다.

가족과 친구에게 이만한 핑계가 어디 있을까.

나 지금 무인도에 떨어졌어.

불운이 찾아왔나 봐.

딱 세 타임만 쉬고 일어날게, 하고.

글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고민들로 힘겨워하지만

글자 위로 전해지는 진심을 통해

또다시 힘을 내게 됩니다.

편지 가게 글월은

서울 연희동에 실제 운영 중인 곳으로

실제 방문한 손님들의 편지도 함께 담아

이야기를 꾸려나갔습니다.

연희동에 가게 된다면

꼭 한 번 들러보고 싶네요.

그리고 오랜만에 편지를 써 보고 싶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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